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편견 대신 ‘위로와 사랑’이 감염병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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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8일, 2년 2개월 만에 일상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합심해서 노력한 덕분이다. 정부는 코로나 방역을 위해 사회적 거리를 두어야 하지만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코로나와 함께 살기로 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4월 19일 현재, 각국이 발표한 누적 사망자는 623만 명이지만, 실제 1천 500만 명을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와 함께 사는 것은 반가우면서도 두렵다. 이제 코로나와 함께 살려면 가장 효과적인 백신이자 치료제인 ‘위로와 사랑’도 함께해야 한다.

코로나는 부모와 형제까지도 분리했다. 이웃이 없어졌다.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누가 코로나에 걸렸다고 하면 일단 그 사람을 격리했다. 그만큼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력은 셌다. 확진자 옆에 있기만 해도 전파되곤 했다. 때문에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엄격하게 적용했다. 이로 인해 ‘심리적 거리’를 가까이하려 해도 자연스럽게 마음도 멀어져 버렸다. 이제 코로나와 함께 살아야 한다. 확진자를 더 각별하게 배려하고 위로하며 사랑해야 한다. ‘위로와 사랑’이 가장 좋은 치료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1일, 코로나에 확진되어 7일간 집에서만 지냈다. 심한 몸살과 목 아픔은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그리웠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 지인들과 학생들의 위로 전화를 수시로 받으면서 심한 몸살도 나은 것 같았다. 목 아픔도 잠시 사라졌다. ‘위로와 사랑의 기적’을 체험했다.

필자는 40년 전, 1983년 육군사관학교 1학년 크리스마스 무렵 ‘결핵성 늑막염’으로 국군수도병원에서 입원했다. 격리병실에서 3개월 남짓 입원하는 동안 외로움이 무엇보다 힘들었다. 좁은 병실에서만 지내야 하니까 숨이 막혔다. 희망이 없었다. 환자들이 많을 때는 침대를 붙여 세 명이 쓰기도 했다.

84년 설날 무렵, 옆 침대를 쓰던 용사가 ‘결핵성 뇌막염’으로 끝내 세상을 떠났다. 이제야 용사의 한 맺힌 음성이 가슴으로 들린다. “나라를 지키다 쓰러졌는데, 어찌하여 나라는 나를 못 지키나.” 그때 몹시 힘들었다. 감염병인 결핵 환자라는 딱지가 병실을 벗어나지 못해 마지막 가는 길에 배웅도 못했다. 모든 면회가 금지되었다. 교도소도 면회가 되는데 불만이 많았다. 그동안 코로나 방역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할 때마다 떠올랐던 아픔이다. 결핵에 걸려도 2주간 치료약을 먹으면 전염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군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필자는 ‘결핵성 늑막염’을 치료하고 있음을 철저하게 숨겼다. 당시엔 감염병인 결핵에 대한 편견이 심했다. 같이 있기만 해도 전염되는 줄 알았다. 결핵환자임을 알면 ‘기겁하고 피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마음을 닫아 버렸다.

이런 경험 속에서 마음을 열게 된 계기는 위로와 사랑의 손길 덕분임을 고백한다. 매일 공복에 항생제 12개를 먹으면서도 육사를 졸업했다. 동기생 360여명이 입학해서 300명이 졸업할 정도로 힘든 생활이었다. 위로와 사랑은 마음을 열게 했고, 덤으로 불굴의 의지까지 만들어 주었다. 목포 출신인 임덕규 교수는 남몰래 사랑을 쏟아 부어 주셨다. 이 덕분에 군 복무 중 가장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뛰어드는 군인이 될 수 있었다.

1993년 대한민국 국군 최초로 유엔 깃발 아래 소말리아에 파병 갔을 때다. ‘소도 말라 죽는다’는 처참한 소말리아에 결핵환자 수용소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용소 천막 안을 거리낌 없이 들어갔다. 함께 간 기자들이 “결핵이 전염병임을 모르느냐”고 말렸지만 들리지 않았다. 영양 부족으로 앙상하게 뼈만 남은 아이들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2004년 이라크 파병 때도 그랬다. 선발대 요원으로서 현지 주민을 만나 대한민국 국군이 도우러 온다는 것을 알리는 임무였다. 결핵병원에 찾아가기만 했는데 현지인들은 마음을 열어 주었다. 결핵이나 코로나에게 가장 효과적인 백신과 치료약은 ‘위로와 사랑’임을 확신한다.

사실 2년 전, 코로나보다 우리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사회적 고립보다 심리적 고립’이었다. “대구를 고립시켜야 한다”는 어느 정치인의 말에 경악했다. 하지만 각지에서 대구로 몰려온 자원봉사자를 보며 그 말을 무시할 수 있었다. 온 국민이 함께하며 서로 배려하고 보내는 ‘위로와 사랑’이 ‘K방역’이다.

이제 코로나와 함께 살아간다. 사회적 거리는 두어도 마음만은 더 가까워야 한다. 이웃 중 누군가 코로나 확진을 받으면 먼저 마음을 보내자. 그러면 코로나가 이웃 간에 담을 무너뜨릴 것이다. 직장에서 동료가 코로나에 걸리면 먼저 흔쾌히 쉬게 하자. 코로나가 그 동료와 돈독한 우정을 쌓게 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코로나가 메마른 우리 사회에 단비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코로나와 공존 할 수 있다.

지난 7일 동안 코로나와 씨름하면서 그간 잊고 지낸 결핵도 다시 보았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결핵은 그동안 전 세계인을 가장 많이 죽음으로 몰고 간 감염병이다. 2020년 한해만 전 세계적으로 987만 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149만 명이 사망했다. 그럼에도 이제 결핵을 겁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코로나로 인해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우리 모두가 건강하지 않고는 절대로 혼자만 건강하게 살 수 없다. 세계인이 모두 건강하지 않고는 우리나라만 절대로 건강을 누릴 수 없다. 이것이 코로나와 함께 살면서 거리는 두어도 마음은 더 가까워져야 하는 이유이다.

잿빛 도시에도 온갖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동안 거리두기에 지친 우리들 마음을 보듬어주고 있다. 연구실 창 너머로 들려오는 학생들 웃음소리가 마냥 싱그럽고 푸르러만 간다. 함께 어울리고 나누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깊이 깨닫는다. 결핵과 함께 살아왔듯이 코로나와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가장 효과적인 백신이자 치료약인 ‘위로와 사랑’도 함께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