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오르막길] ② 대구 달성군 기곡1리에서 병원 가기

뉴스민 10주년 기획취재 [신호, 등] 9. 공공의료
60대 이상 노인들이 대부분인 마을
병원이 일상인 삶···“다리 아프재, 허리 아프재”
운전 못하는 여성에게 주어진 한계
데이터로는 확인할 수 없는 불평등
차로 20분 거리가 버스로는 1시간
기다리는 시간 더하면 1시간 더해져
“기다리는 게 징그럽다, 의사 보는 건 10분”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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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약 10%다. OECD가 집계한 우리나라 전체 병상 중 공공병상 비율 말이다. 정확히는 9.7%(2019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이 71.6%라는 걸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수치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공공의료기관의 눈부신 역할이 알려지면서 공공의료 확충 요구가 터져 나왔고, 정부도 여기에 호응해 계획을 내놨다. 대구시도 제2대구의료원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실화되지 않은 ‘계획’은 그저 문서 쪼가리에 불과하고, 제2대구의료원 건립은 새로운 시장의 등장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올라야 할 곳은 저 높은 곳에 있는데, 그 오르막길은 가파르기가 에베레스트 저리가라다. 그럼에도 그 길을 올라야 하는 이유를 <뉴스민>이 살펴본다.

[공공의료, 오르막길] ① 절반만 맞은 홍준표의 공공의료 상식
[공공의료, 오르막길] ② 대구 달성군 기곡1리에서 병원 가기

“아이고, 말도 하지 마소. 아(아이)가 껄떡껄떡 넘어가면 여기 병원이 있나, 저기 다사, 요새는 다사(읍)가 커져서 병원이 그렇게 많이 생겼지. 전에는 그런 것도 없었어. 없어가지고 요리로 가면 저 산 넘어갔다. 이리, 산으로. 산 넘어갔다.”

휘적휘적, 대전댁(74)은 손을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대전댁은 40여 년 전 대구, 그중에서도 외진 달성군 하빈면 기곡1리에 터를 잡았다. 스물일곱 나이에 결혼한 남편의 어머니가 아팠다. 병수발을 하러 낯선 동네로 들어왔고, 눌러앉았다. 시어머니는 이미 십수 년 전 돌아가셨다. 이제 기곡리는 그에게 또 다른 고향 땅이다.

대전댁의 새로운 고향, 기곡1리는 대구이지만, 대구라고 부르기 애매한 지리적 위치에 있다. 머리 위에 낚시꾼들이 자주 찾는 호수는 면의 이름을 따 ‘하빈지’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경상북도 관할이다. 동네도 얕은 산 사이, 밭 사이로 이곳저곳 찢어져 있다. 그 사이사이 실핏줄처럼 번져나가는 좁은길 끝에 다섯 곳의 자연부락이 형성되어 있고, 10~20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기곡1리 인구는 모두 183명. 대부분이 60대 이상 노인들이다. 이광현(59) 기곡1리 이장은 “주로 다 60대 이상 어르신들”이라며 “저보다 어린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5명 정도. 여자는 좀 더 있겠지만, 많지 않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기곡1리 인구는 모두 183명. 대부분이 60대 이상 노인들이다.

60대 이상 노인들이 대부분인 마을
병원이 일상인 삶···“다리 아프재, 허리 아프재”
운전 못하는 여성에게 주어진 한계

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60대 이상 노인이 많은 동네. 이런저런 이유로 동네 사람들이 병원을 찾아야 할 이유는 많은 곳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대전댁은 “하이고, 병원은 매일 가지예. 다리 아프재. 허리 아프재. 팔 아프재”라고 했고, 이장도 “어르신들은 전부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하니까 주사를 맞아야 된다”고 전했다.

대전댁을 포함한 기곡1리 주민들이 주로 찾는 병원은 다사읍 내에 있다. 대구도시철도 2호선 대실역 인근에는 정형외과, 내과, 통증의학과까지 가지각색의 병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기곡1리 마을회관에서 직선거리로 대략 9km 거리. 차로 이동하면 약 2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하지만 대전댁은 병원 가는 게 곤욕이다. 그는 운전면허증이 없다.

“버스타고 가야지. 버스가 한 대라예. 성서2. 아침에 9시에 버스타면 10시 넘어야 도착하재? 그게 한 시간 안 걸리는데, 중간에 가다 한 20분 쉬었다 가예”

“운전하는 분은 없으세요? 같이 한 차로 다녀오셔도 되잖아요?”

“아, 그러이 희한네. 기곡에는 운전하는 여자가 없다이? 그자?”

어려움은 대전댁 같은 노년의 여성들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운전을 못한다는 건 교통이 불편한 농촌에서 큰 장애물이다. 농촌은 오래된 가부장 문화가 베어있고, ‘운전’은 가부장의 권위를 더하는 배경 중 하나다.

대전댁은 “바깥어른은 운전 안 하세요?”라는 물음에 “하재, 우리 주인이 한 번씩 태워다 주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있으니까 막 싫어하는 기라. 짜증을 막 내. 다음에 니 혼자 가라, 이러재. 그러면 ‘알았다’ 하재. 그런데 이제 가만히 생각해도 혼자는 안 되겠어. 그러면 가시나(계집아이)를 안 부르나”라고 답했다.

데이터로는 확인할 수 없는 불평등
차로 20분 거리가 버스로는 1시간
기다리는 시간 더하면 1시간 더해져
“기다리는 게 징그럽다, 의사 보는 건 10분”

딸마저도 여의찮으면 대전댁은 버스를 탄다. 기곡1리 마을회관 앞까지 오는 버스는 성서2번 뿐이다. 성서2번은 중간중간 쪼개지는 경유 노선을 갖고 있어서 마을 주민들은 정확한 노선도 헷갈린다. 25분마다 있지만 갈 때마다 방향을 달리한다. 어떨 때는 동네에서 서남쪽으로 3km 떨어진 육신사를 경유하고, 다른 때는 동북쪽으로 3km 떨어진 영진전문대학교 칠곡캠퍼스를 경유한다.

▲기곡1리에는 성서2 버스 하나가 들어온다. 여러 갈래로 갈라져 나가는 버스는 동네 사람들도 정확한 노선을 파악하기 힘들다.

많으면 한 시간, 버스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면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린다. 대기시간. 인근에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몰려든 병원은 언제나 만원이다. 재수가 좋으면 10분 만에, 재수가 없으면 한 시간도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만난 의사는 10분도 안 걸려 진료를 마친다.

“병원마다 사람이 꽉꽉 둘러차요. 아이고, 나는 징그럽다. 몇 시간씩 기다리려고 하면 마. 보는 건 또 10분도 안 걸려. 의사 대면하는 건.” 대전댁은 병원 이야기를 하는 내내 마치 고통스러운 병원 처치를 받는 듯 연신 얼굴을 찡그렸다.

진료를 마치면 또 다른 커다란 벽이 기다린다. 사실 병원에 가는 것보다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대전댁을 포함한 기곡1리 주민들에겐 더 큰 곤욕이다. 돌아가는 버스를 한정없이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출발은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탈 수 있지만, 되돌아올 땐 진료가 마치는 시간에 따라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정해진다.

“여기서 가는 건 시간 딱 맞춰 가면 되는데, 이제 진료 다 받고 나와가 버스 기다리는 게 문제지. 그 시간 맞춰서 병원에서 딱 해주나? 안 해주지. 한 시간 더 있다가 올 때도 있다. 아이고 지겹다.” 병원 가는 것만 생각하면 표정이 찡그려지듯, 대전댁에게, 기곡1리 주민들에게 병원 가는 길은 곤욕이다.

하지만 이 곤욕은 단순 데이터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의료 이용의 취약성을 평가하는 지표로 TRI(Time Relevance Index, 기준시간 내 의료이용률)라는 개념이 있다. 환자와 병원 주소를 활용해 이동 소요시간을 분석해 기준시간을 초과하는 비율을 계산하는 개념이다. 통상 기준시간은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180분, 종합병원은 90분이다. 권역응급의료센터와 분만실은 60분, 지역응급의료센터나 응급실은 30분을 기준으로 잡는다.

대전댁을 비롯한 기곡1리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병원은 종합병원(3차) 이하, 1, 2차급 병원이다. 통상 2차의료 기준시간을 60분으로 하는 걸 고려하면 기곡1리는 TRI 충족 지역으로 분류될지 모른다. 다만, 자가용이 있고, 운전할 수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 이거나, 버스를 타고 나가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앞, 뒤 시간을 누락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공공보건의료의 법률적 목적이 지역이나 계층, 분야와 상관없이 국민의 보편적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 증진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대전댁과 그 이웃들은 지역과 계층에서 ‘상관 있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 받고 있는 셈이다.

인근한 보건소 2곳, 없는 것 보다 낫지만···
보건소까지 가는 것도 마찬가지 제약
조금씩 가까워진 버스처럼,
수십년간 조금씩 나아진 생활
병원은 바라지도 않아, 순환버스면 충분

물론 정부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기곡1리 인근에 달성군이 운영하는 보건지소가 두 곳 있다. 반경 약 2km에 무등보건진료소가 있고, 약 3km 안에는 하빈면 보건지소가 있다. 감기 같은 간단한 질환은 보건소에서 해결할 수 있다. 보건소에서 마을로 순회 방문을 하기도 한다.

▲무등보건진료소 앞으로도 버스는 성서2만 오간다.

이광현 이장은 “보건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순회 방문을 한다. 혈압도 보고 약도 좀 가져다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이 이장은 “도움은 되는데 큰 대안은 안 된다”며 “대부분이 농사 짓는 분들이라 무릎, 손목 이런 관절 쪽에 문제가 있어서 주사를 맞아야 하는거라, 나름대로 군에서는 봉사를 하는거라 고맙지만 큰 도움은 안 된다”고 덧붙였다.

보건소까지 가는 것도 마찬가지 제약은 있다. 자가용으로 15분 안팎이면 갈 수 있지만, 버스를 이용하면 대실역 인근 병원을 찾아가는 것과 다를 것 없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주민들은 보건소를 찾을 때 많이 걸었다. 대전댁은 “옛날에는 그정도는 다 걸어다녔지”라고 했다.

이마저도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된 것이란 사실에 가 닿으면 대전댁이 겪은 지난 40년의 고됨에 자연스럽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대실역 인근도 허허벌판이던 시절, 병원은 꿈도 못 꿨던 대전댁은 아이들이 경기를 일으키면 자전거에 아이를 싣고 남편과 산길을 내달려 약도 지어주고 침도 놓는 동네 어른을 찾곤했다. 하나 뿐인 버스가 마을회관을 경유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내 시집왔을 때는 버스가 없어가지고 저기 하빈(면) 못 가서 다리 있잖아요. 거기까지 걸어가서 버스 탔다. 병원도 없어 가지고, 옛날에 할배들 집에서 이렇게 하는 거 있잖아. 침놓는 거, 그거 윽시 갔다. 우리는 애들이이 경기하듯이 놀래가지고, 갔다오면 괜찮거든. 뭐 약도 주고 그런다. 둘이 자전거 뒤에 얼라(아이의 방언) 엎고 자전거 뒤에 타고, 산길을 그래 갔다.”

병원이 없어서 임시방편 민간 의약에 기대던 삶이 비록 오가는데 한 시간 남짓 걸려도 병원을 찾을 수 있게 됐고, 2, 3km 족히 걸어 나가야 탈 수 있던 버스를 마을회관 앞에서 탈 수 있게 된 삶으로 변했다. 수십년의 시간이 쌓아 올린 변화다. 변화는 항상 더뎠다는 것을 알아서 일까. 이들이 바라는 건 큰 것이 아니다.

이광현 이장은 “병원은 채산성이 안나와서 못 들어온다는 걸 안다. 다른 것 보다 순환버스라도 하나가 더 개설됐으면 한다. 지금 있는 버스에 다사에서 하빈이랑 요렇게 빙빙 도는 순환버스가 2시간만에라도 돌면 두 대를 이용할 수 있으니까. 더 낫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