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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1월 26일부터 한 달 동안 49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일하다가 사고로 죽지 않도록 하라는 국가의 신호는 지난 2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 만에 삼표산업 산재 사망 사고로 깨졌다. 하루 2명 꼴로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하는 한국 사회는 정말 변화할 수 있을까.

① “ ‘사고 사망 노동자’ A 씨, 우리 아버지 전수권입니다”
② 대구경북 지역 산재 사망 판결, 실형 선고는 단 3.5%
③ 중대재해처벌법 탄생 약사···반복된 참사의 기록
④ 퇴직까지 산재 숨긴 포스코 노동자의 후회
⑤ 잘나가던 불로반점 사장님, 가게 문 닫은 사연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산재 부상, “통합 체계 필요”

퇴직까지 산재 사실을 숨긴 일한 씨(관련기사=퇴직까지 산재 숨긴 포스코 노동자의 후회). 허리와 목디스크 산재 인정을 받으려 했으나 인정받지 못한 성한 씨(관련기사=잘나가던 불로반점 사장님, 가게 문 닫은 사연). 이들은 왜 업무 도중 다치고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을까. 업무상 질병을 앓거나 재해로 부상당한 노동자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산재보험의 ‘사회보험’ 성격을 강화해 보장성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배경이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보건복지위원회)에 따르면, 산업재해를 신고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은폐하는 사례가 2016년 3만 6천여 건, 2017년 3만 9천여 건, 2018년 3만 3천여 건, 2019년 2만 9천여 건, 2020년 2만 9천여 건으로 매해 약 3만 건 발생하고 있다.

▲매해 산업재해 은폐 사례가 약 3만 건 가량 확인된다. (자료=최혜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실)

산업재해가 당국에 신고되지 않고, 치료 시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으로 처리되는 경향이 확인된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 악화와 더불어 산업재해 신고가 되지 않음으로써 산업 현장의 안전사고 예방 등 후속 조치도 어렵게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 노동자의 재활과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 운영되는 산재보험은 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사회보험이다. 하지만 별도 신청 없이도 보장받는 건강보험과 달리 산재보험은 노동자 신청에 따른 심의·판정을 거친다.

노동자가 겪는 질병이나 재해가 업무로 인한 것인지 입증할 책임도 노동자에게 있는 점도 산재 적용이 어려운 지점이다. 이 때문에 인과관계 입증 책임을 완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제기됐다. 하지만 2021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기존대로 근로자 입증책임 판례를 유지했다. 대법원은 한 노동자 사망 사고에서 업무와 재해의 인과관계 입증 책임이 업무상 재해를 주장하는 노동자 측에게 있다고 판결했다.

산재 신청 이후 재해 경위 조사 과정에서 사업주 조사도 이뤄질 수 있다는 점도 노동자 입장에서 산재 신청을 꺼리게 되는 이유다.

산재보험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산재보험상 요양급여 등 일부 급여를 보험 관할 기관끼리 연계해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에서 활동하는 이종란 노무사는 “현행 산재보험은 다친 사람이 일일이 신청하고 승인받는 구조로 돼 있다. 규정이 어려워서 노무사에게 알아서 처리해달라는 요청도 있을 정도”라며 “일하다 다치거나 질병을 얻은 피해자 입장에서, 특히 중증일수록 기관에 쫓아다니며 신청하고 승인받는 절차를 버거워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으로서의 성격을 살리기 위해서는 마치 손배소처럼 과실 여부를 신청인이 입증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프면 치료받고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받는 성격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란 노무사는 “운영 체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산재보험 건강보험 통합 자체가 어렵다면 적어도 요양급여 만이라도 보험을 관할하는 기관끼리 연계해서 피해자 중심에서 보장성을 높일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