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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차 지입차주 화물운송 기사 구원자(61) 씨는 푸르밀의 전신인 롯데우유 시절부터 제품을 운반했다. 구 씨는 전주공장에서 푸르밀 제품을 받다가 10여 년 전쯤 대구공장으로 왔다. 서울우유, 남양우유 같은 유제품 동종업계 1군 회사와 비교하면 운송료가 낮지만 그래도 평생을 일한 회사이니만큼 자부심도 있었다.
구 씨는 “사실은 롯데 계열에서 분리될 때 좀 서운했다. 대리점에선 롯데라는 이름이 갖는 인지도가 있었는데, 그걸 떼면 메리트가 없을 거 같았다”며 “하지만 이미 직업을 바꾸기엔 몸이 일에 적응한 상태였다. ‘푸르밀’ 인지도가 올라가는 만큼 내 근무 경력도 10년에서 20년이 되고, 20년이 30년이 됐다. 회사가 제대로 된 통보 없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유제품 생산기업 푸르밀이 사업 폐지를 통보한 지 2주가 지났다. 푸르밀 직원들은 매각 절차를 통해 노동자들의 고용을 책임 지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 측은 기존 방침대로 사업종료를 준비하는 걸로 알려졌다. 28일부턴 일반직과 기능직 전 사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관련기사=푸르밀 폐업 예고, 대구공장 화물차 기사 44명도 실직 위기(‘22.10.24.))
하지만 푸르밀 제품을 운반하는 화물운송 기사들에겐 제대로 된 공지조차 없다. 이들은 계약 문제 때문에 올해 말까지는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는 조건인데다, 소유한 트럭이 푸르밀 제품에 맞춰 특수 제작되어 있어서 다른 일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입계약을 맺고 푸르밀 제품만 운반하는 화물운송 기사는 전주 80여 명, 대구 40여 명 정도다. 노동조합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15년이다.
홍승우(39)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푸르밀지회장은 “화물운송 기사들에겐 아직 계약 해지 통보도 안 왔다. 우리가 소속된 운수회사가 통보를 안 받았으니, 우리에게도 통보가 오지 않은 상황”이라며 “계약이 족쇄가 됐다. 11월 말 공장이 문을 닫게 되면 우리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데, 계약기간인 12월 31일 전에 다른 일을 하게 되면 계약을 위반한 게 된다”고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교섭 진행 중…“공장 정상 매각할 때까지 공장 운영 멈추지 말라고 요구”
지난 26일 화물연대와 푸르밀 사측은 교섭을 진행했지만, 사측 대표자가 나오지 않아 흐지부지 끝났다. 화물연대 푸르밀지회는 공장이 정상적으로 매각되기 전까지 공장 운영을 멈추지 말라고 요구한다. 대부분 유제품 설비여서 생산을 중단하면 노조가 원하는 ‘제대로 된 매각’이 어려워진다. 설비 대부분이 생원유를 취급해서 가동을 멈출 경우 세균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노조에 따르면 대략 3일 가동을 멈추면 회복하는데 일주일이 걸리고, 일주일을 중단하면 회복이 어려운 상태가 된다.
특히 푸르밀 제품 운송기사들은 푸르밀 제품 운송에 맞춰 차량을 특수 제작해서 다른 유제품 기업 제품을 운송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상황이다. 홍 지회장은 “푸르밀의 대리점은 영세한 곳이 많아 대부분 골목 안에 있다. 회사에서 15년 전 쯤 ‘5톤 트럭으로 축소해라, 차 크기도 최대한 작게 만들어라’고 요구했다. 그때 8톤 트럭을 운행하다 설비를 바꾼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홍 지회장은 “우리에겐 5톤 트럭이 산업 설비다. 자동차 연식을 떠나서 딱 푸르밀 제품을 운송할 수 있게 특수 제작했는데, 회사가 갑작스럽게 폐업을 통보했으니 얼마나 당황스럽겠나”라며 “회사마다 우유 상자 크기가 다르고 각자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설비를 가지고 밖에 나가도 이직이 어렵다. 젊은 기사들 중에는 최근에 차량을 바꾸거나 새로 투자를 한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구원자 씨는 “그동안 공장에 설비 투자를 하지 않거나 신제품이 나오지 않는 등 낌새가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문을 닫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며 “30년을 근무한 사람에게조차 회사는 일말의 배려를 하지 않고 있다. 회사가 최소한의 도리를 해주길 요구한다”고 전했다.
한편, 일반직과 기능직 사원들이 가입된 한국노총 산하 푸르밀 노조는 31일 오후 영등포구 본사에서 사측과 2차 교섭을 진행한다. 내달 1일에는 화물운송 기사들에 대책 마련을 위한 화물연대와 사측 간 교섭이 예정돼 있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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