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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집회 도중 공장 진입로 등에 래커칠로 항의 문구를 쓴 구미 아사히글라스 해고자에게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징역형을 선고 받은 해고자는 파견법을 위반한 원청·하청업체 대표가 각각 징역형 6개월, 4개월 선고에 그친 점을 지적하며 검찰과 법원이 회사에 편파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반발했다.
7일 오전 10시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형사2단독(재판장 서청운)은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 등 해고자와 노조 관계자 5명의 공동재물손괴 등 혐의에 대해 선고 공판을 열었다. 재판부는 2019년 6월 구미 산동면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에서 연 집회에서 차헌호 지회장이 집시법을 위반하고 공동재물손괴죄도 있다며 징역 4개월과 집행유예 1년, 나머지 해고자 등 노조 관계자 4명에 대해서는 공동재물손괴죄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차 지회장 등의 래커칠이 사측 재물의 효용을 해했다고 인정한 결과다. 재판부는 다만 래커칠에 대응해 아사히글라스가 아스콘 재포장 등의 방법으로 5,200만 원을 지출한 점은 일반적인 방법은 아니라며 직권으로 수리비 액수를 ‘미상’으로 정정했다.
재판부는 집시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신고한 장소 범위를 뚜렷이 벗어난 경우는 아니라서 죄가 되지 않는다면서도, 집회 과정에서 래커 스프레이를 사용한 점은 집시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래커 스프레이 사용은 재물손괴에 해당하는데, 래커 스프레이를 이용한 낙서가 집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불가피한 방법은 아니라는 점에서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해고된 후 근로자 관계를 주장하며 집회를 이어왔는데, 이 주장이 2019년 8월 민사 판결과 그 이후 파견법 위반 유죄 판결도 선고됐다”며 “피고인 입장에서 해고 후 오랜 기간 규탄 집회를 열었다.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주장도 어느 정도 공감은 간다. 장기간 쟁송이 계속돼 겪고 있을 경제적, 정신적 고통도 상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민주사회에서 집회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하지만, 그 시위는 적법하고 평화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선고 후 차 지회장은 “부당해고 상태가 7년째 지속되고 있는데, 사측의 위법한 행위를 법이 해결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고, 조그마한 위법 사항도 엄중 처벌한다”며 “그에 비해 기업의 불법 행위에는 우리 법이 얼마나 관대한가. 이를 엄하게 다루지 않으니 기업이 불법 행위를 마음 놓고 저지를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판결에 손배가압류를 잡자!손에 손을 잡고!(손잡고)도 논평을 통해 규탄했다. 손잡고는 “기업의 불법행위와 노동자의 집회시위를 바라보는 검찰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검찰은 ‘불법파견’을 저지른 아사히글라스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징역 6개월을 구형한 반면, ‘불법파견’에 항의한 집회를 개최했다는 이유로 차헌호 지회장에 대해서는 징역 10개월을 구형했다”고 밝혔다.
이어 “헌법상 권리인 노동기본권을 우선하는 판결을 하는 것이 헌법을 수호하는 법원의 역할”이라며 “불법을 저지른 아사히글라스와 임직원들의 명예, 재산은 불법을 저지른 자들이 감수해야 할 몫이지, 불법파견의 피해를 입고 노동권을 훼손당한 노동자들이 감수할 이유가 없다. 법원은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고 꼬집었다.
한편 아사히글라스 측은 해고자들에 대한 형사 고소 외에도 복구 비용 5,200만 원에 대한 별도 민사소송을 제기해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앞서 해고자들은 2019년 6월 구미시 산동면 아사히글라스 앞에서 집회를 개최하고 회사 정문 앞까지 이동해 래커 스프레이를 이용해 ‘아사히는 불법파견 책임져라!’, ‘인간답게 살고 싶다!’ 등의 문구를 쓴 바 있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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