[영화선우] ‘인간적인’ 외계인과 인간 ‘디스트릭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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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나타난 미확인비행물체(UFO). 커다란 우주선은 지구를 공격하지 않는다. 다국적 군수회사 MNU(Multi National United)는 우주선 내부를 샅샅이 조사한다. 인류의 기술을 아득히 넘어선 외계인의 무기가 있다. 하지만 인간을 적대하는 괴물은 없다. 말라 죽어가는 외계인들이 바글댄다. 외계인들은 지구에 불시착한 것이다.

행정당국은 외계인들이 머물 장소를 따로 마련해 이들을 임시 수용한다. 인류는 외계인의 외모가 새우(Prawn)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프런이라고 부른다. 프런은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 프런이 지구에 체류한 기간은 28년이다. 이들은 온갖 차별과 수모를 겪으며 외계인 집성촌에 불법 가건물을 짓고 산다.

외계인 집성촌 주변에는 외계인 집단수용소의 철거를 요구하는 인간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외계인을 혐오한 탓에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달라고 항의하는 것이다. 현지 주민들과 프런 간 다툼도 심해지고 나이지리아계 갱들이 외계인 집성촌을 지배한다. 프런을 관리하는 MNU는 무법지대로 변해버린 외계인 집성촌을 강제 철거하기로 결정한다. 외계인 집성촌의 명칭은 ‘디스트릭트 9’이다.

<디스트릭트 9>은 외계인을 통해 인종과 계급 갈등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저예산 공상과학영화(SF)다. 디스트릭트 9은 남아공에 실제로 있었던 ‘디스트릭트 6’를 빗댄 것이다. 남아공의 인종 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에 의해 흑인들이 강제 이주된 곳이다. 이 정책은 남아공 백인정권이 1948년 법률로 제정하면서 시행됐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모든 사람을 등급으로 나눠 백인과 흑인, 인도인 등으로 분류했다. 거주지를 분리하고 통혼을 금지하고 출입구역도 나눴다. 분리에 의한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노골적인 백인지상주의를 지향한 것이다.

MNU는 민간군수업체다. 디스트릭트 9의 강제철거 이주 작전을 강행한다. 책임자는 비커스(샬토 코플리)다. 그는 MNU의 고위직인 장인에 의해 이 작전을 책임지게 된 낙하산이다. 비커스 역시 프런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프런의 알을 불태우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프런의 이주에 필요한 법적 동의를 받으러 다닌다. 적법한 절차를 진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프런이 계약서를 떨어뜨리자, “손이 닿았으니까 서명한 것으로 처리해”라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비커스가 외계물질에 노출되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유전자 변이에 따라 비커스가 점점 외계인으로 변해가는 탓이다. 정부는 비커스가 프런들의 신무기를 가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비밀리에 그를 추적하고, 비커스는 외계인 수용구역으로 숨어든다.

<디스트릭트 9> 속 외계인은 인간 속에 숨어 살아온 존재가 아니다. 지구 정복을 꿈꾸는 괴물도 아니다. 그렇다고 지구인의 영원한 친구도 아니다. 불편하고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남아공 국민들은 프런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저놈들 때문에 사는 게 위험해요. 그놈들한테 쏟아붓는 세금이 아까워요.”

<디스트릭트 9>은 외계인과 싸우는 게 아니라 그들을 감시, 격리하면서 벌어지는 인간의 탐욕을 다룬 이야기다. 프런을 탄압하는 일에 앞장서던 비커스가 점차 프런으로 변하면서 그들의 처지를 직접 겪는다. 이를 통해 인간의 모순과 잔혹성이 사무치게 전달된다. 소심하고 유약한 비커스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외계인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인간스럽지 않은 인간들과 맞선다.

영화를 보면 외계인을 개만도 못한 존재로 여기는 인간에 분노하고 외계인에 연민을 품게 된다. 이 감정은 내게서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한 일시적인 반응에 불과하다. 과연 이런 일이 내게 벌어질 때도 인류애를 발휘할 수 있을까? 만약 내 앞에서 치안을 위협하거나 세금을 축내거나 일자리를 뺏기 시작하면 앞으로 사정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처음에는 인도주의적이었지만 점차 차별적으로 기울게 될 지도 모른다. 혐오를 부채질하며 남 탓하며 요구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의 이상을 현실화하고 모범을 보이는 게 우선이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