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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경상북도는 올해부터 모든 지자체에서 농사짓는 농민들에게 농민수당으로 연간 60만 원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2019년 처음 지급하기 시작한 농민수당은 같은 해 경북 봉화에서도 지급됐다. 점차 번져가 제주도를 포함해 넓은 농촌 지역을 끼고 있는 9개 광역(특별)자치도에서 도입했고, 올해부터 본격 시행된다. 이제 갓 기점을 떠난 기차처럼, 농민수당은 이제 막 시작된 정책인 만큼 농민들에게 실제적 도움이 될지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① 경북 농민수당 1번지, 봉화군민이 전하는 농민수당
② 올해부터 전국 확대···갈 길은 멀어
농민수당이 일부 지역에서 먼저 시행될 수 있었던 데는 지자체장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2019년 6월 전국에서 가장 먼저 농민수당을 지급한 전라남도 해남군은 군수가 취임 한 달 만에 농가수당 지원계획을 마련해 행정·농민·시민 등 각계 분야 인사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논의를 시작했다.
소규모 농가만 지원할지 전체 농가를 지원할지, 지역 화폐로 지급할지 현금으로 지급할지, 다른 복지 수당과 중복성을 지적하는 보건복지부와 협의는 어떻게 끌어낼지 등 쟁점이 여럿이었지만 우선 시작하자는 의미가 컸다. 농촌과 농민의 위기가 한계에 봉착했으니 몇 년 내로 중앙정부가 나설 거란 판단도 있었다.
농민수당은 영농규모나 수확량 등에 상관없이 농가에 일정액을 주는 제도다. 지자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해당 시군에 연속 3년 주소를 두고 거주하면서 해당 또는 연접 시·군 농지에서 1년 이상 농업 생산에 종사한 농민에게 지급된다. 경작 규모에 따라 지급하는 농업직불금 제도와 차이가 있다.
농민수당은 최소한의 조건에 해당하는 농민 모두에게 지급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과 결을 같이 한다. 농민들이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는데, 이러한 가치는 시장가치로 환산되지 않기 때문에 국가와 사회에서 보상해야 한다는 의미도 통한다.
전국으로 확대된 건 최근이지만 논의는 오래됐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전국농민회총연맹·가톨릭농민회를 비롯한 4개 농민단체가 각 정당에 공약으로 가구당 20만 원의 농민수당 신설을 요구한 바 있으며, 정의당의 오랜 당론이기도 했다.
초창기에는 ‘농업인 경영안정지원금’ 같은 명칭을 통해 경영 안정이나 소득 지원 형태로 추진됐으나 점차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 증진이라는 차원으로 발전했다. 2019년 해남에 이어 전남 함평군, 경북 봉화군이 농민수당을 지급했으며 전남 화순·강진군과 광양시, 경기 여주시, 충남 부여군 등 일부 시·군이 협의를 완료해 2020년 지급을 시작했다.
일단 시작은 했는데 해결과제 산더미
‘농민수당’으로 전국에 자리 잡은 정책
농가당 지급, 금액 불만족의 문제
올해부터 제주도를 포함해 전국 9개 광역(특별)자치도가 농민수당 정책을 시작했지만, 먼저 시행한 기초지자체의 시행 성과를 바탕으로 개선해야 할 숙제는 많다. 지급되는 수당의 규모를 현실화하는 것부터, 농가당 1인에게 지급하도록 해서 가장이자 농업경영체의 경영주인 남성 중심으로 지급되는 점, 실제 농업 종사 여부와 상관없이 지급될 수 있다는 맹점 등이 그것이다.
광역자치도가 지급하는 농민수당 금액은 지역별로 다양하다. 경남과 경기, 제주는 농민 1인당 연간 30만 원에서 60만 원까지 지급하고 다른 6곳은 농가당 연간 50만 원에서 80만 원까지 지급한다. 그중에서도 경기도(이상 농민당), 경상북도, 전라남도, 전라북도(이상 농가당) 등 60만 원을 지급하는 곳이 가장 많다. 1개도 당 평균 56.7만 원꼴, 월 4.7만 원꼴이다. 충분하고 넉넉하다는 평가를 받기엔 부족한 금액이다. 실제로 지난 1월과 4월 <뉴스민>이 만난 경북 농민들 중 여럿도 60만 원은 충분한 수당이 아니라고 말했다.
지난해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석사과정 박준홍 씨가 발표한 ‘농민수당에 대한 농업인의 인식 실태 분석과 개선 방향 : 전남 나주시, 장흥군, 영광군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농업인 120명이 희망하는 농민수당의 평균 액수는 약 183만 원이다. 현재 지급 금액의 약 3배다. 논문은 “농민수당의 현재 지급 금액이 실제 농민수당을 수령하는 농업인들이 생각하는 농민수당의 주요 목적 달성을 위한 금액과 많은 격차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급 대상을 농가당 1인에 한정하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농가’는 수당을 지급하는 과정에선 농민임을 입증할 수 있는 법인격체, 즉 농업경영체로 해석된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여전한 농촌 지역에서 남녀 부부 농민이 함께 농업활동을 하더라도 직업으로서 농민으로 인정되는 사람은 농업경영체에 등록된 남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는 2016년부터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여성 농민도 농업경영체의 공동경영주로 인정하도록 했다.
농촌 현장에서는 여전히 여성들이 농업경영체 공동경영주로 등록하는 비율이 낮은 실정이라 농민수당을 포함한 농업경영체를 통해 지급되는 각종 지원금은 대체로 남편이 수령하는 구조가 된다. 역시 농민수당 제도가 갖는 취지에 부합하진 않는 형태인 셈이다. 전국 농민의 절반에 해당하는 여성은 사회문화적 구조 안에서 농민수당 수령 대상이 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농업경영체를 기준으로 하다보니, 실제 농사를 짓는 것과 상관없이 경영주로 등록된 이에게 수당이 지급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의성군 봉양면에서 농사를 짓는 황정미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경북연합 정책위원장은 “우리 동네는 여성 농민이 훨씬 많다. 나도 20년 넘게 농사지은 어엿한 농민인데, (농민수당이 지급되지 않으니) 농민으로서 자격이 부여되지 않는 것 같다. 몇 해 전에 공동경영주라는 말이 생겨서 등록도 했지만 실질적인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차흥도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 운영위원장은 “처음 전북에서 조례가 만들어질 때 농민단체에서 요구한 ‘농민당 10만 원’이 아닌 ‘농가당 5만 원’으로 통과됐다”며 “그게 기준이 돼서 뒤를 이은 지자체들이 농가당 기준으로 지급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농민수당 도입 취지는 ‘기본소득’ 이지만
현실은 여기에 부합하지 못하는 한계로
이러한 한계는 농민수당의 도입 취지를 충분히 실현하지 못한다는 근본적 문제로 귀결된다. 2015년부터 농민수당을 연구한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현재 지급되는 농민수당은 취지와 내용이 ‘기본소득’에 가깝지만 실제는 그렇게 운영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박 책임연구원은 “수당은 ‘본업 외 추가적인 활동으로 인한 소득’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현재 농민수당은 다수 기초자치단체 조례에서 나오듯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보상의 의미가 강조된다”며 “취지와 내용이 ‘기본소득’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농민단체가 요구하는 것도 기본소득에 가까운 제도다. 기본소득의 주요 원칙은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정기성, 현금성 등으로 설명되는데, 현행 농민수당은 정기성 정도만 충족될 뿐 다른 조건은 충족하지 못한다.
차흥도 운영위원장은 “기본소득은 복지고 수당은 권리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별 고민없이 정착된 게 문제”라며 “농민수당이라는 호칭으로 가면 결국 법안 개정 과정에서 공익직불제와 통합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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