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꿈과 현실은 공존할 수 있을까···유지영, 두 번째 장편 ‘birth’

<수성못> 이어 선보인 두 번째 장편 영화
<수성못>, 나의 20대에게 위로를 건넸다면
, 30대의 우리에게 꿈과 현실의 공존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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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birth’가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에 초청됐다. 지난달 10일 영화 상영 후 열린 관객과 대화에서 유 감독은 “첫 번째 장편영화 수성못이 내 20대의 어떤 감정 상태를 대변했다면 이 영화는 30대의 어떤 한 시기에 대한 애도 과정의 일부였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고향인 대구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첫 번째 장편 영화 ‘수성못’에 담았다. “임마, 좀 치열하게 살아라, 치열하게”라고 외치는 주인공 희정의 사투리가 긴장해 있던 관객의 어깨를 내렸다면, 두 번째 영화 ‘birth’는 잠시의 여유 없이 관객을 주인공 재이의 상황에 몰입시킨다.

재이의 예기치 않은 임신과 글을 쓰려는 욕구는 공존할 수 있을까. 영화 ‘Birth’는 신작 출간을 앞둔 젊은 작가 재이와 보습 학원 영어 강사로 일하는 연인 건우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를 통해 관객과 만날 준비 중인 유지영 감독을 지난 1일 오후 대구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에서 만났다.

▲유지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birth’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했다.

Q. 영화 ‘birth’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민평론가상을 받았다. 영화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 대부분이 대구에서 활동하는 인력이라던데.

그동안 만든 작품과 색이 달라서 관객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다. 러닝타임이 길어 혹여나 관객들이 지루하진 않을지 불안했던 것 같다. 관객들이 주는 상을 받고 나선 ‘영화가 만들어진 의미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안도했다. 이젠 불안감을 조금 내려놓고 영화가 어디에서, 어떻게 관객들에게 보여질지에 대한 플랜을 잘 짜야겠다.

내가 있는 거점이 대구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출, 제작부도 대구 인력으로 구성했다. 촬영지도 대부분 대구에서 구했다. 지역성이 드러나지 않는 집, 학원 같은 실내 장면은 굳이 타지역에 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Q. 첫 장편영화인 ‘수성못’을 개봉하고 언론 인터뷰에서 ‘나의 20대가 투영된 영화’라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는 본인의 30대가 투영된 영화인가?

그렇다. 대체로 겪지 않은 것에 대해선 사유할 수 없고 사유하지 않으면 창조할 수 없다. 내가 겪은 일에서 파생된 생각, 깨달음이 대개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수성못은 나의 20대에게 ‘그렇게까지 아등바등 살았어야 했나’라는 현실적인 위로를 던진 영화다. 일이 잘 안 풀리더라도 개인의 탓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말하고 싶었다. birth는 임신과 출산, 꿈 사이에서 지금 나와 내 주변이 당면한 문제다. 관객에게 ‘원하는 일을 통해 성장하는 것’과 ‘곁에 있는 사람들과 평온하게 사랑을 공유하는 것’이 공존할 수 있는지 질문하고 싶었다.

▲영화 ‘birth’는 신작 출간을 앞둔 젊은 작가 재이와 보습 학원 영어 강사로 일하는 연인 건우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진=부산국제영화제)

Q. 주인공 재이의 직업을 작가로 정한 이유가 있는가?

작가는 내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예술 분야의 직업이다. 영화 현장에 있는 한 두 달을 제외하면 일 년의 대부분을 시나리오를 쓰며 보낸다. 여성 예술가가 원치 않은 임신으로 다다르고자 하는 목표치에 다다를 수 없는 게 영화의 주요 설정이다. 드라마틱한 효과를 위해 주인공의 직업을 무용수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인물에 대해 잘 표현할 수 있어야 관객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금메달이나 1등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자기 자신과 싸우며 집요하게 매달리는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다. 글을 써서 책을 낸다는 건 자기만족을 위해 달려가는 일이다.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재이의 욕망은 남과 경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신을 통해 겪는 심리 변화가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결혼은 적성’이라는 유튜브 댓글을 봤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고, 거기에 도달하려는 욕망이 강한 사람일수록 결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맞춰야 하는 결혼과 내 목표를 이루는 과정을 같이 할 수 없는 성격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걸 알면서도 떠밀리듯 결혼하면 어떻게 될까? 그 댓글을 보는데 ‘birth’, 그리고 재이가 생각났다.

Q. 반면 재이의 애인 건우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건우를 통해선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가?

가족을 울타리라고 표현한다면 건우는 그 울타리를 지키려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반면 재이는 울타리를 틀로 느끼고, 오로지 나와 내가 쓰는 창작물에만 집중하고 싶은 한 인간이자 여성이다. 재이가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는 숙명을 안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 반대에 있는, 바닥에 발을 딱 붙이고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사는 인물이 필요했다.

이 영화가 여성영화로 보여져야 셀링포인트를 잡기 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재이와 건우의 비중이 51대 49이더라도 건우 또한 똑같이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강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둘이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두 주인공의 대비가 영화에 꼭 필요했다. 임신이라는 계기로 두 캐릭터가 변화해 가는 모습도 관전 포인트이다.

Q. 주인공 외 인물도 모두 내 주변에 있음 직해 공감이 됐다. 캐릭터를 구상할 때 어디서 영감을 얻나?

큰 서사 안에서 주인공을 축으로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을 그린다. 기능적으로 필요한 캐릭터이지만 영화 속에서 기능적인 인물로 보이지 않게끔 다양한 군상의 사람을 조합해 만드는 것 같다. 그 과정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선과 악, 이분법적으로 인물을 그리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항상 사람이 가진 양면성을 보여주려 한다.

▲유지영 감독과의 인터뷰는 1일 오후 대구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에서 진행됐다.

Q. 이 영화의 장르는 무엇인가? 여성영화인가?

드라마다. 여성영화인지 묻는다면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답하겠다. 내가 여성감독이고 영화의 주인공이 여성이어서 그런 질문을 받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그렇게 정의되면 틀 안에 갇히는 느낌이 든다.

나 스스로 ‘여성영화’라는 네이밍을 한 적은 없다. 대체로 여성감독이 만드는 영화를 여성영화로 분류한다. 특히 독립영화신에선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하다. 홍보에 이점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영화는 여성, 남성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보단 인간 재이, 인간 건우에 초점을 맞췄다. ‘인간’으로 볼 때 이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본 후에 ‘여성영화’라고 말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 전, 혹은 보고 난 후에라도 단순히 여성감독, 여성 주인공이라 해서 여성영화라 부르는 건 그 영화를 편협하게 만들어 선입견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고민 끝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그렇다면 여성영화란 무엇인가’ 질문하게 된다.

Q. 한동안은 birth 상영을 준비하고 영화제 GV에 참여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시겠다. 구상하고 있는 다음 작품이 있는가?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앞으로 뭘 만들어야 할지 재정비할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까진 내 안에서 끌어올린 경험과 감정, 질문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앞으론 좀 더 타인, 사회에 눈을 돌리고 싶다.

물론 지금까지 만든 영화에서도 개인과 사회가 별개로 작동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많은 일기장 속 질문에서 시작했다면 다음 영화는 기사 한 토막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