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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플 때 누구나 치료 받을 수 있는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보편적 권리다. 하지만 보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면서도 하소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이들은 한국의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아프거나 다쳤을 때 쉽게 병원을 찾지 못한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더욱 큰 손실을 감당해야 하지만, 이들은 미등록 단속의 두려움 속에서 권리를 제대로 요구하지 못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제때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의이자 국가의 책무라는 이들이 있다. 이주민 건강권 실현을 위한 동행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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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빛누리 (이주민건강권실현동행)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한 대학병원의 입원실이었다. 붕대는 머리 뿐 아니라 왼쪽 눈까지 감쌌다. 곁엔 아무도 없었고 나를 보자 그녀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조금 전 집주인의 신고로 경찰이 와서 몇 가지를 묻고 갔다며 불안해했다.
베트남에서 노동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여성은 출국기한을 넘겨 미등록이 되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공장이 문을 닫기도 했고 몸이 아파 치료를 받느라 일을 못 하는 기간이 많아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들어올 때 쓴 비용이라도 벌기 위해 미등록 상태로 일을 해야 했다. 그러던 중 같은 나라의 미등록 남성을 만나서 동거를 하게 되었고 베트남으로 돌아가서 결혼식을 하겠다는 꿈을 가졌다.
두 사람은 싼 월세를 찾아서 대구 외곽의 시골집을 구했는데, 집주인의 본채와 조금 떨어진 곳에 창고를 개조한 개정집이었다. 부부라 하더라도 일요일에만 같이 보낼 뿐 평일에는 주간, 야간으로 나뉘어 일을 했다. 주간 일을 마치고 혼자 잠이 들려는데 누군가 문을 흔들었다. 누구냐 물었지만, 답도 하지 않고 계속 흔들기만 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하는 도중 낡은 문은 열렸고,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도 채 못 본 사이에 쇠파이프로 머리와 몸을 맞았다. 여성의 비명을 들은 집주인이 나오고서야 그는 도망갔다.
병원으로 옮겨진 여성은 머리와 온몸의 부상보다는 경찰에 신고했다는 주인의 말이 더 무서웠다. 부부의 미등록 신분이 출입국에 알려져 강제출국 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지금은 경찰서에서나 병원에서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미등록 사실을 통보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었지만, 여성은 경찰을 피해 몰래 퇴원하고 이사를 하는 것으로 결론을 지어버렸다.
코로나 위기 속에 이국땅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미등록 이주민의 다수가 출국을 했다. 그러나 아직 많은 미등록 이주민이 이국땅에서 최소한의 건강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언제 단속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간다. 한국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한국으로 취업하기 위해서 본국을 떠나올 때 쓴 돈을 미처 갚지 못한 상태거나, 한국에서 산업재해나 몸이 아파 일을 못 하는 기간이 길어져 별 수 없이 미등록으로 남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본인 선택으로 미등록으로 한국에 남았더라도 이들은 항상 단속에 걸려 강제추방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사업장에서도 미등록 신분을 이용하여 불이익을 받아도 신고도 제대로 못 한다. 건강보험 적용도 못 받기 때문에 감기로 병원을 가더라도 5만 원을 내야 하고, 중병으로 수술이나 입원을 하게 되면 수천만 원을 내야 한다.
코로나 시대 미등록 이주민은 최소한의 건강권 보호에서도 가장 뒷순위이다. 코로나 초기 마스크도 약국에서 살 수 없었고, 그나마 이용하던 공공의료기관에서도 내몰려야 했다. 미등록 이주민은 대부분 1회만 접종하면 되는 얀센으로 제한돼 30세 미만 미등록 이주민은 접종할 수도 없었다. 접종 이후 휴가를 내서 쉴 수 있는 권리는커녕 고용주와 관리자 눈치를 보며 접종도 조심스럽다.
모두에게 힘든 코로나 시기는 ‘불법’으로 낙인찍힌 미등록 이주민에게는 최소한의 건강권도 지킬 수 없는 더 어려운 시기이다. 우리는 이들에게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우리가 건강권을 지키는 권한을 미등록 이주민도 배제않고 나누어야 할 것이다.
고명숙 이주와 가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