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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장 어두운 밑바닥에 이주민이 있다. 그들은 한국의 필요로 한국에 초대됐지만, 여전히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받지는 못한다. 쓸만하고 값싼 인력. 또는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쓰이고 보호받지는 못하는 그들은 어떤 사람인가. 그들이 겪는 한국은 어떤 곳인가. 이주민 한 사람의 이야기에 한국 사회의 결함이 중첩돼있다. 대구이주민선교센터를 배경으로 대구 이주민이 겪은 한국의 모습을 살펴본다.

① 어린 딸 혼자두고 출입국에 잡혀간 엄마
② “한국에 결혼이주, 말리고 싶어요”
③ 이민자 2세, 차별의 대물림
④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 후 일어나는 일
⑤ 이주노동자 건강권, 국가의 책임은?

양선희 교수가 계명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로 근무하던 시절. 양 교수의 진료실에는 일하다가 다치거나 질병을 얻은 이주노동자들이 도움을 청하러 찾곤 했다. 이주노동자. 특히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병원 방문 자체를 어려워했다. 양 교수는 그러한 이주노동자 사정을 이해하면서 적합한 치료 방향을 찾아보려 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알음알음 찾아오게 됐다.

이주노동자들은 병원 방문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미등록 이거나, 다른 사유로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면 작은 질병으로도 상당한 비용을 내야 했다. 병원에서의 소통도 어려워, 병원 문턱이 높게 느껴지는 것이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면 의료비가 수천만 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한번은 작은 병원에서 맹장 수술 후 급격히 상태가 나빠진 이주노동자가 찾아와, 큰 병원에 연결했더니 급성 신부전증 진단을 받았다. 이주노동자는 혈당이 올라가 뇌경색이 왔고, 결국 사망했다. 보험적용이 되지 않아, 의료비는 3,000만 원에 달했다.

또 한번은 요로결석 수술이 필요한 이주노동자가 찾아온 일이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면 상당한 비용을 내야 했기 때문에, 양 교수는 병원 내에 의료 선교 같은 자체 지원 프로그램이 있는 곳을 알아보고 이주노동자를 데려다준 일도 있다.

다양한 사유로 진료실을 찾는 이주노동자를 접하다 보니, 양 교수는 이주노동자에게 제도적, 조직적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역 이주민·이주노동자 단체·의료인 단체 등과 함께 이주노동자 공제회를 추진하기로 했다.

공제회 추진을 위해 먼저 ‘이주민 건강권 실현을 위한 동행’을 설립했다. (관련 기사=이주노동자 의료공제회, 대구서도 설립 추진(‘21.9.24)) 동행은 우선 의료기관과 조직적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공제회의 과제로 여긴다. 개인이 아닌 조직으로서 각 의료기관에 미등록 이주노동자 수가 적용 문제, 소통 문제 등의 현실화를 요구하고 협력한다는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이주노동자 당사자 회원과 후원 규모를 키워, 실질적인 공제회 역할 수행도 목표로 하고 있다.

양선희 교수는 “한국은 출신국에서 교육 수준이 높고 건강한 이주노동자를 데려와 노동자 교육에 들이는 비용을 아꼈고, 이들을 저임금, 장시간, 위험한 현장에 활용한다”며 “일하다가 얻는 질병에 충분히 치료할 기회가 보장되지 않으면, 노동자가 출신국에 돌아갔을 때 거기서 만성질환이 생긴다. 노동자의 질병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제회는 우선 의료기관과 직접 협력에 나서서, 이주민에게 병원 문턱을 낮추고 증상이 있을 때 빨리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몇 배 더 비싼 국제 수가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고, 미등록이라 하더라도 불안감 없이 진료받을 수 있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29일 동행이 개최한 이주노동자 건강권 토론회에서 양선희 대표가 발표 중이다

대구경북 미등록 이주노동자 절반 산재 경험
산재 경험자 중 절반은 치료비 본인 부담

지난달 29일, 동행은 미등록 이주민 건강권 실태 조사 결과 발표와 토론회를 열었다. 동행은 토론회에 앞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공제회가 필요한지 살펴보기 위해 실태조사를 시행했다.

동행은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행동하는의사회 대구지부 등 소속 단체와 함께 지난 11월 1일부터 2개월간 대구·경북 미등록 이주노동자 358명의 건강권 보장 실태를 조사했다. 설문지는 동남아시아 지역을 위주로 총 11개 국어로 진행했고, 설문 참가자 국적은 총 15개로 파악됐다.

설문 결과를 요약하면, 응답자 중 절반(160명, 44.7%)은 산재 경험이 있으며, 산재 경험자 중 절반가량은 치료 비용을 전액 본인이 부담했다. 응답자 절반 정도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산재 처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응답자 절반가량이 2년 내 건강검진을 받지 못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산재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결측값 제외) 중 산재 당시 해결 방안에 대해 산재 처리를 했다는 응답은 22명(15.0%)이다. 그 외 산재 처리하지 않고 회사가 부담한 경우는 34명(23.1%), 회사와 본인이 공동부담한 경우는 25명(17.0%), 전액 본인부담한 경우는 66명(44.9%)이다.

응답자는 대체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산재 처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해당 질문에 응답자 202명(56.4%)이 모른다고 응답했고, 안다고 답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141명(39.4%)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평소 건강검진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도 확인됐다. 2년 내 건강검진 여부를 묻자 응답자 유효 응답자 342명 중 31명(8.7%)이 회사를 통해 검진을 받았다고, 109명(30.4%)이 본인 부담으로 진행했다고 답했다. 이주민 지원센터나 무료진료소를 통해 받은 경우는 22명(6.1%)이었고, 받지 못한 경우가 180명(50.3%)이었다.

건보 재정 축내는 외국인? 사실 아냐···오히려 흑자
건보 적용, 외국인 불리하고 차별 있어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건강권 실태와 의료공제회 추진 관련 논의 외에도 이주노동자의 전반적인 건강권 침해 현실에 대해서도 토론했다.

발표에 나선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 거주 외국인의 건강보험 납입료가 사용분보다 많아 흑자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여러 차별적 규정 때문에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더 비싼 보험료를 낸다고도 설명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 ‘국민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닌 셈이다.

외국인은 내국인보다 비싼 보험료를 내거나, 보험급여가 제한되는 조건도 내국인보다 까다로워 혜택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2019년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으로 입국한 뒤 6개월이 지난 외국인은 건강보험에 당연 가입되는데, 농업, 어업 등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곳에 고용된 외국인은 지역가입자가 돼 직장가입자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내게 된다. 외국인이 지역가입자인 경우 건강보험공단 규정에 따라 소득이나 재산 수준이 평균 이하인 경우라도 최소 평균 보험료 이상을 내야 한다.

외국인은 실수로 한 번이라도 건강보험료를 체납하면 즉시 의료급여가 제한되는 데다가 비자 연장을 하지 못할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우선 건강보험료 1회 체납 시 외국인은 체납 즉시 보험급여가 제한된다. 반면 내국인의 경우 6개월 이상 체납 시 자격을 제한한다. 1회라도 체납한 경우 즉시 보험급여가 제한되기 때문에, 제한 기간에 병·의원을 이용하면 의료비 100%를 전부 부담해야 한다. 또한 법무부는 2019년 8월부터 건강보험료를 체납한 외국인의 비자 연장을 제한하는 제도도 시행했다.

김사강 연구위원은 “외국인은 보험료를 한 달만 연체해도 다음 달 1일부터 무조건 급여가 제한된다. 실제 제한 상황을 모르고 병원에 갔다가 나중에 공단이 보험료 체납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지급한 보험료를 환수하는 사례가 있다. 환수금은 나중에 체납 보험료를 완납해도 돌려주지 않는다”며 “이주민이 아파서 일을 못 해서 직장을 잃었는데 지역가입자가 되고, 보험료가 7만 원에서 14만 원으로 늘어나서 낼 수가 없어지고, 그러면 아파서 일을 그만뒀는데 병원에도 못 가게 된다. 악순환이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일용직, 간병인, 가사 노동자, 농어촌 이주민은 직장가입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기본적으로 비싼 보험료를 내게 된다”며 “수가 적용도 다르다. 외국인에게 적용되는 국제수가(외국인 의료수가)가 붙으면 (비용이) 2배다. 병원비가 수천만 원에서 억대까지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김사강 연구위원은 의료공제회의 안착을 위한 과제로 이주민이 국제수가가 아닌 의료급여 수가를 적용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기관과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기관과 이주민 단체 차원이 아닌 지역사회 전반적인 관심과 협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재 임의단체 상태인 동행은 7월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하고, 회원모집을 통해 연내 공제회 출범을 목표로 한다. 후원 문의는 양선희(☎010-7512-7146)으로 할 수 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