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가장 밋밋한 영웅, ‘모비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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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솔로 영화에 대한 감동이 예전만 못하다. 아마도 <어벤져스> 때문일 것이다. 각자 활약하던 영웅들이 한데 모인 걸 본 뒤로, 영웅 혼자 고군분투하는 걸 지켜보는 게 싱거워졌다. MCU의 아홉 번째 영화 <캡틴 아메리카:윈터솔저>에서는 조연급 영웅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2015년 MCU 페이즈 2의 하이라이트인 <어벤져스2: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크게 흥행한 이후 <캡틴 아메리카3:시빌 워>는 영웅들이 전부 모여 <어벤져스 시리즈> 못지않은 규모를 선보였다.

수많은 영웅들이 영화 한편에 모두 나온 것은 <엑스맨 시리즈>나 <판타스틱 포 시리즈>도 있지만, 서로 다른 영화의 주역들을 한자리에 모았다는 점에서 MCU는 21세기 블록버스터계의 전과 후를 나눴다. 영화계에서는 할리우드 영화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한껏 높아진 관객의 눈에 맞춘 솔로 영화를 내지 못한다는 것은 단점이다. <어벤져스:엔드 게임> 이후 MCU가 겪고 있는 부침에는 대중의 기대에 못 미친 규모가 큰 몫을 차지한다.

이런 상황에 뒤늦게 영웅물을 내세운 소니 픽처스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스파이더맨 세계관에서 가져온 악당 스핀오프 <베놈 시리즈>에는 혹평이 쏟아졌다. 마블과 협업한 <스파이더맨 시리즈>만 성공을 거뒀다. <모비우스> 역시 호평을 얻지는 못했다. 영웅과 악당 둘이 벌이는 단조로운 격투와 진부한 서사, 엉성한 개연성 탓이다.

천재 생화학자 모비우스(자레드 레토 분)는 희귀 혈액병을 앓고 있다. 어릴 때부터 목발 없이는 제대로 걷지 못하고 하루 세 번 수혈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다. 친구 마일로(맷 스미스)도 마찬가지다. 동병상련 처지인 둘은 죽마고우가 되나 했더니, 뛰어난 지능을 인정받은 모비우스가 학업을 위해 학교로 떠나면서 헤어진다.

20년이 지난 뒤 모비우스는 인류를 위한 공을 쌓은 과학자로 명성을 떨친다. 그는 자신의 병을 치료할 약 개발에 몰두한다. 흡혈박쥐의 DNA를 인체에 결합하는 연구를 거듭한 끝에 혈청을 개발하고 자신의 몸에 임상실험을 한다. 그 결과 모비우스는 초인적인 능력을 갖게 된다. 총알을 피할 정도로 민첩해지고 박쥐처럼 음파를 탐지하는데다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피에 대한 강한 갈증이라는 부작용도 얻게 된다. 통제력을 잃을 때면 사람을 덮쳐 살인을 저지른다.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모비우스와 다르게 마일로는 흡혈박쥐의 능력과 본능을 갖게 되는 것을 축복으로 여긴다. 모비우스가 극구 말리는데도 마일로는 몰래 치료제를 자신에게 투여한다. 동물적 본능에 눈을 뜬 마일로는 사람을 해치며 흡혈을 하고, 모비우스는 이를 막고자 친구와 결전에 나선다.

<모비우스>는 MCU와 DC 필름스, 소니 픽처스의 영웅물을 통틀어 가장 밋밋하다. 초인적 능력을 얻게 되는 계기는 익숙하고 친구가 적수가 되는 것 역시 흔해빠진 설정이다. 목숨을 위협받는 연인이 흡혈의 능력을 갖게 되는 점도 클리셰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닳고 닳은 이야기에서 전개마저 치밀하지 않다는 점이다. 선과 악이 분명하지 않은 정체성은 <베놈 시리즈>와 비슷하고 흡혈귀의 움직임은 예전에 봐온 뱀파이어와 별다른 점이 없다.

배우 자레드 레토는 언론 인터뷰에서 “선과 악 사이 회색지대에 있는 지점이 흥미로웠다. 관객들도 이제는 전형적인 마블 히어로 말고, 빌런도 아니고 히어로도 아닌, 중간지대에 있는 히어로를 만날 준비가 돼있다. 저에겐 완벽한 캐릭터였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안티히어로의 복잡한 면이 흥미롭다. 누구도 100% 착한 면만 있는 건 아니다. 악한 면을 갖고 있다. 그런 세심한 면까지 드러내는 게 연기자로서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영화에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