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밀어주는 사람 뽑아야지”

[총선 현장 -대구 달성군] 새누리계 후보 간 싸움 벌어진 총선

19:45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은 지하철 1호선 연장 공사로 쿵쾅거리는 소리가 쉴 새 없다. 장이 서지 않은 화원전통시장은 한산했다. 장날이었던 6일에는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 4명이 동시에 유세로 북새통을 이뤘었는데 말이다.

화원전통시장 인근 달성군민독서실이 있다. 20대 총선 화원읍 사전투표소다.?추경호 단수추천부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의 ‘옥새들고 나르샤’까지 달성군은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을 어느 지역보다 심하게 겪었다. 공천 전 여론조사에서 추경호 후보보다 지지율이 높았던 구성재 후보는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그래서일까. 박근혜 대통령을 4선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달성군민 사이에서 “여당이 그카면 안 되지”라는 쓴소리도 나온다. 새누리당은 이미 지난 2010년 5회 지방선거에서 쓴맛을 본 경험이 있다. 당시 한나라당 공천에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문오 달성군수는 한나라당 이석원 후보를 3% 차이로 이겨 당선됐다. 김문오 군수는 지난 2014년 6회 선거에서는 무투표로 당선됐다.

또, 지난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선 박근혜는 88.5%를 받아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19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이종진 후보 득표율은 55.63%에 그쳤다. 당시에도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구성재 후보는?23.30% 득표로 2위를 차지했다.

사전투표 첫날, “낙하산 같은 거 싫어”
새누리당에 돌아선 달성 민심, 새누리계 무소속 후보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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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투표를 마치고 나온 한 20대 남성은 “1번이 지명돼서 내려온 느낌이 너무 들어서 1번은 피하고 싶었다. 너무 어이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달성군은 기호 1번 추경호 후보 이외에도 2번 조기석 (더불어민주당), 5번 조정훈(무소속), 6번 구성재(무소속) 후보가 출마했다. 1번이 아니라도 선택지가 많다. 그는 “누구 찍었는지는 말 안 할래요”라며 바쁘게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층에서 공부하다 내려온 20대 여성 두 명도 “공천 문제도 시끄럽고, 공약을 보긴 했는데 사실 다 마음에 안 들어서 그나마 나은 사람을 찍었다”며 “그나마 우리 동네에 지하철 연장해 준다는 후보 찍었다”고 말했다. 구성재 후보 이야기다.

추경호 후보를 ‘낙하산’이라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 60대 남성은 “낙하산 같은 거 싫어. 구성재가 19대에도 출마해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왜 경선도 없이 그래하노”라며 “이때까지는 계속 새누리 찍었는데, 오늘은 정당 투표도 기권 찍었다”고 말했다.

70대 남성도 “둘 다 달성 출신이기는 한데, 낙하산은 너무 거슬린다”며 “여기도 민심이 많이 기울었다”고 말했다. 한 50대 남성도 “이한구, 최경환이가 대구 다 죽여 놨지. 초짜들 다 공천해 놓으면 무슨 일을 하느냐”며 “새누리가 공천을 잘못했으니까 이제 바뀌어야 된다. 당은 새누리 뽑아도 무소속 뽑았다”고 말했다.

공천 파동으로 새누리당에게서 돌아선 민심은 야권이 아닌 새누리계 무소속으로 향했다. 화원읍 사전투표소를 찾은 이들 가운데 야당 후보에 대한 이야기는 딱 한 번 들을 수 있었다. 20대 여성인 그는 “후보들 공약이 다 대통령을 위한다길래, 그냥 2번 찍었다”고 말했다.

한 20대 여성은 새누리당 득표율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는 “구성재 후보는 정말 열심히 한다. 저도 후보는 구성재 뽑고, 정당은 새누리당 뽑았다”며 “구성재 후보를 뽑아도 그분이 당선되면 새누리당으로 가는 거 주민들이 알아야 하는데. 이번에 새누리당 공천 문제도 있어서 고정표까지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

추경호 후보 지지자도 많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박근혜 동네니까”, “우리는 보수니까”, “그냥”, “잘 모르니까”, “아는 사람이라서” 등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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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추경호 후보가 화원전통시장 입구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각하 밀어주는 사람 뽑아야지”
구성재 후보 선전에도 1번 새누리 부동층 뚜렷

달성군 현풍면에서 만난 이들은 추경호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가 더 뚜렷했다. 지하철 1호선 종착지 대곡역에서 급행 4번 버스를 타고 20여 분을 달리면 현풍면 사전투표소인 현풍보건소가 나온다. 창밖으론 20여 분 동안 짓고 있는 아파트, 갓 지어진 아파트, 논밭과 하우스가 번갈아 보인다.

9일 오전, 보건소에는 사전투표소를 현풍면사무소로 착각하고 한참을 헤매다 온 어르신들이 더러 보였다. 이들은 3층 투표장까지 올라가기 전 1층 소파에 앉아 한참을 쉬었다.

70대 부부는 “집이 요 옆인데 면사무소까지 갔다 왔다”며 소파에 앉았다. 지지하는 후보가 있느냐고 묻자 곧장 남편이 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각하를 밀어주는 사람 뽑아야지”. 아내가 덧붙였다. “대구 달성은 우리 고향이고, 또 (박근혜 대통령) 지금도 잘하고 있잖아요”.

한 60대 남성은 “대구니까 1번이지”라며 “박근혜 정부 2년밖에 안 남았는데 같이 나가야지. 그래야 정책도 일관성이 있지 않겠나”고 말했다.

투표를 하고 내려온 70대 여성은 “하도 많아서 다 찍어줄라카이 디다”며 긴 정당 투표지에 대해 불평했다. 그는 “요새는 공천 때문에 옛날하고 틀리다. 싸우고 돌아 댕기니까 되나. 지금 표가 갈려가 걱정이다. 무조건 1번이 돼야 되는데. 모른다. 우리는 또 1번하고 같은 성이라”며 걱정했다. 그러면서 속삭이며 말했다. “무소속(구성재 후보) 거기는 아버지하고 똑같이 생겼데. 내가 거기 아버지 나올 때 선거 운동했거든” 구성재 후보의 아버지는 유신정권 시절 도지사, 내무부장관을 지냈다. 또, 13, 14대 신민주공화당,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국회의원(달성, 고령군)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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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다사토요시장

다사토요시장에 모인 네 후보
알쏭달쏭 달성 민심, 최후의 승자는?

이날 오후 네 후보는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다사만남의광장에 모였다. 토요시장이 열리는 날이다. 지하철 2호선 대실역 1번 출구, 토요시장 입구에 자리한 분식집에서 굽는 수제 떡갈비 냄새가 진동했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네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각자 자리를 맡고 섰다. 아파트 단지 쪽 횡단보도에서 과일을 팔던 한 상인은 “아이고~ 선거 때문에 장사 다 망했다. 나흘만 참자”며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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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토요시장에 모인 네 후보들

기호 5번 조정훈 후보는 오후 1시부터 선거 유세를 시작해 아파트 주민 민심 잡기에 나섰다. 만남의 광장에서 잠시 숨을 고르던 조정훈 후보 앞으로 한 20대 남성이 다가왔다. 그는 “힘내십시오. 대구에 야당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하고 지나갔다. 조정훈 후보는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건넸다. 나중에 보니 그는 조기석 후보 선거 운동원이었다.

그 사이 조기석 후보는 상인이 깎아다 준 더덕을 씹으며 광장에 앉은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조 후보는 “처음 출마했을 때는 기호 2번은 없고, 새누리당 싸움이었는데 요즘은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오후 3시, 구성재 후보가 광장에서 유세를 시작했다. 한 70대 여성은 구성재 후보와 포옹하더니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는 “아버지부터 장관하고 잘했다. 아버지 닮아서 정치 잘할 거다”고 말했다.

“구성재가 여론이 훨씬 좋았는데, 곽상도를 보냈다가 추경호를 심어놓고 우리가 왜 반발을 안 하겠노. 유권자가 등신이가. 국민이 판단해서 현명한 사람 뽑아야지. 위에서 보내놓고 이러면 안 된다”

그는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 분노하며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새누리당한테 가서 카소. 뱉은 말은 지켜야지. 안 그러면 다 떠나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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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가량 구성재 후보 유세가 끝나고, 조기석 후보 유세가 시작됐다.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던 50대 남성은 “옛날에는 무조건 민주당 찍어줬는데, 찍어놓으면 자꾸 떨어져서 이제 안 찍는다”며 “이번부터 정의당 찍고, 후보는 구성재 찍었다. 새누리 하는 꼴 보기는 싫은데, 다른 후보들은 인지도가 별로 없어서”라고 말했다.

조기석 후보 유세가 끝나고 추경호 후보 유세가 이어졌다. “픽 미, 픽 미 새누리~ 기호 1번 새누리~”하는 선거 노래가 나오더니, 춤판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100여 명이 추 후보 유세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뒤이어 조원진 새누리당 국회의원(대구 달서병 출마)도 등장했다.

현풍면에 사는 40대 주부는 직접 연설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 누가 뽑았습니까. 우리 손으로 뽑았습니다. 그분이 내려보내신 분 우리가 뽑아야 합니다”고 소리쳤다.

유세를 지켜보던 60대 남성은 “추경호가 좋지. 공부도 많이 하고 젊고 능력도 있고. 그런 사람이 중앙에 줄 대줘야 달성군이 산다”고 말했다.

기호 1번 추경호 후보와 기호 6번 구성재 후보 지지여론이 박빙이다. 승리자를 예측할 수 없는 전국에서 주목하는 총선 격전지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후,?’선거의 여왕’의 자존심을 구겼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이번 총선에서 ‘선거의 여왕’ 자존심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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