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힌남노가 지나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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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남노가 휩쓸고 간 자리, 하늘이 거짓말처럼 맑게 갰다. 맑게 갠 하늘조차 원망스러운 이들이 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유족이다. 처참한 지하주차장부터, 유족의 오열이 긏지 않는 장례식장까지 사람들의 목소리를 귀에 담았다.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사망한 시민 8분 중 6분의 유족을 만났다. 물을 말이 궁색했다. 묻지 않아도 그들은 처연한 슬픔을 비쳤다. 언론도 그 슬픔을 주목했다. 유족과 고인의 안타까운 사연은 보고 듣는 사람의 가슴까지 두드린다.

하지만 그곳에 슬픔만이 있지는 않았다. 복합적이다. 고통, 상실, 후회, 자책이 있다. 그리고 분노가 있다. 참혹한 현장을 되새기는 유족의 말에서 불쑥불쑥 분노가 표출됐다. 그 분노는 갈팡질팡했다. 분노는 책임과 연결된다. 누구를 탓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차량을 치워야 한다는 방송이 원망스러우면서도 유족은 관리인의 입장마저도 이해했다. 그래서 원망의 방향은 스스로를 향하기도 했다.

사고 발생 후인 7일,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에게 무한책임이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에 무한책임을 진다는 각오로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책임은 정치와 행정에 있다. 하지만 사고 결과에 대한 도의적 책임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사고 발생의 책임이다.

대통령은 도의적 책임을 고백하기에 앞서 무엇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고, 앞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지 밝혀야 한다.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주차장의 재해 방지 설비의 존부와 그 적정성, 설비 마련을 강제하기 위한 체계를 평가하고 밝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이번 사고에서 유족에게 남은 의문이 하나 더 있다.

침수된 주차장은 3개였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포항 태풍 관련 재난 발생 당일인 6일 W 1차 아파트는 오전 7시 41분 신고를 접수 받고 10분 뒤인 51분에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해, 12시 7분 배수 및 수색을 시작했다. 사망자가 1명 발생한 W 2차 아파트 주차장은 오전 8시 45분에 신고를 받고 12시 7분 배수와 수색이 시작됐다. 사망자가 1명 발생한 S 아파트에는 오전 9시 46분 신고를 받은 뒤 12시 39분 배수 및 수색활동이 시작됐다.

구조 인력과 관심이 집중된 곳은 포항 W 1차 아파트 지하주차장이다. 다른 두 주차장에서 숨진 고인들의 유족을 모두 만났다. 이들은 분노를 표현했다. 소방당국의 구조 인력 부족이나 구조대 운용에 적절한 조율이 없었던 탓에 구조가 늦어지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포스코 수해 현장과 1차 아파트에 구조인력이 전부 쏠린 것은 아닙니까. 배수 작업 때문에 1차 아파트 현장 구조에 지연이 있었는데, 그동안이라도 다른 곳에 여력을 활용할 수는 없었습니까”

다른 유족은 말했다. “수색이 늦어져서 우리가 직접 주차장에 여러 차례 들어갔습니다. 콘트롤타워가 없었습니다. 있었다면 살아 돌아오셨을 수도 있지 않을까···그 1%의 가능성을 자꾸 되묻고 있습니다.”

힌남노는 기후 위기의 결과이지, 그 자체로 악은 아니다. 힌남노를 악으로 만든 것은 무엇인가. 콘트롤타워의 권한은 누구에게 있나. 이번 참사를 진두지휘한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책임지고 시스템을 정비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야 반복되지 않는다.

▲포항 인덕동 아파트 지하주차장 사고 현장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