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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1월 26일부터 한 달 동안 49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일하다가 사고로 죽지 않도록 하라는 국가의 신호는 지난 2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 만에 삼표산업 산재 사망 사고로 깨졌다. 하루 2명 꼴로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하는 한국 사회는 정말 변화할 수 있을까.
① “‘사고 사망 노동자’ A 씨, 우리 아버지 전수권입니다”
② 대구경북 지역 산재 사망 판결, 실형 선고는 단 3.5%
③ 중대재해처벌법 탄생 약사···반복된 참사의 기록
④ 퇴직까지 산재 숨긴 포스코 노동자의 후회
⑤ 잘나가던 불로반점 사장님, 가게 문 닫은 사연
⑥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산재 부상, “통합 체계 필요”
대선 투표가 한창인 3월 9일 대한민국. 당선인 선출 이후 기대와 우려에 들뜬 3월 10일. 그 이틀간 산업재해로 노동자 3명이 사망했다. 경기도 고양시 건축 현장에서 굴착기가 넘어지면서 노동자의 머리가 부딪쳐 1명, 또 다른 건축 현장에서 추락하는 철근 다발에 머리를 맞은 노동자 1명. 경기도 김포시 섬유 제품 제조업체에서 섬유 믹싱기 날개에 끼여 1명.
숫자로 전달되는 죽음의 신호. 노동자와 남은 가족의 고통은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해달라는 경제지와 기업의 주문이 포털을 채운다. 특수통 검사 출신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중대재해처벌법이 경영 의지를 위축시킨다고 거들었다. ‘산재 공화국’ 대한민국은 앞으로 어디로 향할까.
강은미 국회의원(정의당, 환경노동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한해 산업재해로 768명이 사망했다. 하루에 2.1명이 사망한 셈이다. 그해 759건의 사망사고 중 건설업에서 432건(56.9%), 제조업에서 196건(25.8%)이 발생했다. 2021년에는 668명이 사망했다. 2021년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해지만, 재계 민원을 받아들인 국회는 법 적용을 2022년으로 유예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에서 제외됐으며,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 1월까지 적용을 유예했다.
과실치사(상),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수사와 처벌해온 기존 방식은 처벌 정도가 가벼워 예방효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선고일 기준 2017년 2월부터 2022년 2월까지 5년간 공개된 대구지방법원과 서부지원의 산업안전보건법·과실치사(상) 위반 1심 판결 57건 중 단 2건(3.5%)만이 실형 선고를 받았다. 나머지 55건(96.5%)은 징역형·금고형이라도 집행유예를 받거나 벌금형에 그쳤다.
전국적으로도 같은 추세다. 류호정 국회의원(정의당,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산업안전보건법 1심 처리 결과, 자유형(징역·금고·구류) 선고는 659건 중 9건으로 1.4% 수준이다. 2021년에도 960건 중 14건(1.6%)으로 비슷했다.
지역에서 실형 선고를 받은 2건은 피고인이 집행유예 기간에 추가 범행한 점, 유족에게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점, 보험 미가입·미등록 사업자인 점이 고려된 사례 1건, 과실치사와 더불어 폐기물관리법 위반과 배임죄도 병합돼 경합범 가중처벌을 받은 사례 1건으로, 모두 일반적 산업재해 사례는 아니다.
대구에서 5년간 산안법 1심 처벌 실형은 단 2건
2건도 일반적 산업재해 사례와 차이 커
2017년 4월 노동자 A(61) 씨는 대구 중구에서 미신고 싱크대 설치업을 하던 사업자 B 씨와 함께 싱크대 설치를 위해 운반 도중 주택 계단에서 추락해 두개골 골절로 사망했다. 당시 B 씨는 위험한 현장을 확인하고도 안전상 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을 지시했다. 이 사건이 통상적 사건과 달리 실형이 선고된 이유는 B 씨가 피해 보상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집행유예 기간인 데다가 사업자 등록이나 산재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법원은 실형 선고를 하면서도 B 씨를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2018년 12월 무허가로 폐기물 처리업을 하던 사업자 B 씨는 1톤짜리 압축 폐비닐 뭉치를 5단으로 쌓아 놓고 노동자 A 씨에게 지게차로 출고하도록 지시했다. 폐비닐 뭉치가 전도되지 않도록 하는 장비는 없었으며, 그 결과 A 씨가 뭉치 하나를 들어 올리자 뒤에 5m 높이로 적재됐던 다른 뭉치가 무너지면서 지게차가 넘어졌고, A 씨는 지게차에 깔려 다발성 장기 손상으로 사망했다. B 씨는 과실치사에 더해 불법 폐기물을 방치한 죄, 폐기물관리법 위반 동종 누범이 적용돼 실형 1년 6개월과 추징금 약 5,4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지역 사건 57건 중 과실치사로 가장 낮은 형인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사건은 2016년 달성군 한 제조업체에서 발상한 사고다. 업체 노동자 A 씨는 가동 중인 자동이송장치에 소재를 공급하도록 지시받았다가 장치에 머리가 끼여 사망했다.
한 사고로 4명이 죽거나 다친 사건에서도 책임자가 집행유예로 풀려나기도 했다. 2016년 10월 경북 칠곡군 공장 철거 공사에서 테레프탈산 저장 탱크 철거 중 테레프탈산이 폭발해 노동자 1명이 뇌출혈로 사망하고 인근 주민 3명이 다쳤다. 사망한 노동자는 폭발 충격으로 탱크로부터 150m 떨어진 곳까지 튕겨 나갔다. 하지만 대구지방법원은 현장 소장인 피고인 B 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철거 도급을 맡긴 C 씨에게 금고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지역 산재 사고 57건은 건설업 24건(42.1%), 제조업 20건(35.1%)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폐기물처리업 3건, 운송업 2건 등 다양한 업종에서도 사고가 발생했다. 재해 발생 형태는 추락이 23건(40.4%), 끼임 11건(19.2%), 깔림 9건(15.8%), 충돌 6건(10.5%), 질식 2건(3.5%), 폭발 2건(3.5%), 감전 2건(3.5%), 화상 1건(1.7%), 온열질환 1건(1.7%)으로 나타났다.
산업재해 처벌 수준 낮은 이유는?
‘김용균법’ 제정하면서 법정형 하한 규정 못 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한 잘못으로 노동자를 사망하게 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또한 동종누범의 경우 가중처벌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7년은커녕 수개월의 실형 선고 사례조차 보기 어렵다.
처벌을 정하는 과정(양형)은 법정형과 개별 사건에 적용되는 선고형으로 나뉜다. 법관은 법정형의 범위 내에서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하는 양형기준에 따라 형을 가중하거나 감경해 선고한다. 현행 양형기준은 과실치사의 경우 징역 6월~1년, 업무상과실 치사에 대해서는 징역 8월~2년을 권고하고 있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중 단순 안전·보건조치의무 위반 사례에서는 징역 6월~1년 6월과 안전·보건조치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징역 1년~2년 6월을 권고하고 있다. 형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할 경우 법관의 재량으로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 심각한 가중 요인이 없다면 집행유예 요건에 해당하는 셈이다.
또한 사업주의 위반 행위가 형법(과실치사 등)과 산업안전보건법을 동시에 위반하는 경우 ‘상상적 경합’에 해당해, 형이 가중되지 않고 둘 중 더 무거운 죄로만 처벌받게 된다. 법관은 양형에 법정형의 상한이 아닌 하한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고, 이 때문에 태안화력발전소 故 김용균 씨 사망 이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당시에도 개정 산안법에 산재 사망 사고에 대한 법정형의 하한 규정이 포함돼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재계 등의 반발로 관철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산재 사고에서 선고형이 벌금이나 집행유예에 그치기 때문에, 비용과 편익을 따지는 사업주가 비용을 투자해 안전보건 사고 예방에 나서도록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명준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정책제도연구부장은 “법정형은 7년까지 선고가 가능하고 동종누범으로 가중처벌 시 10년 6월까지도 가능한데 중요한 건 선고형이다. 법관이 선고할 때는 양형기준과 기존 판례를 참고한다. (기존 판례는) 대체로 집행유예인 상황”이라며 “양형위원회가 최근 양형기준을 강화했다. 산안법 위반 시 과거보다 무겁게 처벌할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판례가 쌓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산안법에 하한 규정이 없고, 적용되는 종사자 범위 문제도 있어서 중대재해처벌법도 나오게 됐다”며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처벌 하한 규정이 있어서 유의미하지만, 경영책임자를 대상으로 하며 현장 책임자까지 책임을 묻는 산안법이 잘 적용되는 것도 앞으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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