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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이 넘지 못하는 문턱이 있다. 장애인 거주시설. 시민의 당연한 권리가 제한되어 왔던 이곳에 관심이 뜨겁다. 어떤 정치인은 “지역사회 복지서비스 강화 이전에 강요로 시행되는 탈시설 정책은 인권 유린”이라고 비판했다. 옳다. 하지만 누구도 장애인을 황무지로 보내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탈시설’ 요구에는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는 요구가 포함된다. 그 준비를 해야 해야 할 의무가 정치인에게 있지만, 지금껏 정치는 그 의무를 외면했다. 정치가 사라진 비문명의 황무지에서, 장애인과 장애인 부모는 한쪽에 헌법이라는 무거운 책무를, 한쪽에는 죄책감을 짊어져야 했다.① ‘기환이 엄마’ 앞에 놓인 선택지
② 발달장애 아들과 황무지를 개척한 33년
③ 벼랑 끝 발달장애인 부모
어머니가 딸을 살해한 사건이 있다. 딸은 발달장애인으로, 사망 당시 9세였다. 울산지방법원 제11형사부(재판장 박주영)에 따르면, 그 어머니는 아동에 대한 양육 부담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2019년, 9년의 양육 끝에 남편마저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게 되자 목숨을 끊을 것을 결심한 어머니는 먼저 딸을 살해하고, 뒤따르려 했다. 다량의 약을 먹었으나 응급실에서 깨어났다. 그 뒤, 살인죄로 실형 4년을 선고받았다.
딸의 소아청소년과 담당 의사는 재판부에 선처를 탄원했다. 의사는 어머니와 딸을 상담하면서, 어머니가 자신의 모든 것을 아이의 치료와 훈련에 쏟아부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치료로 딸의 상태가 나아지지는 않았고, 가정의 사정 악화와 함께 일이 벌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아이에 대한 엄마의 정성과 애정으로만 아이를 키우기에 너무나 벅찬 현실입니다.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이 따라다녔고, 제대로 된 시설이나 훈련 프로그램을 갖춘 교육기관은 손에 꼽기 힘들었습니다. 딸의 죽음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비극일지 모릅니다. 한 가족에게만 자폐와 같은 발달장애 자녀를 책임지우는 것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의사의 탄원서)
재판부는 판결문에 이렇게 썼다. “자폐와 발달장애를 가진 아동을 위해 전력을 다한 어머니가 저지른 범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비극적 결과를 온전히 가족에게만 묻는 것이 합당한지 고심했다”며 “형사 법정은 개인만을 단죄할 뿐 국가와 사회를 단죄할 수 없어, 당원(재판부)을 무력하게 만든다···도대체 아이들의 목숨조차 온전히 지켜주지 못하면서 무슨 복지를 논하고, 어떻게 정의를 입에 올릴 수 있는가”
장애인 부모가 벼랑 끝에 서 있다. 2019년 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달, 경기도 시흥시 자택에서 20대 발달장애인 딸을 살해한 혐의로 친모가 구속됐다. 친모는 홀로 딸을 기르다, 갑상선암 말기가 되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친모는 ‘다음 생에는 좋은 부모를 만나거라’라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겼다. 극단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해도, 다른 장애인 부모가 처한 상황 역시 녹록하지 않다.
장애인 거주시설 입소자 대부분 발달장애
가정에서 감당하다 못한 부모, 입소 선택
부모, 나이 들며 건강 악화·경제력 감소
우울증에도 시달려···부모 사후 대책 없어
장애인 가족 지원 제도 부족
보건복지부, 국무조정실 자료를 종합하면 2020년 기준 등록 장애인은 262만 명, 그중 발달장애(지적장애, 자폐성 장애)인은 24만 8,000여 명이다. 전국 장애인 거주시설에는 2만 9,000여 명이 입소한 상태며, 거주시설 입소 장애인의 80.1%가 발달장애인이다. 장애인 등록시 지체장애 등 다른 유형의 중복장애가 있어도 통상적으로 하나의 유형으로만 등록하기 때문에, 지체장애 등으로만 등록한 발달장애인을 포함하면 거주시설 장애인 중 발달장애인은 80.1%를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발달장애는 인지능력 특성상 발달장애인이 성인기에 접어들더라도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하며, 이는 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부모에게 부담이다. 장애인 부모에 대한 통계적 연구가 활발하지 않아, 확인되는 연구는 2014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행한 연구보고서 ‘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부모를 위한 돌봄 지원방안 연구’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부모가 겪는 우울증과 부담은 심각한 반면 제도적 뒷받침은 부족하다.
연구원이 2014년 전국 17개 시·도 발달장애인 부모 624명을 전문면접원을 통해 대면 조사한 결과, 부모들은 자녀 연령이 30대를 넘어서면 신체적 건강 상태가 나쁘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급증한다. 0~6세, 7~12세, 13~18세, 19~24세, 25~29세까지는 신체적 건강 상태가 ‘매우 나쁘다’, ‘약간 나쁜 편이다’라고 답한 비율이 40% 내외를 유지하다가 30세 이상이 되면 70%가 된다. 장애인 부모가 겪는 우울증은 자녀 연령과 무관하게 40% 내외로 확인된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 차승현(55), 홍기선(67) 씨 또한 장애인 자녀를 양육하면서 우울증을 호소했고,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 (관련 기사=본문 상단 링크 참조) 이들은 장애인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가정에서 감당하다가 돌봄 능력이 한계에 달해, 장애인 거주시설에 자녀를 보냈거나(차승현) 거주시설 입소를 고민하는(홍기선) 상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장애인 자녀 연령이 20대를 넘어서면서 양육에 강한 부담을 느꼈다. 자녀가 장애인 교육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연령을 넘어서면서, 차승현 씨 아들은 더 이상 맡길 곳이 없었다. 승현 씨는 한부모 가정인 입장에서 경제활동에도 어려움을 느낀 데다가, 지역사회에서 활동지원사도 구하지 못해 결국 아들을 시설에 보내기로 했다.
홍기선 씨의 경우 장애인부모회 활동을 하면서 기초단체에 요구해 주간보호센터를 만들어 내면서 아들이 전공과를 졸업한 20대 이후에도 직접 양육이 가능했지만, 센터 이용 기간(12년)이 길어 퇴소해야 하는 상황이다. 홍기선 씨는 아들 퇴소 이후 양육을 위한 다른 방안이 없다.
이들이 거주시설 입소 고민을 시작한 것에는 공통적으로 건강 악화, 경제적 부담, 본인 사후 발달장애인 자녀 양육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 종합되어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기존에 마련된 발달장애인 지원에 관한 제도가 부족하다고 설명한다.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발달장애인 특성에 맞는 돌봄 등을 지원할 의무를 규정하지만, 성인 발달장애인에게 그나마 실효적인 제도는 성년후견제 이용지원에 그치는 상황이다.
하지만 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년후견제에 대해 장애인 부모 중 39.9%만 이용 계획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성년후견제에 대해 대체로 ‘이용 비용이 많이 든다’, ‘자녀 자기 결정권에 제약을 받는다’, ‘후견인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장애인 부모는 부모 사후 장애인 자녀 양육 계획에 대해 대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 연구 결과, 장애인 자녀를 더 돌보지 못하는 상황을 대비한 계획을 묻는 질문에 장애인 부모 60%가 자녀가 어디에서 살 것인지, 누구와 살 것인지 계획을 하지 못한 상황이다.
연구 책임자인 김영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일과생애연구본부 연구위원은 “발달장애의 경우, 최중증 상태라면 어렸을 때 이미 시설에 갔을 가능성이 크고, 20~30대까지 가정에서 감당했다면 돌봄이 제공되는 조건에서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케어를 감당하던 부모가 나이 들면 여력이 부족해진다. 체력적, 물리적으로도 장애인 자녀보다도 약하다. 그래서 장애인 부모는 장애인 거주시설에 보내는 것을 마지막 선택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지원되는 제도도 발달장애인이 청소년기일 때 집중돼 있다”며 “치매의 경우 부족하나마 국가책임제를 시작했지만, 발달장애는 아직 그 논의가 부족하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 부담은 치매 노인에 대한 것과 버금가거나 더하기 때문에, 국가책임과 관련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