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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에서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9살 마사오(유스케 세키구치). 여름방학을 맞았지만, 전혀 기쁘지 않다. 아빠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멀리 떠났다고 한다. 소년은 갈 곳도, 함께 놀 친구도 없다. 심심해하는 마사오는 엄마가 보낸 소포를 본다. 젊은 할머니와 아기인 자신, 낯선 엄마의 사진과 주소를 확인한다.
마사오는 사진 한 장과 주소를 적은 쪽지를 들고 무작정 길을 나선다. 소년은 집밖을 나선 뒤 동네 양아치들에게 차비로 모은 2,000엔(약 2만 원)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이웃집에 사는 중년 여성과 그의 건달 남편(기타노 다케시)이 마사오를 구해준다. 중년 여성은 마사오로부터 사연을 듣고 차비로 5만 엔(약 50만 원)을 주며 남편을 마사오의 보호자로 딸려 보낸다. 집에서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느니 마사오가 엄마를 찾는 여행에 동행해라는 것이다. 이렇게 마사오는 이름도 모르는 이웃집 아저씨와 동행한다.
아저씨는 아내가 준 돈을 차비로 쓰지 않고 경륜에 탕진한다. 심지어 마사오가 들고 나온 차비 2,000엔도 뜯어내 도박하는데 써버린다. 요행이 벌어들인 돈도 술을 먹는데 써버린다. 술 먹는데 정신이 팔린 아저씨는 심지어 마사오를 잃어버리고, 마사오는 위기에 처하게도 만든다. 겨우 마사오를 구해낸 아저씨는 드디어 마사오의 엄마를 찾아줄 결심을 하지만 여정은 순탄치 않다.
우여곡절 끝에 마사오의 엄마가 있는 토요하시에 도착하고, 마사오는 사진 속의 여성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 상태였고 마사오는 울며 돌아선다. 사실 엄마는 마사오를 버리고 재혼한 것이었고 마사오가 받을 충격을 우려한 할머니가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아저씨는 애써 마사오를 위로한다. “주소는 맞는데 사람이 아니구나. 너희 엄마는 다른 데로 이사가셨나봐.”
둘은 도쿄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한 요양원을 찾는다. 그곳은 아저씨의 엄마가 있는 곳이다. 아저씨는 치매에 걸린 엄마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눈물을 글썽이더니 그냥 나온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저씨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사오를 보며 “너도 나와 같은 처지로구나”라고 중얼거린다. 동네로 돌아온 둘은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그제야 마사오는 아저씨의 이름을 묻는다. 아저씨는 멋쩍은 듯 대답한다. “기쿠지로.” 마사오는 집을 향해 팔짝팔짝 뛰어간다.
<기쿠지로의 여름>은 주인공이 여행길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로드 무비의 뼈대에 슬랩스틱 코미디로 살을 붙인 영화다. 주제는 소외와 위로지만 어둡지는 않다. 기쿠지로는 외톨이 마사오를 보호하기는커녕 구박하기 일쑤다. 하지만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마사오에게서 발견하면서, 둘 사이에는 묘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특히 기쿠지로는 짧은 여행에서 생의 의미를 회고한다.
여행이 시작되면서 영화가 시작되고 여행이 끝나면 영화도 끝난다. 그런데 마사오와 기쿠지로는 여행이 시작되기 전과 후는 다르다. 방학을 보낸 아이들이 성장하듯 짧은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둘도 성장했을 것이다. 영화의 메시지는 마사오의 여정이 아니라 기쿠지로의 변화다. 기쿠지로는 마사오와의여정을 통해 점차 달라진다. 여름방학을 맞이한 건 마사오지만 영화 제목이 <기쿠지로의 여름>인 이유다.
<기쿠지로의 여름>은 히사이시 조가 연주한 피아노 독주곡 <Summer>가 유명하다. 맑고 살가운 여운을 남기는 <Summer>가 흐르는데, 마사오가 열심히 달리는 장면을 보면 힐링하는 기분이 들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한여름이 배경인 영화이지만 얼어붙은 모든 것이 녹아내리고 새 기운이 돋는 봄과도 어울린다. 일상에 지쳤다면 이 영화를 보고 잠깐이나마 순수함을 되찾길 기대해 본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