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2030 여성 삶’ 자양분 삼은 단편 영화, ‘프리즈마’·‘이립잔치’·‘고백할거야’

내 감정과 생각에 용기 내는 여성
        일 하는 여성,  정형화된 삶과 싸우는 여성
        이곳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2030 여성들의 고민들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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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폐막한 제11회 대구여성영화제, 둘째날에는 대구 여성 감독들이 만든 영화 <프리즈마>, <이립잔치>, <고백할거야> 3편이 ‘대구단편 섹션’으로 상영됐다. 대구·경북에서 자란 세 감독은 2030 여성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나 일상을 작품 활동의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

세 감독의 영화는 제각각 여성의 노동, 모녀의 갈등, 공개 고백 같은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 속 배경은 모두 대구와 경산 일대를 무대로 한다. 수도권에서 일하는 서른 살 딸 ‘유영’이 엄마 ‘혜자’의 환갑을 맞아 고향에 내려왔지만, 사사건건 부딪히는 이야기를 다룬 남가원(32) 감독의 <이립잔치>에선 경산 자인성당이나 경산버스, 반월당 양식당이 등장한다.

코로나19 시대, 일자리를 잃은 ‘민애’가 7살 딸 ‘재희’를 데리고 구직 면접을 보러 다니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장주선 감독(28) 감독의 <프리즈마>에선 달성공원역이 보인다. 김선빈(26) 감독의 <고백할거야>에선 친구들 앞에서 공개 고백을 받은 ‘성지원’이 그 대답을 하러 가는 여정에 계성중학교와 남구 대명동 일대 주택가가 등장한다.

세 감독은 사투리를 쓰지 않는 배우들에게도 음의 높낮이를 적어주며 지역 사투리를 써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대구라는 지역적 배경과 함께 여성 서사가 담겨 있다”는 김미희 대구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설명이 그대로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 (왼쪽부터) <프리즈마> 장주원 감독, <이립잔치> 남가원 감독, <고백할거야> 김선빈 감독. 제11회 대구여성영화제 ‘대구단편 섹션’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GV)가 진행 중이다.

단편들은 모두 대구, 경산에서 촬영
익숙한 지명과 역, 버스 찾는 재미도
꿈을 키우고, 실현시켜준 ‘대구’

세 감독의 영화는 스스로를 들여다 보고, 주변을 둘러보는 데서 시작되고 확장됐다. 김선빈 감독은 영화에 등장하는 ‘성지원’과 마찬가지로 중학생 시절 금요일 점심시간에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같은 반 친구에게 ‘고백을 당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거절하지 못했던 김 감독은 주말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월요일에 헤어졌다.

김 감독은 “나 자신의 의견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며 “이전 작품도 여고생이 주인공이었는데, 10대 여자들이 어떤 자유를 가지고 억눌린 거 없이 그대로 표출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영화의 메시지에 관해 “‘여자들이 친절하게 웃어 주길 바라는 사회적 시선’의 고민은 고백을 받는 10대 여자청소년 시절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고민 지점”이라며 “관객분들께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 이런 사례를 접한 것만으로도 자기 결정권을 가진 선택권이 있다는 걸 떠올릴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장주선 감독은 평소 일하는 여성에게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그는  “고단하고 힘든 날도 있지만, 지나고 하면 따뜻하게 기억되는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라며 “그런 시기를 보내는 분들께 응원을 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구상했다”고 전했다.

이어 “영화를 할 때마다 다양한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며 특히 식당 조리원이나 영양사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여성들에 관심이 많은데, 실제 어머니가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셔서 그런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가원 감독은 과거 부산에서 3년여를 일하다 서른을 앞두고 대구에 돌아와서 느낀 답답함을 영화로 풀었다. 남 감독은 “집으로 다시 돌아와서 엄마와의 갈등은 주로 서른 살인 내가 사회적으로 규정된 역할’에 부응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며 “고향에 와서, 보수적인 분위기에 놓여서 이걸 쓰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남 감독은 “가족에 대해 정형화된 시각을 우리 사회가 갖고 있다. 서른 쯤 시집을 가고, 애를 낳아서 엄마에게 손주를 안겨주고 용돈을 드리는 걸 모두가 해야 정상으로 본달까”라며 “그렇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고, 이런 가정과 가족도 있다. 똑같은 모습으로만 사랑하는 게 아니다. 조금만 벗어나면 평범하지 않은 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내 감정과 생각에 용기 내는 여성,
일 하는 여성, 정형화된 삶과 싸우는 여성,
이곳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2030 여성들의 고민들

김선빈·남가원 감독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대구단편영화제작 워크숍에서, 장 감독은 대구다양성영화지원사업을 통해 각각 대구 영화판에 첫 발을 디뎠다. 세 사람은 모두 대구영상미디어센터에서 주관하는 대구영화학교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남 감독은 1기, 장·김 감독은 2기다. 대구에서 영화인을 양성하는 프로그램들은 이들이 영화인으로 꿈을 키우는 좋은 토양이 되기도 했다. 남 감독은 2019년부터, 장·김 감독은 그 다음해부터 각자 3~4편의 작품 활동을 지금까지 해왔다. 서로의 영화에 프로듀서나 미술 담당 스태프로 일하면서 의지하고, 또 함께 성장해 나가고 있다.

구미에서 자라고, 대학 진학을 위해 왔던 대구에 정착한 김 감독은 구미에 살 때만 하더라도 영화인에 대한 꿈을 꾸지 못했다. 김 감독은 “대구에 와서 이런 프로그램들을 접하고 오오극장이나 독립영화를 접하면서 내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처음 꿈 꾸게 됐다”며 “영화는 저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나를 향한 농담 같은 것”이라고 미소를 보였다.

▲ (왼쪽부터) <프리즈마> 장주원 감독, <이립잔치> 남가원 감독, <고백할거야> 김선빈 감독이 제11회 대구여성영화제 포토윌에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관객과 대화(GV)에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소품의 의미부터 작품에 대한 감회, 사투리 에피소드, 시나리오를 쓴 계기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GV 이후 상영관을 빠져나가는 세 감독에게 사인을 청하는 2030 여성관객도 여럿 보였다.

이들은 관객들과 소중한 만남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했다. 남 감독은 “오늘처럼 영화가 상영되고, 관객들과 만날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런 문화 형성이 대구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반신반의했던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관객과 만나면서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가 확장되는 느낌이 들었다”며 “영화를 만드는 것 외에도 영화제나 관객과 소통으로 영화를 완성해 나가는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