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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해 정부는 인구감소지역 89곳을 지정했다. 89곳 중 16곳은 경북이다. 경북은 전남과 함께 가장 많은 곳이 인구감소지역으로 꼽혔다. 대구도 안전하지 않다. 남구와 서구가 인구감소지역에 이름을 올렸다. 감사원이 지난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47년이 되면 대구 모든 구·군이 소멸(고)위험 단계에 접어든다. 시민들도 이를 장래에 다가올 가장 큰 위협으로 주목하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미래, ‘인구소멸’은 우리를 막다른길로 몰아넣고 있는 걸까?
[인구소멸, 막다른길] ① “상가는 내놔도 팔리지 않고, 학교도 없어지잖아요”
[인구소멸, 막다른길] ② 고령화X고밀도=소멸?
지난 1월 <뉴스민>이 대구와 경북 곳곳에서 진행한 인터뷰는 인구소멸의 징후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엿볼 기회였다. 의성처럼 상대적으로 출산율은 높지만 ‘아이가 없다’며 인구감소를 체감하는 도시가 있고, 구미처럼 같은 도시에서도 인구감소를 체감한다는 이와 오히려 출생아가 너무 많아 다른 걱정거리를 안고 사는 이를 만날 수 있는 도시도 있다.
도시 간 차이뿐 아니라, 도시 내에서도 차이가 확인됐다. 그 차이에 따라 인구소멸의 위기는 앞당겨지거나 밀어내지기도 했다. 인구소멸의 위기를 앞당기기도, 밀어내기도 하는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어쩌면 차이의 원인을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인구소멸 문제를 접근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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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소멸을 초래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자연소멸이고, 다른 하나는 유출이다. 하나씩 구체적으로 지표를 살펴보면, 자연소멸은 ‘데드크로스’ 지표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데드크로스는 태어나는 사람보다 사망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말한다. 다른 도시로의 인구 유출과 상관없이 순감소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는 의미다.
지난해 경상북도가 국토연구원을 통해 마련한 지방소멸대응 종합계획 용역 최종보고 자료를 보면 경북 내 시·군 중 52.2%(12곳)1가 이미 2000년 이전에 데드크로스를 경험했다.
12곳을 제외하면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다. 경북의 데드크로스는 2000년 이후에도 꾸준히 진행됐다. 2001년부터 2005년 사이에 5곳2이 추가됐고, 2011년부터 2015년 사이 1곳3, 2016년부터 2020년 사이 3곳4이 더 추가됐다. 2020년까지 데드크로스가 도래하지 않은 지역은 단 1곳 구미뿐이다.
데드크로스가 이미 2000년 이전에 일어난 지역 12곳 중 8곳은 2020년 기준으로 도내 합계출산율이 높은 상위 10개 도시에 든다. 오히려 여태 데드크로스가 도래하지 않은 구미는 합계출산율이 0.944명으로 칠곡(0.741), 울릉(0.860), 경산(0.888), 청도(0.903) 다음으로 낮다.
이는 데드크로스는 ‘출생’보다 ‘사망’에 더 영향을 받는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전국적으로 겨우 합계출산율 ‘1’을 넘기느냐 안 넘기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린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제는 출생이 도시의 흥망에 기여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지경에 이른 거다.
2000년 이전, 데드크로스가 일어난 12곳 중 11곳이 경북에서 고령화가 진행된 상위 12개 도시에 포함된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상위 12개에 포함되지 않는 울진은 상위 열세 번째 도시다. 고령화 진행에 따른 사망 증가가 데드크로스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기준, 구미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9.3%로 23개 시·군 중 유일하게 10% 아래다.
인구소멸의 원인, 자연감소와 유출
2020년까지 경북 22개 시군 데드크로스
인구 순감소 시대에 접어들어
유일하게 구미만 여전히 출생 많아
이를 고려하면 <뉴스민>이 경북 의성과 구미에서 만난 시민들이 인구소멸에 보인 인식을 좀 더 분명하게 해석할 수 있다. 의성은 2020년 기준으로 전국에서 여덟 번째, 경북에선 가장 합계출산율이 높다. 구미는 경북에서 다섯 번째로 낮아서 두 도시의 출산율 차이는 0.654명에 이른다. 하지만 두 도시에서 만난 다수 시민은 공통적으로 인구소멸을 체감하는 근거로 ‘저출생’을 꼽았다.
현 시점에서 의성이 겪는 소멸 위기는 저출생보다 고령화 때문이라는데 더 무게가 실린다. 인구의 40.8%가 65세 이상인 의성은 초고령 사회 기준(20%)보다도 2배 더 늙은 도시다. 아무리 많은 아이를 낳아도 도시의 절반이 노인으로 구성된 도시는 출산율과 상관없이 출생이 적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 셈이다.
반대로 구미는 고령화 사회 기준(7%)을 조금 넘어선 수준이지만, 출산율이 낮다. 인구대비 출생이 적다는 의미인데, 도시 내에서 편차가 크다. 그 탓에 구미 안에서도 인구소멸 문제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시민을 만날 수 있다. 산동읍에서 만난 엄마들이 그랬다.
아이가 둘인 임건희(35) 씨는 “여긴 아기가 3명인 집도 많고, 5명도 있고 쌍둥이도 많다. 오히려 애들 없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저출산은 체감되지 않는다”고 했고, 둘째를 임신 중인 정소연(38) 씨도 “여기에는 아이를 키우는 집이 많아서 인구가 줄어든다는 건 크게 체감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읍면동 단위까지 합계출산율을 알 순 없지만 산동읍은 경북에서도 출생이 가장 많은 동네다. 2020년 기준으로 산동읍은 경북 332개 읍면동 중 가장 많은 아이(533명)가 태어났다. 구미에서 태어난 2,695명 중 19.7%에 해당한다. 구미의 합계출산율은 1에 미치지 못하지만 산동읍은 1은 넉넉히 넘고도 남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성, 합계출산율 높지만 고령 인구 40% 이상
출생의 많고 적음으로 인구소멸 체감하는 수준 넘어서
구미, 합계출산율은 낮지만 지역별 편차
감사원 연구, 인구밀도가 출생 영향 미쳐
왜, 같은 구미 안에서도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이유를 추정할 수 있는 연구가 하나 있다. 지난해 감사원은 정부가 추진하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의 성과를 분석하고 미래 인구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주요 분야별로 전망하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감사원은 이때 서울대 인지과학연구소에 한 가지 연구를 맡겼다. 해당 연구는 우리나라 초저출생의 심리적 원인에 대해 연구했는데, 인구밀도가 출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확인됐다. 4
연구에 따르면 1996년 이후부터 인구밀도와 출산이 유의미한 음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출산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출산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사회·경제적 요인과 상관관계까지 분석해서 밀도가 출산에 미치는 효과가 다른 요인을 제거해도 유지된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그 원인을 사람들이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결혼·출산보다는 교육이나 커리어에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자신의 경쟁력을 확보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시군구 수준의 통계청 자료를 분석하여 인구밀도가 높은 환경에 거주하는 사람일수록 낮은 수준의 출산율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특히 이 효과가 시군구의 경제적 수준 등 기타 요인의 효과를 제거하더라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처럼 인구밀도와 수도권 집중 현상 둘 다 높은 국가에서 청년이 극심한 경쟁에 노출되며, 결과적으로 혼인과 출산을 우선시하지 않게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 결과를 경북 시·군에 대입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확인된다. 2020년 기준으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상위 5개 도시(구미, 경산, 포항, 칠곡, 경주) 중 3곳(구미, 경산, 포항)이 합계출산율 하위 5개 도시에 포함된다. 하위 10개 도시로 확대하면 5개 도시가 모두 포함됐다.
출산율이 낮다고 해서 출생아 수 절대 수치가 적은 건 아니다. 이들 5개 도시 중 4곳은 출생아 수가 경북 내 상위 5개 도시 안에 든다. 칠곡이 여기에 포함되진 않지만 상위 여덟 번째 도시다. 이는 5개 도시 중 칠곡을 제외한 4곳이 인구 20만 이상의 경북 권역 중심도시여서 가임 여성(15~49세)도 많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도시 내 출생 격차도 같은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인구소멸’을 체감하지 못하는 동네, 산동읍은 구미 내에서 인구밀도가 낮은 동네다. 산동읍의 면적은 67.07km2로 구미 27개 읍면동 중 두 번째로 넓다. 인구밀도는 여섯번째로 낮다. 산동읍보다 인구밀도가 낮은 곳 5개 면은 고령화 수준이 낮은 구미에서도 고령인구가 30% 이상으로 고령화 수준이 가장 높은 상위 5개 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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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종합하면 의성과 구미의 저출생 문제에 대한 시민 체감과 산동읍에서 확인되는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인구대비로 아이를 많이 낳는 도시라고 해도,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된 도시는 이를 체감할 수 없고, 인구대비로 아이를 적게 낳는 도시 내에서도 특정한 지역은 출생이 많을 수 있다.
즉 자연감소 문제는 고령화 수준이 낮으면서 인구밀도가 낮으면 자연스러운 출생 증가로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 가능하다. 결국 도시별로 인구밀도를 낮추도록 적절한 수준의 인구 분산이 이뤄진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문제는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의 집중, 비수도권 내에서도 중심도시로의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연스럽게, 또 다른 인구소멸의 원인인 인구 유출 문제를 살펴봐야 할 때다. (계속=[인구소멸, 막다른길] ③ 다 아는 이유, 떠나는 청년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