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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5일,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원실에 판결문을 발급받으러 갔다. 평소 입고 다니는 금속노조 조끼를 입고 있었다. 조끼에는 “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엄중처벌, 노조 할 권리 쟁취”가 적혀 있었다. 법원보안관리대원은 구호가 적혀있는 조끼를 입어서 들어갈 수 없다며 가로막았다.
“조끼를 벗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기가 막혔다.
“민원실에 판결문 발급받으러 왔습니다.”
그 사이 관리대원은 6명으로 늘어났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 취급했다. 우리는 ‘들어갈 수 없는 근거를 보여 달라’고 했다. 관리대원은 법원의 내규집을 가지고 와서 출입통제 조항을 보여줬다. 우리는 집회시위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재차 설명했다. 그러나 관리대원은 우리의 말을 들은 체 만체 했다. 우리는 관리책임자와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팀장이 나타났다. 우리는 30분간 출입을 통제당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했다. 팀장은 보안관리대원보다 한술 더 떴다. 그는 “불만이 있으면, 나중에 감사계 민원청구를 하세요!”라고 말했다.
속이 터지는 줄 알았다. 너무 어이가 없으니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반드시 문제제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명함을 달라고 했다. 끝까지 왈가불가하다가 조끼는 벗지 않고 들어갔지만 보안관리 대원들의 감시를 받으며 판결문을 발급받았다. 법원에서 나올 때까지 그들은 우리를 감시하며 따라다녔다.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보안관리 팀장과 서울남부지방법원장을 상대로 인권침해 당한 내용을 낱낱이 작성해서 고발했다.
지난 6월 27일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는 ‘법원청사 출입제한’ 사건(22진정0016800)에 대하여 의미 있는 결정을 내렸다. 민원인의 과잉 제지에 대해 피진정인 최낙철(팀장), 김용철(법원장)에게 직무교육을 실시하라는 권고 결정을 내렸다.
인권위는 민원인이 일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장소에 자유롭게 출입할 자유가 있고, 헌법에 근거하여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인권위는 “진정인과 같이 법원 방문 목적이 분명하고 청사 내에서의 집회 및 시위 가능성이 없거나 낮아 진정인이 청사에 출입하더라도 법원의 기능이나 안녕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진정인이 집회 및 시위와 관련한 복장을 착용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청사 출입을 차단한 것은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진정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속이 시원했다. 결정문을 들고 바로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찾아가고 싶었다. 언젠가는 서울남부지방법원에 갈 일이 있으면 가서 사과를 꼭 받고 싶다.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법원이 민원인을 상대로 버젓이 인권침해를 벌였다.
이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사법기관이 집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노동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노동조합에 대한 사법기관의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법원은 어느 곳보다 인권감수성이 높아야 한다. 법원은 이번 인권위의 판단을 계기로 확연히 달라져야 한다. 인권은 숨 쉬는 모든 곳에 깃들어 있다.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