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학대 재판 대응에 1,000만 원 기부한 고양이 모래회사 이야기

[인터뷰] 친환경 고양이 모래 판매하는, 양리아 (주)스템프 대표
세계 고양이의 날에 창립한 회사
고양이에서 시작해 고양이로 끝나는 하루
광고비 '0원' 회사, 광고 대신 동물단체에 기부
라이브방송에선 제품 보다 동물권 이슈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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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양리아 (주)스템프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회사에서 300km 이상 떨어진 경북 포항의 법원에 있었다. 연두색 회사 로고가 새겨진 흰색 옷을 직원들과 맞춰 입고, 방청석에 앉아 한 재판의 결과를 지켜봤다. 그날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제1형사부는 호미곶 한 폐양어장에서 길고양이 여러 마리를 포획해 죽인 학대범에게 징역 1년 4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양 대표는 이 사건의 법률 대응을 위해 동물권행동 카라에 1,000만 원을 기부했다. 그저 영리만을 추구하는 회사가 아니라, 고양이 모래를 만드는 회사로서 ‘언제나 생명을 살리는 길 위에 서 있는’ 회사가 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양 대표와 직원들은 재판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도 참석했다. 그는 “활동가 분들 말을 들어보니 이 정도 실형이 나오는 게 드문 일이라고 한다. 저희 기부가 도움이 됐길 바란다”며 “직원들과 함께 사건 판결을 지켜보기 위해서 왔다. 모래를 더 열심히 팔아서 기부를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관련기사=법원, 포항 폐양어장 길고양이 학대범 징역 1년 4개월 실형 선고(‘22.09.20))

▲ 지난 20일 경북 포항 호미곶 폐양어장에서 길고양이를 포획해 잔인하게 죽인 학대범 재판을 방청하고, 이후 동물권행동 카라 주최 기자회견에서 참석한 (주)스템프의 양리아 대표(가장 왼쪽)와 그 직원들.

양 대표는 2019년 8월 (주)스템프를 창업했다. 몇 년 만에 연 매출 50억을 달성했다. 네이버 기준으로 고양이 모래 판매 점유율 1위 회사다. 회사는 곡물(옥수수, 카사바)로 만든 친환경 고양이 모래인 ‘써유모래(써스테이너블리 유얼스·Sustainably yours)’를 비롯해 강아지 풉백(산책용 배변봉투)과 푸치패드(재사용 강아지 배변패드), 고양이 캣그라스(고양이용 풀) 등을 판매한다. 회사는 펫 비즈니스 중에서도 ‘친환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모래와 풉백은 생분해 제품이다.

광고비 ‘0원’ 회사, 광고 대신 동물단체에 기부
라이브방송에선 제품보다 동물권 이슈 언급

양 대표는 회사가 이렇게 단기간 급성장할 줄 몰랐다. 광고에 한 푼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기부’를 했다. 회사는 여러 동물 보호소에 번갈아 가면서 매달 100만 원 상당의 모래 후원을 하고, 때때로 지정 기부도 한다. 가장 최근에 진행했던 라이브 방송에선 판매 수익 10%를 사육곰을 위해 후원했다. 지난 3.1절에는 ‘한반도에서 멸종된 동물’이 그려진 만세운동 포스터를 제작해 배포했다.

주 고객층인 고양이 반려인들이 동물권 이슈에 관심이 많은 점이 영향을 미쳤다. 이른바 선한 영향력의 효과는 입소문을 통한 회사의 성장으로도 이어졌다. 광고에 돈을 쓰지 않아도 회사 제품과 가치, 방향성에 공감하는 고객들이 입소문을 내줬다. 양 대표 역시 고객들의 관심과 사랑에 부응해 지금의 회사 정체성을 이어가고 싶다.

친환경 모래라는 점이 환경과 고양이 건강에 관심이 많은 ‘집사님들'(고양이 반려인) 수요를 충족시켰다고 생각해요. 특히 광고비 쓸 돈으로 기부를 하는 점도 고객들에게 와닿은 것 같아요. 반려인들이 다른 반려인에게 소개해주는 입소문으로 판매가 늘었어요.

보통 라이브 방송은 저렴한 제품 구입이 목적이라 대체로 방송을 끝까지 보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방송에는 보통 3~4만 명이 참여해 지켜봐요. 저희 제품이 어떻게 좋다는 이야기 보다 사육곰의 현실이 어떻고, 동물학대 사건이 있었고, 하는 동물권 이슈를 언급하고 있어요.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어요. 언제나 생명을 살리는 길 위에 서 있는 회사가 되고 싶어요. 저희 제품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고객들이 ‘좋은 일’을 했다고 느끼게 하고 싶어요. 사람과 동물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도록 힘이 되고 싶어요.”

▲ 사육곰을 위한 기부를 진행한 지난 라이브방송 홍보물. 스템프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이 소개돼 있다.

회사 창립일은 세계 고양이의 날
회사에선 길고양이 돌보고
집에선 파양묘, 구조묘 등 3마리 집사
“일 하는 거요? 재밌어요”

양 대표 역시 5년 차 ‘집사’다. 회사 창립일은 세계 고양이의 날인 8월 8일이다. 회사엔 터를 잘 잡은 길고양이 5마리가 있다. 모두 중성화가 되어있고 회사 사람들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다. 각자 다른 집으로 입양 갔다가 다 커서 파양된 타미와 쏘니 자매들, 그리고 구조한 삼색무늬 샤샤까지 세 마리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직접 구조해 임시보호를 하다가 입양 보낸 길고양이도 10여 마리가 넘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니 일에 대한 만족도도 높다.

“20살부터 12년을 키운 반려견이 있었는데, 심장병으로 ‘무지개 다리’를 건넜어요. 강아지를 키울 때는 길에서 유기견을 만날 일도 잘 없었고, 다른 강아지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고양이를 키우고 보니 내 고양이 말고도 다른 고양이에게도 관심이 가더라. 길에서 흔히 고양이를 만날 수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하나의 브랜드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이 되고, 관심 있는 분야니까 재밌게 일하고 있어요. 모래를 구매한 집사님들이 드실 간식이나 제품을 같이 보내드리는 이벤트를 하기도 해요. 친환경 관련 기준을 명확하게 정립해 나갈 수 있는 점도 좋아요. ‘집사님’들과 상담 전화를 하다가 고양이 자랑도 하며 공감대도 쌓아서 재밌어요.”

▲ 펫 박람회에서 자사 제품을 설명하고 있는 양리아 대표

양 대표는 이번 포항 사건 이후에도 꾸준히 동물학대 사건 대응을 위한 기부도 고민하고 있다. 펫 산업이 성황을 이룰 만큼 반려문화가 커졌지만, 동물학대 역시 그 이면에서 어둡게 몸집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 늘어나 펫 산업이 성황을 이루지만, 동물학대가 과거 10년 동안 10배 늘었어요. 잔인한 동물학대 사건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사소한 사건이라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동물학대가 더 줄어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동물학대는 약자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고, 또 다른 강력범죄로 이어져요. 동물학대에 관심을 갖는 건 단순히 동물보호를 넘어 사람을 보호하는 일이기도 해요. 앞으로도 동물학대 사건 대응을 위한 기부를 하려고 해요.”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