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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찍 오라고 했지? 엄마가 젤 늦게 왔어!” 꼴찌만은 면하겠다 약속하고 나름 서둘러 딸의 하원을 시키러 유치원에 도착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유치원 신발장엔 우리 딸 신발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엄마가 진짜 빨리 오려고 했는데 일이 빨리 안 끝났어, 미안해. 이해해 줄 수 있어?” 잠시 뾰로통해 있었지만, 딸은 금세 괜찮다고 해준다.
사실 좀 더 빨리 갈 수도 있었다. 매일 아침 ‘오늘은 일찍 하원시키고 많이 놀아줘야지’ 다짐도 한다. 혼자 연습하거나 음악 작업을 하거나 공모사업에 지원할 서류를 작성하거나 내가 예술활동을 이어가기 위한 일들은 한창 공연이 많은 하반기 시즌을 제외하고는 시간을 강제하진 않는다. 하지만 아침에 등원을 시켜놓고 집을 대충 정리하고, 연습실 또는 카페로 이동해 일을 시작하면 바로 집중이 되질 않아 빈둥거리기 십상이다.
해야 할 일이 코앞에 닥쳐 있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스스로 찾아 기획하고 만들어 내는 일이다 보니, 겨우 집중하다 보면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하원시간이 가까워져 가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시계를 힐끔거리며 키보드나 악기를 두드리다 하원시간이 임박해 허겁지겁 뛰쳐나가기 일쑤다. 어떤 날은 아무 성과가 없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더 일찍 하원 시킬 걸 후회와 죄책감이 밀려온다. 내 인생은 지금까지 3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생 2막은 젬베라는 악기에 빠지게 되고부터고, 3막은 딸을 낳아 엄마가 된 후 시작됐다.
2막 인생을 살기 전, 클래식 타악기 연주자로 활동하고, 결혼도 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인내하며 성실히 살아가던 내가 어쩌다 젬베와 아프리카에 빠져 인생 2막에 들어섰는지 차차 이야기하겠다. 어쨌든 딸을 낳고 나서는 누군가의 인생을 보살피고 책임져야 하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나의 적성에 맞지 않은 엄마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인생 3막이 열렸다.
다행히 2막의 삶에서 얻은 것들이 큰 자산이 되었다. 물론 1막의 삶 또한 베이스를 잘 깔아주었다. 지금은 그 자산을 가지고 다시 정착하려 고군분투 중이다. ‘원따나라’라는 영남지역 첫 아프리칸 타악그룹을 만들어 예술단체로 키웠다. 비주류 중의 비주류 장르를 알리고 다양한 가능성을 주장하며 ‘내가 그만두면 대구에서 이 씬은 사라지는 것이다’라는 아까움과 거만한 책임감도 아직 갖고 있다. 아프리카씬의 대한민국 1호 엄마 젬베 연주자로서, 지역의 여성청년 예술가로서 좋은 선례가 될 거라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셀프 사명감으로 무장한다.
다행히 너무 밝은 올해 6살 딸은 ‘우리 엄마는 젬베 치는 사람이야’, ‘우리엄마는 원따나라 선생님이야’라며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친화력 갑에 씩씩하고 독립적인 아이지만 가끔 그 모습도 ‘바쁜 엄마로 인한 생존 방법 훈련이 된 것이 아닐까’ 짠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지면을 통해 젬베와 아프리카를 기반으로 한 예술 활동을 업으로 삼으며 삶과 예술은 함께 병행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과 긍정을 담은 이야기를 풀어 내보고자 한다. 여전히 생소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젬베를 포함해 서아프리카 만뎅타악과 문화, 타 문화예술을 공부하고 업으로 삼는 한국인의 마음가짐과 나의 예술활동, 아프리카를 대하는 우리의 뿌리 깊은 선입견, 여행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 이야기, 거기에 더불어 지극히 평범한 삶의 이야기, 워킹맘으로서 고민을 버무려 보고자 한다. 인생은 변화무쌍하고 알 수 없으니 이것이 또 무슨 계기가 되려나 기대해 보며…
이보람 burst84@naver.com
‘공연예술가. 상세히는 서아프리카 공연단체인 원따나라의 대표이자 예술감독으로, 또한 타악기 연주자로 공연과 창작활동을 하고 있고, 젬베라는 악기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사명감으로 교육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올해 6살인 에너지 끝판왕 딸을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