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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4일의 금요일’은 2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뉴스민>의 집중취재 코너입니다. 간단한 단신으로 다뤘던 뉴스의 이면을 한 발 더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14일의 금요일’ 첫 주제는 지난달 28일 대법원이 내린 철강업계 첫 불법파견 판결 이후를 살펴봤습니다. 상·하로 나눠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 이후 포스코를 들여다봅니다.
(상) 승소 후 첫 출근, 크레인 노동자도, 정비 노동자도 ‘안전관리자’
(하) 포스코 정규직 전환, 앞으로가 문제···제도개선은?
“소송할 때 포스코는 우리더러 자격증 있고 장기 숙련된 노동자라고, 독자적인 전문 업체 직원이고 포스코 직원은 아니라고 했는데요. 승소하고 포스코 정규직으로 가니까 이제는 수십 년 경력과 무관한 안전지킴이를 하라네요.” (30년 경력 50대 포스코 크레인 운전사 A 씨)
포스코가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 이후 소송을 제기했던 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직고용한 노동자에게 기존 직무와 무관한 안전관리직을 맡도록 하고, 급여 제도를 변경하고 삭감하는 근로계약서를 쓰도록 했다며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16일, A 씨를 포함해 포스코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승소한 사내하청 노동자 55명이 포스코 포항본사에 첫 출근 했다. 이들은 이날 포스코 작업복을 지급 받고 교육을 받았다. 작업복은 하청업체에서 입던 작업복과 유사했지만, 대신 명찰에 포스코 마크가 찍혔다. 지난 7월 28일, 지난한 소송 끝에 대법원이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을 때 A 씨는 ‘뭔가 해냈다’는 마음에 벅찬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작업복을 받은 그날 회사와 개별 면담 시간에 근로계약서를 받아들면서다.
근로계약서를 읽어보던 A 씨는 깜짝 놀랐다. 이번에 직고용으로 전환된 노동자를 안전지킴이(현장 안전관리자)로 채용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직군 또한 기존 포스코 현장직 직군(E 직군)도 아니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30년 넘게 크레인을 운전했던 A 씨는 오랫동안 했던 일과 전혀 다른 업무에 배정한다는 계획이 당혹스러웠다.
급여도 문제였다. 회사 측과 개별 면담을 마친 동료들과 확인해보니, 연봉은 4,000만 원~5,000만 원 수준으로 저마다 차이가 있었다. 동료들은 대체로 근속년수 20년을 넘겼기 때문에 하청업체에 있을 때는 6,000만 원 이상은 받았다. A 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회사는 근속 기간을 인정하지 않고, 호봉제 대신 연봉제를 적용했다. A 씨와 동료들은 다 함께 근로계약서 서명을 거부했다. 사원 교육 기간 3개월이 끝나면, 이들은 어떤 직무를 수행하게 될까.
정규직과 같은 현장, 협력 업무 수행 30년
수시로 포스코 작업지시 받아
90년대 처음 포스코에 출근한 이후부터 줄곧 A 씨는 포스코 본사 직원과 같은 공장에서 협력했다. 포스코는 95년부터 순차적으로 크레인 운전 업무를 외주화하기 시작했다. 본사 직원이 앉았던 자리를 하청업체 소속 A 씨가 이어받았다. A 씨는 크레인 운전실에 설치된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로 수시로 포스코로부터 작업지시를 받았다. 때때로 포스코 직원이 하는 일을 A 씨가 처리할 때도, 포스코 직원이 A 씨가 하는 작업을 대신 할 때도 있었다.
근속기간이 길어지며, 초기에 느끼지 못했던 문제들이 A 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급여가 본사 직원과 비슷했는데, 해가 갈수록 점점 차이가 커졌다. 하청업체에 임금인상을 요구해도 하청업체는 자체적으로 노동자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결정할 능력이 없어 보였다.
97년부터 한국은 IMF 위기를 겪으며 파견법(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본격적으로 간접고용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포스코는 직영으로 하던 여러 업무를 외주(아웃소싱)로 넘기기 시작했다. 파견법은 근로자 파견 허용 업종을 명시했는데,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은 근로자 파견에서 제외했다.
A 씨와 동료들이 보기에 포스코의 사내하도급은 업무 지시나 근무태도 평가 등 여러 면에서 볼 때 도급이 아닌 파견에 해당했다.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의 파견으로, 불법파견이라는 점을 인식하면서 하청노동자들은 포스코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준비했다.
2011년, A 씨가 40대에 시작한 소송은 2022년, 50세를 넘겨 종료됐다. 철강업계로선 대법원에서 처음 불법파견을 인정한 판결이 됐다. 16일부터 시작되는 석 달간의 사원 교육을 받으러 광양에서 포항 숙소로 넘어왔을 때, 다른 동료들에게서도 상기된 마음을 느낀 터였다. 근로계약서를 받아들고 실망했지만, 오랜 시간을 견뎌서인지 마음을 다잡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의아한 심정입니다. 포스코가 불법 행위를 한 게 인정된 거잖아요. 그러면 사과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상황은 마치 우리가 죄라도 지은 거 같아요. 그렇게 다뤄지고 있어요. 부당합니다. 12년 동안 소송을 했는데요, 대법원 선고를 듣고 ‘아, 뭔가 해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제 첫발을 내디딘 거네요. 가야 할 길이 멀게 느껴집니다.” (A 씨)
억울한 하청노동자···”일의 경중 따질 수 있나요”
포스코 분사로 하청노동자 된 구자겸 씨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장 구자겸(57) 씨는 87년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구 씨가 근무하는 부서마다 외주화가 진행됐다. 처음 근무한 열연공장 크레인이 외주화됐고, 크레인을 몰던 구 씨는 전기로에서 철강재를 생산하는 미니밀 공정으로 옮겼다. 구 씨가 미니밀 공정으로 옮겨가자 미니밀 공정도 폐지됐다. 공정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생산된 철판의 품질이 좋지 않아, 외주화가 아니라 공정 자체가 폐지된 것이다. 원료 하역으로 옮겨간 구 씨는 그곳에서도 원료하역 업무를 외주화한다는 말을 들었다.
정규직이기 때문에 구 씨는 다시 다른 부서로 옮겨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원료 하역 업무를 맡은 지도 8년, 새로운 곳에서 후배들에게 새로운 일을 다시 배우는 일이 버겁게 느껴졌다. 옮겨가는 곳마다 외주화를 했던지라, 체념하는 마음도 들었다. 당시 포스코는 분사 업체(하청 업체)로 넘어가는 직원들에게 어느 정도 위로금을 지급했고, 포스코 정규직 급여의 70%를 보장하겠다고도 했다. 급여가 다소 줄더라도 익숙한 업무를 이어가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하면서, 구 씨는 분사 업체로 넘어갔다.
얼떨결에 하청노동자가 되고 보니, 원청 정규직이던 시절과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선 급여가 대폭 줄었다. 급여 70%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약속을 이행하라고 소송을 걸어봤지만, 1심만 승소했을 뿐 대법원에서는 최종 패소했다. 급여는 삭감됐고, 노동강도는 더 세졌다. 본사 직원 시절 업무를 4조 3교대로 수행했지만, 하청업체에 와서는 3조 3교대를 해야 했다. 하청업체 관리자들이 가져가는 보수를 위해 더 많이 일해야 했다.
여러 근무지를 경험한 구 씨는 제조업에는 일의 경중을 나누기 어렵다고 느꼈다. 하청으로 넘어간 원료 하역도 그렇다. 하역 업무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부수적인 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일의 중요성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하역은 제철소 조업이 시작되는 첫 관문이다. 고로에 넣을 원료를 정확한 비율로 일정하게 투입해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때 정확한 원료 하역이 이뤄져야 한다. 하역이 늦어지면 선주에게 상당한 체선료를 물어야 하고, 효율적으로 서둘러 하역하면 선주로부터 조출료를 받을 수 있는 점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구 씨는 포스코가 소송을 제기한 하청노동자뿐만 아니라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하청노동자도 정규직으로 모두 전환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렇지 않으면 불법 상태를 용인하는 셈이다. 다른 하청노동자가 같은 소송을 제기한다면 승소할 가능성이 크기도 하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다양한 직무의 하청노동자가 정규직 채용 대상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뉴스민>이 입수한 2017년 포스코 사내하청 분류표를 보면, 사내하청 업무는 크게 운송, 정비, 조업지원 철도수리, 포장, 크레인, 기타 총 6개 분류된다. 정비 업무에 가장 많이 소속(6,309명)됐고, 조업지원(5,145명), 크레인(1,998명), 포장(983명), 운송(882명), 철도수리(84명) 순으로 나타났다. 대법원 판결에서는 운송, 정비, 조업 지원, 크레인 등 각기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 하청노동자들이 정규직 채용 대상자로 인정됐다.
때문에 구 씨는 포스코가 불법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하청노동자 정규직 전환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구자겸 씨는 “포스코가 정말로 존경받는 기업이 되려면 지금 포스코의 사내하청 직원 전체를 놓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현재 추가 소송인단을 모집하고 있는데도 회사가 간접적으로 사내하청노동자가 소송에 참여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구 씨는 “대법원 판결이 난 만큼 포스코가 법대로 따라주길 바란다. 급여나 직무에서 잘못된 방침을 밀어붙인다면 끝까지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계속=(하) 포스코 정규직 전환, 앞으로가 문제···제도개선은?)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