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약 10%다. OECD가 집계한 우리나라 전체 병상 중 공공병상 비율 말이다. 정확히는 9.7%(2019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이 71.6%라는 걸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수치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공공의료기관의 눈부신 역할이 알려지면서 공공의료 확충 요구가 터져 나왔고, 정부도 여기에 호응해 계획을 내놨다. 대구시도 제2대구의료원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실화되지 않은 ‘계획’은 그저 문서 쪼가리에 불과하고, 제2대구의료원 건립은 새로운 시장의 등장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올라야 할 곳은 저 높은 곳에 있는데, 그 오르막길은 가파르기가 에베레스트 저리가라다. 그럼에도 그 길을 올라야 하는 이유를 <뉴스민>이 살펴본다.
[공공의료, 오르막길] ① 절반만 맞은 홍준표의 공공의료 상식
[공공의료, 오르막길] ② 대구 달성군 기곡1리에서 병원 가기
[공공의료, 오르막길] ③ 경북, 열악한 의료데이터 그보다 더 한 현실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 분석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대구 달성군의 외과TRI(기준시간 내 의료이용률)은 87.8%다. 전국 시군구 평균이 57.76%로 달성군 정도면 250개 시군구 중 61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외과TRI 기준시간은 60분. 하지만 기곡1리에 사는 대전댁과 그 이웃들의 이야기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데이터는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차가 없고, 운전할 수 없으며,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현실은 데이터가 그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관련기사[공공의료, 오르막길] ② 대구 달성군 기곡1리에서 병원 가기)
이러한 현실은 경북으로 갈수록 더 심해진다. 지난 4월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서 정다은(26) 씨를 만났다. 서울에서 그림을 전공한 그는 몇 해 전 고향 봉화로 돌아왔다. 전공한 그림으로 향후 진로를 고민하는 그는 봉화를 다시 떠나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그림을 그리며 상한 손목을 치료할 수 있는 마땅한 병원이 봉화에는 없기 때문이다.
봉화의 외과TRI는 6.81% 전국 250개 시군구 중 12번째로 낮다. 반대로 60분 안에 외과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인구비율은 36.19%로 확인된다. 전국 250개 시군구 평균은 8.57%. 봉화는 250개 시군구 중 23번째로 많은 거주 인구가 1시간 안에 외과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데이터상으로 확인되는 것만이다. 정 씨를 포함한 봉화 주민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더 많은 봉화 주민이 1시간 안에 외과 치료를 받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손목 물리치료를 받으려면 전문병원으로 가야 하는데요. 여긴 전문병원 가려면 멀리 나가야 되니까 그게 불편하죠. 요즘은 치료는 안 받고 그냥 집에서 마사지기로만 하고 있어요. 치료를 하려면 영주로 가야하거든요. 차로 가면 30분 하면 가긴 하는데 아무래도 가깝지는 않죠. 저는 아직 운전해서 영주에 갈 만한 실력이 안되어서, 엄마한테 부탁을 해야 하는데 엄마가 바쁘다 보니까, 저는 당장 상태가 나쁜 편은 아니다 보니 엄마가 ‘다음에’ 그러면 그래 다음에 가야지, 이렇게 되는 거 같아요.”
실제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라 할지라도 운전을 할 수 없다면, 대중교통이 자주 있지 않으면 30분은 그저 보기 좋은 숫자로만 존재할 뿐이다. 봉화군에서도 봉화읍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춘양면이 이 정도라면 다른 지역은 말할 것도 없다. 춘양면 주민은 병원을 가려면 봉화읍으로 나가거나 인접한 영주시로 나간다고 전했다.
김상길(77) 씨는 “병원 가려면 봉화(읍)까지 나가야 되고, 영주나 안동 나가요. 차 없는 사람들은 불편하지요”라며 “버스 타고 안동 같은데 가려면 한 시간 반 씩은 가야 되니까. 봉화(읍) 해성병원은 한 4, 50분 가야지요”라고 설명했다.
해성병원은 춘양면 주민들 누구나 언급하는 봉화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병원이다. 2차급 병원으로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의사 5명, 간호사 22명이 병상 97개를 운영하고 있다. 내과, 신경과, 정형외과, 마취통증의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해성병원도 해결하지 못하는 게 있으면 영주나 안동으로 나가는거다.
4년 전 봉화군 명호면으로 귀촌한 김 모(71) 씨도 “쉽게 말해서 건강검진을 하나 받으려고 해도 봉화 같은 데는 내시경 하는 곳이 없어요”라며 “그러면 영주로 나가야 돼. 영주로 나가도 제한이 있고, 여자들은 건강검진 하려면 영주에 나가도 일부 병원밖에 없어서 굉장히 불편해요”라고 말했다.
영주에는 시가지에 기독병원을 포함해 병상 100개가 넘는 2차급 병원이 4곳이 있고 종합병원인 영주적십자병원도 있다. 조금 더 차를 몰아 안동으로 가면 3차급 종합병원도 만날 수 있다. 다만 영주는 적십자병원을 기준으로 차로 30분, 안동은 안동의료원을 기준으로 1시간은 나가야 한다.
전국에서 12번째로 낮은 외과TRI
그보다 더 낮은 것 같은 체감도
“운전 능숙하지 않아 병원 가는 것 망설여”
봉화에서 영주로, 봉화에서 안동으로
1시간씩, 3시간씩 걸려도 내재화된 불편함
외과보다 훨씬 긴급을 요하는 응급실 이용에는 제약이 더 크다. 응급실은 기준시간이 30분으로 더 짧아서 봉화군의 응급실 TRI는 4.27%까지 떨어진다. 전국 평균은 58.49%, 봉화군보다 TRI가 낮은 시군구는 전국에 11곳 밖에 없다.
이 역시 “여름 농사철에 뱀이라도 물리면 빠르게 갈 수 있는 곳이 봉화(읍)인데, 거기서도 완전한 처치가 안 돼요. 거기서 응급처치하고 안동으로 가라, 영주로 가라, 이렇게 하지”라는 김 씨의 설명을 듣고 보면 온전한 4.27%인지는 의문이 따른다.
사실, 봉화군처럼 거주민이 거주지역에서 온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 받지 못한 채 영주로, 안동으로 벗어나야 하는 건 의료 형평성 차원에서 큰 문제다. 경북은 전국에서도 의료 형평성이 매우 낮은 곳이다. 지난달 20일 대구공공보건의료지원단이 주최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구의료원 공공의료 역할 강화 방안 도출 심포지엄’에서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자기 동네에서 치료 받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하필이면 경북이 높다. 서울에 비해 엄청난 규모로 많다”며 “의료 자원도 마찬가지다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도 조금 과장하면 경북은 서울의 ⅓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형평성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경북의 의료체계는 그대로 대구 의료체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경북의 환자들이 대구로 몰려들고, 그로인한 과부하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응급의료체계는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의 2020년 의료취약지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경북은 23개 시군 중 16개가 응급의료취약지다. 응급의료취약지는 권응급의료센터 1시간, 지역응급의료센터 30분 내에 도달 불가능한 인구가 30% 이상인 시군을 의미한다.
비단 응급의료뿐 아니라 분만부터 소아청소년, 인공신장실까지 경북은 의료적으로 다양한 취약 요소를 안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 스스로는 불편함이 내재된 모습도 보인다. 이들은 공공의료 확충에 대해선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했지만 가능성을 낮게 봤고, 현재도 크게 나쁘진 않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춘양시장에서 만난 오순기(66) 씨는 “큰 병원은 안동, 영주에 있으니까 크게 불편하지 않다”고 했는데, 병원 이용하는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느냐는 물음에는 “글쎄, 하루 종일?”이라고 답했다. 이길방(82), 손금조(81) 씨도 대구나 안동으로 병원을 간다며 대수롭지 않고 말하다가도 병원을 가는 방법과 시간을 언급하면 “불편하다”, “3시간씩 걸린다”고 말했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