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96년 강릉 대침투작전에 뛰어든 장병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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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26년 전, 1996년 9월 18일 강릉에 북한 잠수함 및 무장공비 26명이 침투한 사건이 떠오른다. 도주한 공비들을 소탕하기 위해 험준한 산으로 뛰어들던 전우들의 거친 숨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당시 필자는 동해안을 지키는 철벽부대(당시68사단, 현23경비여단)에서 근무했다. 26년 전 이날, 오전 2시께 사단 지휘통제실에서 강릉 안인진리 바닷가에 ‘불길이 솟아올랐다’라는 상황보고만 듣고 현장분석팀엔 포함되지 않았지만, 상관에게 보고하고 출동하였다. 92년 철원 무장공비소탕작전과 93년 소말리아 평화유지활동 경험이 현장으로 더 빨리 달리게 했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주위를 살폈으나 그믐이고 파도가 심해 신고한 지점의 미상 물체가 바위섬인지 무엇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대공협의점 판단팀에서 분석결과 ‘북한 상어급 잠수함’으로 결론 내리자, 그제야 바위처럼 보였던 물체를 잠수함의 출입구인 해치로 파악했다.

저 잠수함에서 무장공비가 뛰쳐나올 것 같았다. 주위를 살피니 산비탈 칡넝쿨을 잡고 도주한 흔적이 보였다. 그 아래 벗어던진 오리발과 잠수복을 보았다. 등골이 오싹했다. 산비탈 위에서 아래로 수류탄 하나만 던져도 합심조가 몰살할 것 같았다.

겁에 잔뜩 질렸지만, 이 상황을 상관에게 보고해야 했다. 당시만 해도 휴대폰이 일반화되지 않았다. 인근 정동진으로 달려가 공중전화를 찾았지만 먹통이었다. 1km 내에 있는 등명락가사 사찰에 있는 공중전화기도 먹통이었다.

불안이 엄습해왔다. 사찰 주변에 청바지 입은 남자가 보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친다. 나중에 생포된 이광수는 “최초 잠수함에서 빠져나와 도주하다가 대열에서 이탈하여 이 사찰 뒷산에 숨어 있었다”라고 증언했다. 시간대로 보면 얼추 비슷하여 생각할수록 아찔하다.

26년이 지나도 그때 상황이 너무나 또렷하고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날 오후 4시 30분경 강릉 청학산 중턱에 북한군 11명이 쓰러져 있다는 상황보고를 듣고 작전이 이것으로 종결될 것으로 생각했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북한 상어급 잠수함 정원이 약 12명이기에 한 착각이었다.

북한군 공작조가 도주하는데 방해가 되는 승조원 12명을 사살한 것이다. 현장조사과정에서 의심을 갖던 차 마침 이광수가 생포되어 그 내막을 안 것이다. 상황이 급변했다. 무장공비들이 바로 주변에 있다고 생각하니 오금이 저렸다. 북한군의 총상에서 나는 비린내는 현장에선 극도로 긴장하여 잘 맡지 못했다.

작전 첫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사를 거르고 밤을 새웠다. 대부분 장병이 그랬다. 둘째 날부터 사단 민심 장교로서 적 예상 은거지를 향해 투항권고 방송을 자원했다. 기자들은 산속에서 수색작전을 취재할 수 없는 관계로 투항권고 방송을 집중취재했다.

뒤늦게 현장에 온 방송기자가 필자의 방송차량에 탑승하여 리포터를 했다. 이를 저녁 뉴스에서 본 합참의장이 “작전 차량에 기자를 태운 군기 빠진 장교가 누구인가?”라며 질책했다고 전해 들었다. 당시 위관 장교였던 필자는 반성하기보다 반발했다. 진짜 군기 빠진 장교가 되고 말았다. 합참의장은 부하와 기자의 안전을 우려해서 한 말씀인데.

작전개시 2개월쯤, 합참의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초기대응 실패’를 인정하면서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운을 뗐다. 기자들은 ‘누가 누구의 책임을 묻는가‘ 반문하면서 오히려 합참의장의 발언을 비판했다. 기자들은 무장공비를 소탕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작전을 펼치고 있는 장병을 떠올렸을 것이다.

▲육군 충용군단이 오늘 21일부터 군단 예하 전 부대가 ‘리멤버 ’96 충용 완전작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충용군단 제공]

해마다 이맘때 이 작전을 복기하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세월이 흐를수록 아쉬움에서 자부심으로 바뀌고 있다. 죽음을 무릅쓰고 적을 추격하는 전우들을 더 존경한다.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알기 때문이리라

당시 철벽부대는 우리 군에서 가장 열악했다. 인원과 장비가 책임지역에 비해 가장 부족했다. 부대에서는 수없이 상급부대로 충원을 건의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럼에도 당시 ‘초기대응 실패’ 소리를 들어가면서 목숨 걸고 무장공비를 소탕하기 위해 산속으로 뛰어드는 장병들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으랴.

오늘 9월 21일, 동해안을 책임지고 있는 육군 충용군단은 ‘리멤버 ‘96 충용 완전작전’ 슬로건 아래 적 도발 대비훈련을 하고 있다. 96년 강릉 대침투작전을 상기하면서 만반의 태세와 능력을 갖추고자 훈련을 하고 있다.

10일이 지나면 10월 1일 국군의 날이다. 날마다 더 새롭고, 날마다 더 강한 국군이 되길 바라며 미리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