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한민국 심장부 서울이다. 공동투쟁을 이끌어가는 곳들을 찾았다. 89년 노조를 만들고, 전노협을 거쳐 민주노총까지 질기게도 끌어온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공장폐쇄에 맞서 공장 지붕꼭대기에 고공농성을 하는 29년차 장수투쟁사업장이다. 현재 남은 조합원은 7명이지만, 8번째 조합원도 있다. 꼭 같은 공장에서 일해야만 조합원인가? 그/녀들의 투쟁에 동의하고 내일처럼 두 팔 걷어붙이고 함께 하면 조합원이지…바로 그런 사람이 옆에 든든히 지켜주고 있어 8번째 조합원은 키다리아저씨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겨울만 열 번을 농성장에서 보냈다는 기타 만드는 공장 노동자들이 있다. 정작 기타 만들 때는 기타 한 번 쳐본 적 없지만 10년 투쟁을 거치며 기타 연주와 노래를 부르며 투쟁현장의 꽃이 된 콜트콜텍지회는 새누리당 중앙당 앞에서 농성 중이다.
최근 새누리당 앞에는 노인네들이 매일같이 시위 중이라고 한다. 하루는 김무성이 죽일 놈이라고 떠들어대고, 하루는 김무성이 살리자고 떠들어 대는 곳. 새누리당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전망 좋은 명당자리에 콜트콜텍지회 천막농성장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지회장님은 늙은 영감들의 지랄염병을 보고 있자니 마음만 어지러운데, 전날 장애인들이 투쟁연대를 오셔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장애인들은 3월 25일부터 26일까지 1박 2일로 서울에서 ‘전국장애인대회’를 열었다. “장애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제 폐지 투쟁!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요구하며 자신의 투쟁으로 콜트콜텍 노동자, 유성 故 한광호 열사 투쟁,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과 시민들을 만나 폭넓고 깊은 연대를 했다. 이를 통해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했다.
점심시간, 세종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앞에서 짜장면을 시켜먹기로 했다. 탕수육도 추가했다. 고진수 동지가 세종호텔에 오면 럭셔리한 호텔화장실 이용권을 주기로 약속했기에 우리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향했다. 워~워~ 확실히 지하철역 화장실과는 차원이 다르다.
세종호텔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 짜장면이 올 때까지 기다리며 피케팅을 했다. 복수노조 만들어 노조를 탄압하고, 노동자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해고까지. 겉만 번지르르 호텔의 가죽을 쓴 여인숙만도 못한 경영진들이다.
전국을 순회하면서 참 많은 사장 놈들을 만났다. 하나같이 노동자 고혈을 빨아서 배불리는 놈들인데 노조라고 하면 치를 떨며 깨려고 한다.
마지막 일정은 통신기술직공동투쟁단 발대식이다. 세종호텔에서 3분 거리. 통신기술직공동투쟁단이 꾸려진 것은 희망연대노조 티브로드,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씨엔앰?케이블통신 비정규직과 삼성전자서비스노동자와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싸움을 해보자는 취지다.
이미 통신기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면서부터 “진짜 사장 나와라”는 싸움을 해왔다. 그 와중에 해고자도 늘어나고 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제대로 뒤집기 한 판 하겠다는 태세를 갖췄다. 정말 대단한 규모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통신기술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과 제대로 한 번 싸워 권리를 따내고 지키면 좋겠다.
계획한 3박 4일 일정은 끝났지만, 서울시청 광장에 분향소도 없이 차디찬 새벽서리 맞으며 맨몸으로 버텨내며 한광호 열사 분향소 설치 투쟁을 하는 유성기업지회 동지들에게 가야 했다.
우리가 서울시청에 간 사이 서울역 광장은 “총선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서울시청 광장을 둘러싼 경찰들은 비닐 한 조각 깔 자리도 허용하지 않았고, 우리 동지들은 맨몸으로 버티고 있었다.
우리는 기다렸다. 서울역에 모인 “총선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이곳으로 오기를. 바람이 너무 차다. ‘옷이라도 좀 두껍게 입고 올걸’ 후회하면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촛불을 켰다. 촛불에 한 손을 대피고 또, 한 손을 대피면서 추위와 싸워야 했고, 도발하는 경찰과도 싸워야 했다. 행진 무리가 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경찰의 발소리가 분주하다. 서울시청광장을 다 에워싸기 시작했다. 이제 들어오는구나. 제발 들어와라. 이곳, 한광호 열사가 있을 서울시청 앞으로 와라. 바래고 또 바랐다. 깜깜해져서야 한 무리가 고 한광호 열사 영정사진을 들고 들어왔다.
그렇게 투쟁사업장 전국순회는 끝을 달려갔다. 72시간 동고동락하며 함께 기뻐하고 아파했던 공동투쟁 동지들과 인사를 나눌 시간이다. 공동투쟁을 확대하자는 다짐과 고 한광호 열사 투쟁에 함께하자는 약속을 남기고 손을 흔들었다.
2014년 ‘연대와 저항의 약속 72시간 송년회’를 위해 밀양-삼평리 할매들과 함께 떠났을 때 할매들은 투쟁하는 노동자를 향해 두 팔을 크게 벌려 안아주셨다. 굴뚝 위 노동자를 향해 두 팔을 크게 벌려 하트를 만들어주셨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람스러웠다. 할매들은 ‘나는 니 편이다. 나는 너희 고통을 잘 알고 있다. 나도 너희들이 겪었을 그 고통 때문에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가 너희의 아픈 상처를 닦아주고 보듬어주고 싶다’는 몸짓으로 보였다.
그 두 팔이 얼마나 포근해?보였던지 나도 두 팔 벌려 누군가를 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72시간 긴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두 팔 벌려 누군가를 안을 만큼의 용기는 부족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72시간 동안 만났던 수많은 장기투쟁사업자 중 내가 한 번이라도 찾아가?봤던 곳은 몇 곳 없었다. 마치 내가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곳을 나는 미처 다 헤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72시간 동안 깨달았다.
소중한 사람들이 생겼다. 앞으로 함께 할 동지들이 생겨서 가슴 설레는 72시간이었다. 밀양-삼평리 할매의 두 팔처럼 포근한 동지들 말이다.
온 마음을 다해서
나도 투쟁하는 노동자로
지금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고 함께 승리하고 싶다.
그날까지 투쟁사업장 공동투쟁 버스는 계속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