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카카오가 차야 할 ‘개목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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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업무를 준비하려 해도 메일함을 볼 수가 없다. 카카오 서버에 문제가 생기자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다 불현듯 상실감이 들었다. 내가 작성한 최초의 이메일은 무엇이었을까? 허겁지겁 기억나는 이메일을 뒤져보다 핫메일 계정 하나에 로그인 했다. 이 계정의 최초 메일은 2008년 군인 시절 존경했던 스승에게 쓴, 손이 오그라드는 메일이다. 그 당시 나의 고민과 조언을 구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몇 줄의 편지가 그 당시 몰두했던 문제와 상황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기록은 기억이고, 기억은 자아다. 싸이월드와 스타크래프트를 하려고 1998년부터 이메일을 썼으니, 아무래도 이메일 10년 치는 다음 메일 다른 계정에 있나 보다. 데이터가 소실되지는 않겠지만 당장 나의 과거가 미궁에 빠지자 초조해졌다.

데이터센터 화재 이후 뉴스나 SNS에서 접하는 다른 사연도 다채롭다. 메일 접속이 안 돼 업무 준비를 못하고 있다는 기자 소식, 생일날 카카오톡 접속 불능으로 선물을 못 받았다는 사람도, 청첩장을 보내기 어려웠다는 사연도 있다.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카카오 킥보드를 타다가 서비스 중단 사태에 반납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른 사람도, 카카오T 콜로 손님을 받지 못해도 계약상 이유로 다른 플랫폼을 사용할 수 없어 영업에 지장이 생긴 택시 노동자 이야기도 있다.

판교 한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가 수많은 사람의 생활을 대혼란에 빠트렸다. 이 사태에서 카카오와 데이터센터 업체의 잘못이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카카오는 여태껏 독자적 데이터센터조차 마련하지 않았고, 사고 시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서버를 분산하는 조치도 미흡했다.

정부가 방송통신재난대응상황실을 구성했듯, 이건 단지 불편의 문제, 기업의 윤리 문제가 아니라, 생활, 노동, 금융과 재산권에 관한 공적인 문제다. 돌이켜보면 통신은 시민에게 행정기관의 어떠한 행정보다도 큰 효용을 줬던 거 같다. 통신의 마비는 정부·공공기관을 상대로 한 어떠한 파업보다 큰 위력인 듯 느껴진다. 파업과 관련한 형벌은 금방 떠오른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공공의 영역을 어지럽힌 사태에서 이를 처벌할 제도는 바로 떠오르는 게 없다.

태풍 힌남노 피해 복구를 위해 일당 백 수십만 원에 노동자를 모집했다는 포스코 사례가 떠오른다. 포스코가 아주 윤리적 기업이어서 수고하는 노동자에게 고액의 일당을 줬다기보다는, 비용 이상의 손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선택한 조치다. 기업이 사고를 내 공적 피해를 유발하면 형사적으로 민사적으로 막대한 손해를 보도록 해야 한다. 카카오 그리고 공공기관이 통신과 데이터와 관련한 보안·안전 문제를 점검할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그 제도는 공공 영역으로서 통신에 민주적 개입을 확대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장정일 작가는 카카오 사태 직전 <뉴스민> 기고글에서 카카오의 다음 메일 계정 일원화의 절차적 문제에 대해 “한때 세계의 주인은 신이라고 가정되었지만, 매개의 주인은 인터넷을 거머쥔 사람들”이라며 “인터넷이 물이나 공기 같은 공공재가 된 지금, 로그인을 카카오계정으로 통합하는 것 같은 변경은 시민사회의 공론과 승인을 거쳐야 한다”고 썼다. (참고=[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개목걸이’를 사고서)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