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아사히비정규직지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하이디스지회, 동양시멘트지부, 콜트콜텍지회, 사회보장정보원분회, 세종호텔노동조합 등 7개 장기투쟁사업장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 민주노조 사수! 노동탄압 민생파탄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공동투쟁’을 결성하고, 구미에서 시작해 경주, 울산, 부산, 거제, 창원, 청주, 충남, 서울까지 지난 3월 23일부터 26일까지 3박 4일간 전국 순회 투쟁을 벌였다. 경북 성주에 사는 필자는 공동투쟁에 함께 참여했다.
2016년 3월 23일 수요일 오전 일찍 구미의 4차 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아사히비정규지회 천막농성장에 도착했다.
식당천막 안 두 남자의 손이 분주하다. 커다란 빨간다라이에 배추우거지와 고사리 같은 나물이 듬뿍 담겨있고, 남자의 손은 고춧가루도 뿌리고 마늘도 한 국자 투척하고 있다. 소금과 간장을 부으면서 간을 본 건지 안 본 건지 알 수 없으나 두 손으로 조물조물 치대기 시작한다. 김치인가 했더니 닭개장을 끓이는 중이라고 했다. 닭 세 마리 푹푹 삶아서 살코기를 다 찢어 넣고 닭육수에 양념을 버무린 나물을 철퍼덕 투척해서 팔팔 끓이는 중이었다.
아사히비정규직 투쟁의 꽃, 밥하는 노동자. 두 남자는 3박 4일 동안 전국에 흩어진 장기투쟁사업장을 찾아 나설 공동투쟁 동지들이 출발하기 전 배꼴 든든한 식사준비 중이었다. 밥하는 일은 잘 보이지 않는 고된 노동이다. 이를 잘 아는 가사노동 19년 차인 나는 그 노동으로 ‘힘들어하지 않을까?’, ‘스트레스받지 않을까?’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아는 척했더니 그들은 “이것이 나의 투쟁방식입니다”라고 했다.
자신의 방식대로 투쟁하고 있다는 그 남자의 말은 멋있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하나의 역할로 규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때로는 밥하는 노동자로, 청소하는 노동자로, 마이크 잡고 선동하는 노동자로, 때로는 책 읽는 노동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각각의 역할을 누군가 규정하지 않고, 인간이 자유롭고 의식적인 노동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실현하는 사회적 존재임을 이해할 수 있는 투쟁이 되기를 바래본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서울, 창원, 경기도 이천에서. 군산, 삼척에서도. 그 먼 거리를 달려 출발 집결지인 구미 아사히비정규직 천막농성장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식당천막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고, 점심시간 때맞춰 나온 닭개장 국밥 한 그릇씩 먹고 나온 동지들은 입을 맞춘 듯 간이 딱 맞고 맛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간을 딱 맞춰 맛나게 그 많은 닭개장을 끓인 그 남자의 전직은 뭘까?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모였다. 전국 곳곳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모였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자신의 현장만 지키지 않고, 또 다른 사업장을 찾아 나선 까닭이 궁금해졌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자 했던 것일까?
이제부터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만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 민주노조 사수! 노동탄압 민생파탄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공동투쟁’은 아사히비정규직 동지들이 먼저 나섰고,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하이디스지회, 동양시멘트지부, 콜트콜텍지회, 사회보장정보원분회, 세종호텔노동조합 등 7개 장기투쟁사업장이 의기투합해 투쟁사업장 전국순회를 제안했다고 한다. 거기에 구미KEC지회, 한국GM비정규창원지회, 한국GM비정규군산지회, T-브로드와 SK브로드밴드, 현대제철비정규지회 등 12개 사업장 노조와 취지에 동의하는 개인이 함께했다.
아사히비정규직 농성장에서 닭개장 한 그릇 잡숴 배가 든든해진 동지들은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는 구미에서 출발해 영동으로 향했다.
지난 3월 17일 새벽 유성기업의 한 노동자 자살소식을 접했다. 그 노동자는 2011년 유성기업의 신종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맞서 싸워왔던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 조합원이자 노조간부였던 한광호 동지였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노조파괴에 맞서 현장에서도 끊임없는 사측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은 현장파업에 돌입했다.
노조 간부와 해고자들은 신종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만든 현대-기아차가 故 한광호 열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임을 사회적으로 알리기 위해 서울시청 앞 분향소를 설치하려 했다. 그러나 자본은 용납하지 않았다. 국가공권력을 총동원해 분향소를 설치하는 노동자들에 폭력으로 막아섰고, 깔개와 비닐 한 조각도 용납하지 않고 다 빼앗아 가버렸다.
고 한광호 열사의 영정을 땅바닥에 패대기쳐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고 한광호 열사 분향소 설치를 위해 투쟁하는 수많은 사람이 공권력의 폭력에 깨지고 다치고 연행되었고, 맨몸으로 밤새 추위를 견뎌야 했다. 영동공장 조합원 동지들은 너무나 무거웠다. 어두운 긴 터널 속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은 침울했다. 착잡한 심정으로 ‘공동투쟁’ 버스는 영동을 벗어나 울산을 향했다.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할수록 박근혜 정권은 자본의 이해와 집권여당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동자들을 쥐어짠다. 노동자들을 쥐어짜는데 민주노조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장애물은 치워야 할 대상이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가볍게 치울 거라고, 믿었는데 5년이 지나도 7년이 지나도 저항하고 분노하는 세력들에 그들은 철저하게 자본가 계급 이해를 대변하는 정권으로서 계급이해에 복무한다.
선거가 시작되자 온갖 기만과 사기가 판치는 야바위꾼들의 놀이터가 됐다. 선거판은 전국의 민중투쟁 전선을 교란하며, 철저하게 부르주아정치에 복무했다. 그리고 죽어가는 노동자들을 외면한다.
나의 마음은 서울시청을 향하지만, ‘공동투쟁’ 버스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장기투쟁사업장이 있는 곳으로 떠난다. 더 많은 장기투쟁사업장을 찾아서 각개각전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면 함께 투쟁해서 승리하는 판을 만들어 힘을 모으는 버스가 되어 서울시청으로 향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