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를 대신한 시인의 레퀴엠···노태맹의 ‘이팝나무 가지마다 흰 새들이’

<굿바이,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이후 3년 만에 시집 출간
'죽음의 기술'로 불렀던 전작에 이어 '진혼', '다시 쉼으로 돌아감'을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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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연주하며 고단한 영혼을 쉼으로 안내하는 천사의 역할이 시인의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시인은 그 천사에 대해 회의한다. 천사는 아파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천사 대신 시인이 직접 나서서 이번 레퀴엠을 연주하기로 했나 보다.”

전작 에세이집 <굿바이,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이후 2년여 만에 새 시집으로 독자들을 만나는 노태맹 시인의 신작 시집 <이팝나무 가지마다 흰 새들이>을 둔 이동훈 시인의 평이다. 지난해 12월 도서출판 한티재를 통해 출간한 새 시집은 시 26편과 산문 1편을 담았다. 지난 에세이집을 ‘죽음의 기술’로 소개했던 노 시인은 이번 시집을 “레퀴엠, 즉 진혼 혹은 ‘다시 쉼으로 돌아감(requies)’을 위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지난달 열린 9회 사이펀 문학토크&시집 낭독회, 대구의 시인을 만나다에 초청된 노태맹 시인이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정용태 기자)

노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친절하게도’ 시집을 즐길 수 있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시집 한 켠에 ‘시집 사용 설명서’를 따로 두고 “시집을 소리 내어 읽기, 나누어 읽기, 불멍, 물멍, 구름멍 하는 마음으로 보기를 권장한다”고 전했다.

그의 오랜 벗인 김수상 시인은 이를 두고 “이 시집은 물(슬픔)과 불(분노와 탄식), 공기(상승과 구원)로 꽉 차 있다. 대지(수평적 삶과 죽음)는 시인이 훗날(사라짐)을 위해 남겨 두었다고 한다”며 “물과 불과 공기로 가득 찬 이 시집은 먼저 눈으로 읽고 그다음은 소리 내어 읽어야 한다. 소리 내어 읽으면 자기도 모르게 슬픔이 가득 차오를 것이다. 인생의 본래 면목은 슬픔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시인은 시집이 오스트리아 출신 대문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마리아께 드리는 소녀들의 기도’가 다시 부활한 듯한 부러움과 놀라움을 느끼게 한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는 “릴케의 기도는 빛처럼 노래처럼, 상승하고자 한다. 노태맹의 기도는 천사들의 하강을 간구하고 있다”며 “지상에 발이 붙들린 사람들의 눈물과 고통의 기도를 ‘사다리 맨 꼭대기에서 천사들이’ 내려다보며 울고 있다. 말할 수 없는 천사들의 슬픔을 시인이 ‘대속’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훈 시인은 그의 삶의 이력과 함께 시집을 해설한다. 이 시인은 “노태맹 시인에게 천사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고, 시인에게 정을 준 사람들이고, 아픔과 고통을 남 대신 더 많이 진 사람들”이라며 “고공 굴뚝에 있는 천사를 위해 의료 가방을 들고 사다리를 오르기도 했던 시인의 레퀴엠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노 시인은 시집에 유일하게 실린 산문 ‘레퀴엠, 천사의 시학詩學만은 아닌’을 통해 ‘시가 어떻게 나를 사유하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고 있는데, 그는 “주체가 언어활동에 의해 파생된 하나의 효과이듯, 시인도 시에 의해 파생된 하나의 효과”라며 “시 전에 시인이란 없고, 시인은 자신이 시를 붙들고 (혹은 시에 붙들리고)있는 한에서만 빛을 내는 존재”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므로 타인에게 혹은 타인이 자신을 시인이라고 호명하는 순간은 불가능하고 지체된 허구일 뿐이다. (그러니 그 시인이라는 이름은 잊자!)”고 스스로 답했다.

노태맹 시인은 경북 성주의 요양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며, 시를 쓰고 철학 공부를 하고 있다. 1990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유리에 가서 불탄다>, <푸른 염소를 부르다>, <벽암록을 불태우다>와 에세이 <굿바이,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이 있다.

정용태 기자
joydrive@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