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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경상북도는 올해부터 모든 지자체에서 농사짓는 농민들에게 농민수당으로 연간 60만 원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2019년 처음 지급하기 시작한 농민수당은 같은 해 경북 봉화에서도 지급됐다. 점차 번져가 제주도를 포함해 넓은 농촌 지역을 끼고 있는 9개 광역(특별)자치도에서 도입했고, 올해부터 본격 시행된다. 이제 갓 기점을 떠난 기차처럼, 농민수당은 이제 막 시작된 정책인 만큼 농민들에게 실제적 도움이 될지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경북 농민수당 1번지, 봉화군민이 전하는 농민수당
올해부터 전국 확대···갈 길은 멀어
③ 농민수당이 기본소득으로 운영된다면?

올해부터 농민수당이 전국적으로 확대됐지만 여전히 숙제는 많다. 농민수당 도입을 주장해온 농민단체들은 정책 도입 취지에 맞게 운영하려면 농민수당을 기본소득형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는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농민기본소득법 제정을 통해 농민수당의 기본소득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차흥도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 운영위원장은 “농민수당은 전국으로 확대됐지만, 지금의 상태로 가면 결국 법안 수리 과정에서 공익직불제랑 통합될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농민기본소득을 추진하고 공익직불제는 종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농민수당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농민회도 기본소득화 취지에 동의하고 있다. 금시면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사무처장은 “역사를 봤을 때 농업이 갖는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식량위기 시대를 맞은 현 상황에선 우리 안의 자립적 생산구조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이건 농민들만 주장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며 “공론화시켜서 전 국민을 상대로 합의를 끌어내야 하는 지점이다. 농민수당을 기본소득으로 확대시키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의 농민수당은 정의와 개념, 다른 정책과 관계를 둘러싼 논의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지자체가 시행하는 농민수당이 기본소득에 해당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전문가들 의견이 갈린다. 특히 효과에 있어서는 아직 정책 시행 초기인 만큼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청년기본소득 같은 ‘범주형 기본소득’은 금액이 적어 기본소득 효과를 충분히 보여주진 못해도 개별성과 무조건성이 갖는 효능감은 검증됐다고  분석된다.

농민수당, 기본소득 주요 원칙 중 정기성만 충족
현행 농민수당과 공익직불제 유사한 점 많아

▲농민수당은 농민이 사회에 기여하는 공익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보상 성격을 갖고, 목적에 부합해 운영하기 위해선 기본소득화 해야 한다는 주장이 각계에서 제기된다. (사진=fliker)

농민수당은 기본소득의 주요 원칙인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정기성, 현금성 중 정기성만 충족한다. 2015년부터 농민수당 연구를 지속해 온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농가가 아닌 개별 농민에게, 한정된 농민이 아닌 모든 농민에게, 지급 조건을 두는 것이 아니라 지급 조건을 없앤다면 농민기본소득”이라고 설명한다.

기본소득은 2015~2016년 성남시와 서울시가 각각 청년배당과 청년수당을 정책화하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이후 19대 대선에서 일부 후보자가 기본소득을 의제화하면서 논의에 힘이 붙었고, 최근 코로나19 확산 사태 속 경기도가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확대됐다.

농민수당은 2018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언론에 소개됐다. 기본소득 논의가 확산된 이후다. 경기도에서 청년기본소득 실험이 시작된 것처럼 농민수당도 경기도에서 좀 더 진보적인 가치를 담고 시행 중이다. 대부분 지자체가 ‘농민수당’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경기도는 ‘농민기본소득’을 명칭으로 한다. 연천군에서는 ‘농촌기본소득 사회 실험’도 진행 중이다.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특정 농촌 지역 주민 전부에게 일정액을 지급해 기본소득 효과를 분석하는 게 목적이다.

농민수당은 기본소득의 주요 원칙을 수용한 형태의 ‘농촌기본소득’으로 운영되는 지자체가 없는 실정이어서 공익직불제와 유사성이 지적된다. 두 제도 모두 농업·농촌의 공익 기능 증진이라는 목표를 이루려는 목적으로 소득을 직접 지원한다. ‘농업농촌공익직불법’이 1조에서 ‘농업·농촌의 공익기능 증진과 농업인 등의 소득안정’을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듯 공익직불제는 재정적 유인을 통해 공익 기능 증진에 필요한 기능을 계속하게끔 유도하는 데 목적이 있다.

농민수당도 이와 비슷하다. 여러 지자체의 농민수당 조례는 ‘공익적 기능 증진’, ‘삶의 질 향상’, ‘지역 경제 활성화’, ‘소득안정 도모’ 등을 이루고자 수당을 지급한다고 밝히고 있다. 박경철 연구원은 “공익직불제와 농민수당은 비슷한 맥락에서 소득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향후 이들 제도는 결합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청년기본소득, 범주형 기본소득으로 농민수당과 유사
개별성·무조건성이 갖는 삶의 만족성 강화 효과
기본소득 효과 위해선 지원범위·금액 확대해야
기본소득, 경제적 효과는 의견 분분

농민수당의 기본소득화는 공익직불제와 유사성과 함께 제도의 효과성 측면에서도 검토 필요성이 제기된다. 기본소득이 국내에서 어떤 효과를 보이는지에 대한 연구는 불충분하고, 농민수당 역시 역사가 길지 않은 만큼 그 효과를 충분히 분석한 연구는 많지 않다. 대신 농민기본소득처럼 범주형 기본소득에 해당하는 청년기본소득에 대한 분석을 통하면 농민기본소득의 효과도 추정해볼 순 있다.

2021년 한국사회보장학회가 발행한 ‘낮은 수준의 범주형 기본소득의 의미:경기도 청년기본소득 수급 청년의 경험’ 연구보고서는 농민수당을 범주형 기본소득의 하나로 언급한다. 보고서는 “성남시의 청년배당,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 농민기본소득(농민수당) 등은 급여 수준이 낮고 연령이나 직업 등의 범주로 제한된 낮은 수준의 범주형 기본소득이기 때문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고 짚는다.

보고서는 기본소득의 ‘기본’이란 기본적인 경제 보장의 의미를 내포하고 충분한 수준의 소득이 보장되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충분한 금액이 지급되지 않으면 노동시장에서의 협상력 강화나 임금 근로조건 보호, 노동시장이나 가정에서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율성과 선택 강화의 효과 등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뜻이다.

다만 결론에선 다른 효과를 설명한다.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을 받은 연구참여자들은 기본소득의 개별성과 무조건성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같은 시기에 순차적으로 경험한 긴급재난지원금과 청년기본소득을 비교해보면, 같은 범주형 기본소득이라도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이 기본소득의 특징을 경험하게 하고 일부에겐 보편적 기본소득으로의 확장을 지지하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보고서는 “급여 수급을 위해 가구 단위의 자산조사와 다양한 서류작업 및 ‘글짓기의 괴로움’에 늘상 노출되어 있는 청년 세대의 피로함은 기본소득의 무조건성을 매우 긍정적으로 경험하게 했다”고 전했다.

2020년 12월 경기연구원이 발간한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정책효과 분석(II):사전 및 사후 조사 비교’ 보고서도 비슷한 효과를 전한다. 보고서는 1년간 청년기본소득을 받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질적·양적 평가를 했더니 ▲삶의 만족도 상승 ▲본인의 일에 대한 가치 높게 평가 ▲법과 제도에 대한 신뢰 증가 등의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또한 “주당 노동시간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다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기본소득이 근로의욕을 줄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경기도 청년들이 타지역의 청년들에 비해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즐거워지고, 성공한 미래를 더 자주 상상하며, 스트레스를 받아도 더 잘 회복하는 것으로 변화됐다”고 전했다.

이러한 청년기본소득의 효과는 농민수당에서도 기대해볼 수 있다. 2020년 3월 경기연구원이 발간한 ‘경기도 농민기본소득에 관한 연구’ 보고서는 실제 해외 농촌 대상 기본소득 실험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됐다고 설명한다. 또한 농촌환경보호, 생태농업 추진 등의 대가로 주는 ‘소득지원 형태의 참여소득’의 효과를 언급하며 농민수당에서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들은 일관되게 ‘제대로 된 효과를 위해서 지원 범위와 금액을 확대해야 된다’고 주문하고 있고, 현장에서도 같은 요구가 나온다. 올해로 농민수당 지급 4년 차를 맞은 해남군의 이정확 군의원(진보당)은 “해남군 농민들 만족도는 매우 높다. 초기엔 지역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심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선순환 역할을 한다는 걸 이해하고 좋은 정책이라 칭찬한다”며 “지급 금액이나 대상에 대해선 여전히 아쉽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또한 이 의원은 “농민수당 지급의 가치에 대해선 마을 단위에서 좀 더 교육이 필요하다. 공짜로 주는 돈, 농사가 어려워서 지급하는 돈이 아니라 그들이 기여하고 있는 것의 일부를 되돌려준다는 의미를 농민이 알아야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기본소득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앞서 살펴본 연구도 대체로 삶의 만족도나 사회 제도에 대한 신뢰성 같은 비경제적 요소에서 효과를 강조했다. 2021년 김선빈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와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한종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이 한국금융연구원을 통해 공개한 논문 ‘기본소득 도입의 경제적 효과 분석’은 기본소득이 상당한 재원을 요구하기 때문에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봤다.

논문은 만 25세 이상 국민에게 연 360만 원의 기본소득을 제공하려면 연간 145조 원이 필요하다고 산출하면서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소득세를 더 걷으면 1인당 근로소득세율이 24.4%로 2019년(6.8%)보다 17.6%포인트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본소득이 저축 및 노동을 감소시키고, 소득세율이 대폭 인상됨으로써 근로자의 노동 공급을 감소시킨다고 덧붙였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