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진보정당 기풍 만들지 못하고 자승자박···지역 기반 정당 돼야”

[인터뷰] 경북에서 진보정당 기초의원 12년 마무리, 엄정애
경북도의원 낙선했지만 득표율 33.9%···남천면 5% 득표는 44%까지
"지역에 기반하지 않는 정치는 예의가 없는 정치"
"정의당, 남 탓하면 안 돼···내부가 단단하지 못해 사람들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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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지방선거에서 경북도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엄정애 전 경산시의원 선거사무소는 낙선 이후에도 분주했다. 3일 금요일 오후에도 엄 전 의원은 선거사무소에서 종일 지역 주민들에게 낙선 인사 전화를 전했다. 경북 경산에서 12년간 정의당 3선 기초의원(초선은 진보신당)을 지낸 터라, 낙선에 실망한 지지자를 달래는 일에도 상당한 품이 들었다.

▲엄정애 전 경산시의원은 경북 경산에서 진보정당 소속으로 첫 선출직 3선에 성공했고, 도의원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국민의힘 후보인 차주식 전 최경환 국회의원 보좌관과 1:1 구도로 진행된 이번 선거에서 엄 전 의원은 7,773표(33.9%)를 얻었다. 국민의힘 출신으로 무소속으로 출마한 다른 지역 후보자보다 높은 득표율이다. 경북도의원 경산시 제3선거구(중방동, 중앙동, 서부2동, 북부동)에 출마한 정병택 무소속 후보는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경산시의회 부의장을 역임했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국민의힘 후보에 밀려 7,436표(30.9%)를 얻고 낙선했다.

엄 전 의원은 진보정당 소속으로 의정활동을 거듭하는 동안 국민의힘 선호도가 비교적 더 강한 읍·면에서도 상당한 지지를 이끌어 냈다. 선거구인 남천면을 보면, 6회 지방선거 전체 득표율이 18.4%(4,320표, 남천면, 서부1·남부동)였지만, 남천면에서는 5.2%(87표)를 얻는 데 그쳤다. 7회 지방선거땐 같은 선거구에서 17.1%(4,464표)를 기록했는데, 남천면에서는 19.2%(317표)를 득표해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이번 도의원 선거에서 엄 전 의원은 남천면에서 43.9%(650표)의 표를 받았다.

엄 전 의원은 남천면 득표율 상승을 두고 국민의힘이 익숙한 주민이라도 진보정당 정치인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면서 마음을 열게 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엄 전 의원은 “남천면을 특별히 더 챙기지는 않았다. 지역민의 어려운 사정을 최대한 듣고 해결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효용성을 느꼈을 것”이라며 “당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주민도 상당히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에서 진보정당은 명맥이 끊어졌다. 엄 전 의원이 경북도의원에 낙선했고, 대구에선 김성년 수성구의원이 4선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엄 전 의원은 그 원인으로 지역 정당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 정의당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다양성의 가치가 폄하되는 시국의 흐름도 짚었다.

엄 전 의원은 “진보정당 지방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사회적 의제를 행정의 영역에서 다루는 일이다. 지금 진보정당과 시민사회가 서로 상승하고 발전하는 국면이 아니라 전반적인 침체 국면”이라며 “제도적으로도 기초의회 정당공천제가 맞는지도 고민하게 된다.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을 따지면, 민심과 괴리되는 결과를 낳고 있어 고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의당은 남 탓을 하면 안 된다. 10%의 국민 지지를 받다가 3%로 떨어진 건 정의당의 문제”라며 “정의당은 중앙정치, 국회 비례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한계가 있다. 이제는 지역에 기반한 정당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북도의원 후보 시절 선거 운동 중인 엄 전 의원

그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시범적으로 시행된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지역에서도 정의당이 초라한 성적을 낸 점에 대해서도 당의 성찰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중대선거구제 시범 선거구 전국 109석 중 정의당은 단 2석을 얻었다.

이에 엄 전 의원은 “지역에서 활동하지 않은 정치인이 당선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먼저 지역 주민과 소통하고 활동한 사람이 의회에서도 제대로 활동할 수 있다”며 “그렇지 않은데 제도 덕분에 당선되면 당선돼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만 중대선거구제 자체에 대해서 엄 전 의원은 선거구가 과하게 확대되면 지역에 기반한 생활 정치는 오히려 어려워지는 점은 문제라고 지목했다. 엄 전 의원은 “지역에 기반한 생활 정치는 주민 2만 명 정도가 적당한데, 선거구를 합쳐놓으면 어려워진다. 다시 정당 보고 찍게 된다”며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이 옳다”고 말했다.

끝으로 엄 전 의원은 “지역 주민들이 많은 사랑을 주셔서 감동스럽기도 하고, 죄송하다”며 “낙선했지만 이 또한 새로운 길로, 앞으로 우리 사회와 저의 역할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래에 엄 전 의원과의 인터뷰 내용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Q: 선거 이후에 더 바쁜 거 같다. 지지자 반응은 어떤가?

A: 제가 미안하다고 연락하고 있다. 지지하는 분들은 당선을 바라고 지지했는데, 속상하다고 그런다. 과거 활동을 보신 분들이니 더 속상해하시고, 그래서 나도 미안하다.

주민 입장에서는 주민 말을 열심히 듣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인 사람이고, 기초의원으로 세 번을 내리 한 사람이니 도의원으로도 당선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해서 아쉬움이 큰 거 같다. 그리고 상대 후보가 국민의힘이지만, 이 지역에서는 낯선 분이다 보니 의아하다고도 하신다. 저는 12년을 시의원으로서 쉼 없이 달려왔는데, 나도 관성과 습관이 붙었을 테니 이제 나를 되돌아봐야 한다.

Q: 상대 후보는 정당 활동을 하긴 했지만, 이 지역 출마는 처음이다. 투표 결과를 보면 유효표 2만 2,923표 중 차주식 당선인이 1만 5,150표를 받았고 엄 후보는 7,773표(33.9%)다. 좀더 자세히 보면 특이한 점이 있는데, 남천면의 경우 엄 후보 투표율이 43.9%가 나왔다.

A: 남천면을 특별히 다른 곳보다 더 챙기지는 않았다. 내 의정활동 방식이 기본적으로 민원을 받으면 다 해결한다는 것이었고, 남천면에서도 지역민들이 생활하면서 어려운 점, 예를들어 비오면 침수되는 지역 문제 같은 사항을 민원으로 많이 요청해 주셔서 노력한 정도다. 지역에서 실제로 해결되는 과제를 보면서 효용성을 느꼈을 것이고, 또 기본적으로 지역민들이 국민의힘을 지지하긴 하지만 당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분들도 있다는 의미다.

Q: 대구경북 자체에 진보정당 지방의원이 없는데, 진보정당 1석은 단지 다른 정당 1석의 무게를 넘어 선다. 엄 의원의 원외 활동을 보면, 이를테면 부당해고와 같은 지역 노동 이슈나 故 정유엽 사건과 같은, 거대정당이 관심 두지 않는 다양한 의제에 함께 하면서 이 문제를 행정의 영역에서 해결하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앞으로 지역 행정에서나, 사회적으로도 다양성의 가치가 주목받기 어려울 거 같다.

▲2021년 9월 세종시 국무총리실 앞 정유엽사망대책위기자회견에 참석한 엄정애 전 의원. (뉴스민 자료사진)

A: 원내에서 지방의원이 지역 현안을 의제화하는 일은 지역 시민사회만으로는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 지점을 그동안 고민하고, 행정과 연계하거나 동료 의원과도 함께 살펴보려 했다. 지금은 지역이 전반적으로 진보 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가 서로 상승하고 발전하는 국면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침체되는 상황이다. 전반적인 국면이기 때문에, 단위마다 혁신이 필요하고, 또 지금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제도적으로는 적어도 기초의회에서 정당공천이 맞는지 고민하게 된다. 직접민주주의 가치를 고려하면 적어도 지금의 대구경북 상황에서 정당공천은 그로 인해 기초의원이 민심과 괴리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지방의회에서도 당론이 끊임없이 발생하는데, 그 당론이 민심을 반영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그렇게 되면 지역 갈등을 만들 수밖에 없다.

Q: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유력해서 지역보다 당 활동에 치중한다는 말인 거 같다. 경산시의회를 보면 비(非)국민의힘은 정의당 1명, 더불어민주당 5명이었는데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 2명으로 줄었다. 탄핵 이후 지방선거부터 민주당이 이 지역에도 출마자를 많이 내기 시작했는데, 먼저 오랫동안 터를 닦아온 진보정당 출마자 입장에서는 출마 선거구가 겹치면 아쉬울 수도 있겠다.

A: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민주당 정치를 하는 거고, 정의당은 남 탓하면 안 된다. 상황에 따라 다른 정당을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정의당이 10%의 국민 지지를 받다가 3%로 떨어진 건 정의당 내부 문제다. 정의당이 못 하는 것은 정의당 내부가 단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떠나는 거다.

Q: 이번에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가 시범 시행된 지역 109석 중 정의당은 단 2석을 얻었다. 대구의 경우 수성구마(수성·중·상·두산동)에 국민의힘 4명 민주당 1명, 수성구바(파·지산·범물동)에 국민의힘 3명, 민주당 1명이 당선됐다. 정의당은 후보도 내지 못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A: 지역에 기반하지 않는 정치는 예의가 없는 정치다. 지역에서 활동하지 않은 정치인이 당선되는 거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진보정당이라도) 앞서서 먼저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지역에서 활동한 사람이라야 당선되는데, 선거구 제도만 가지고 유리해져서 당선되면 당선되고도 문제다. 의정활동 제대로 하기 어렵다.

그리고 진보정당으로서는 선거구 지역이 넓어지는 게 유리하지도 않다. 넓어질수록 생활 정치에 불리하다. 지역 기반 생활 정치는 주민 수 2만 명 정도가 적정하다고 보는데, 여러 선거구를 합쳐 놓으면 생활 정치가 어려워진다. 다시 정당 보고 찍는 수밖에 없는 거다. 결국 공천 중심의 정치가 되면 다시 출마자가 주민 의견보다 공천만 바라보고 정당에 충성하는 구조가 되는 거다. 정치의 개혁 방안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

Q: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다양성에 대한 존중보다는 팬덤 현상, 대결적인 분위기가 강화되고 있는 거 같다. 한국의 양당정치 강화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도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예를 들어 노동자 파업과 같은 문제에서는 강경한 권위주의의 모습을 띨 거란 우려도 있다. 정의당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A: 코로나19 시기를 겪기도 했고, 지금은 혼란의 시기다. 방역 체계가 작동하면서 사회는 좀더 중앙 집중화됐고, 지역사회를 돌아볼 여유가 없게 됐다. 사람들이 심리적으로도 불안하고 위축돼 있다. 이제 방역 체계가 완화되는 상황이지만, 이런 불안하고 불확실한 시기에 사람들은 좀더 정부에 기대게 될 거고 다시 중앙집중화를 강화할 거다. 그러면서 중앙 정치도 강화되고, 지역 정치는 약화할 거다.

정의당은 어려운 상황이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도 마찬가지지만, 대안 사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보수정당 논리를 답습해서 친기업 정책을 펼쳐도, 결국 노동자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 방향은 맞지 않다. 제3의 길을 고민해야 한다. 시민이 자기가 선택한 삶의 존중받으면서, 지역사회와 연결돼 봉사도 하고 애정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풀뿌리 민주주의도 강화되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

최근 정의당은 중앙정치 중심으로, 국회의원 비례대표 중심으로 활동했다. 물론 훌륭한 정치인도 있지만 한계가 있다. 정의당이 한때 (전 민주평화당과) 원내교섭단체 구성도 논의했었지만, 정의당이 진보정당의 기풍을 만들지 못했고 자승자박했다. 이제는 지역에 기반한 정당이 돼야 한다.

Q: 예를 들어 지역 활동에 상당한 노력을 들인 진보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단체장을 배출하는 성과를 냈다. 울산 지역에서 김종훈 후보가 동구청장으로 당선됐고, 광역·기초의원 선거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냈다.

A: 우리 경산 지역에도 박정애 진보당 경산시의원 후보가 아깝게 낙선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정말 많이 공을 들였더라. 박 후보는 오랫동안 지역에서 주민들과 접촉면을 넓히고 꾸준히 이슈를 만들어냈다.

Q: 지역 정당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는데, 정치인 엄정애가 이번 낙선으로 끝은 아닐 거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A: 일단 나를 좀더 돌아봐야 한다. 내가 말한 제3의 길의 내용도 좀더 깊이 고민할 것이다. 정의당에서 어떤 목소리를 낼지도 고민해야 한다.

그동안 지역 주민들이 많은 사랑을 주셔서 감동스럽기도 하고, 미안하다. 낙선했지만 이 또한 새로운 길이다. 우리 사회가 시민들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좀더 고민할 것이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