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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현재까지 이뤄진 대통령 특별사면 횟수다. 74년 동안 103회, 한 해에 1.4회꼴로 아무런 견제 없이 대통령의 ‘결단’만으로 형사처벌 받은 범죄자들이 그 책임을 벗었다. <뉴스민>은 견제 없는 대통령 사면권 행사가 우리 사회를 더 민주적 사회로 가느냐 아니냐의 ‘갈림길’ 위에 서게 한다고 판단했다. 갈림길 위에서, 더 나은 사면권, 더 민주적인 사회로 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사면, 갈림길] ① “대통령 사면권한이요? 글쎄요···어렵네요”
[사면, 갈림길] ② 74년 동안 103회, 특사의 역사
[사면, 갈림길] ③ 김우중은 세 번 했지만 이건희는 두 번만
[사면, 갈림길] ④ 기준 없이 ‘관행’ 따르는 특사? 사면회의록 분석해보니···.
[사면, 갈림길] ⑤ 법조계 중심 사면심사위원회 다양성 확보 관건
[사면, 갈림길] ⑥ 더 나은 특별사면 가능할까?
“(사면 심사할 때) 앞뒷면 8, 9포인트로 인쇄된 자료가 거의 10cm 가까운 두께로 제공돼요. 앞장엔 ‘주요 인물’들이 있고, 뒷장에 ‘일상적인’ 범죄별로 분류된 리스트가 있는데, 뒷부분은 거의 볼 시간도 없어요. 위원회가 정부에서 민주적 절차를 위해 만들어놓은 형식적 절차이지만, 특정 정치인이나 재벌 외에 시민의 일상생활 관련 사면은 시간상 논의가 불가능해요.”
김혜순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2012년부터 4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사면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김 교수가 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2차례 특별사면이 실시됐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김 교수는 일관되게 사회적 약자를 통합하고 포용하는 입장을 견지하며 사면 심사에 임했다.
그는 “제가 꼭 개인적으로 이러저러하게 말해야겠다고 한 것도 있었지만, 제 의견이 잘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경우엔 내가 어떤 직능 대표로 들어왔는지, 그것에 맞춘 발언을 해야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며 “제 기본적 성향이 사회학 전공, 시민단체 활동처럼 사회적 소수자에 관심이 있고, 그 관점에서 발언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심사한 두 차례 특별사면 회의록을 보면 김 교수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되어 드러난다. 두 차례 특별사면 중 2013년 1월 특별사면 심사가 특히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 두 사람을 2013년 1월 특사 대상에 포함했다. 천신일 세중 회장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다.
회의록을 보면 김 교수는 “부정부패나 비리와 관련된 것은 전 정권은 모르지만 현 정권에서 한 것은 아무리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하더라도 좀 더 투명한 사회를 위해 자제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반복적으로 대통령 측근의 사면을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사면은 이뤄졌다. 확정판결 약 두 달 만에 그들은 자유의 몸이 됐다. 사면심사위원회가 다양한 시민의 뜻을 반영하는 방향이 아니라 이른바 ‘주최 측’ 의사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구성된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회의록을 보면 이점은 뚜렷하게 확인된다. 김 교수를 포함해 2명만 일관되게 천신일, 최시중 두 사람 모두의 사면을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다른 사면위원들은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점을 우려하면서도 ‘고령’, ‘건강’, ‘사회공헌(천신일)’ 등을 이유로 찬성 뜻을 밝혔다. 법무부가 이들을 사면 대상으로 상신하면서 설명한 이유와 동일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웃픈’ 사실도 확인된다. 당시 회의에는 법무부 측 위원이 4명, 민간위원이 4명 참석했다. 이들 8명 중 위원장을 맡은 법무부 장관을 제외한 7명이 표결을 진행했다. 길태기 당시 법무부 차관, 국민수 당시 검찰국장은 법무부 입장대로 ‘고령’, ‘건강’ 등의 이유로 찬성 입장을 밝혔다. 민간위원 중 김일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도 마찬가지다.
눈여겨볼 사람은 오세인 당시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의 입장 변화다. 그는 애초 당시 논의되던 중수부 폐지 문제와 결부해서 검찰 내 부정적 기류를 언급하면서 표결에 기권했다. 하지만 민간위원 중 또 다른 1명이 범죄 행위 시점을 사면 찬반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상황이 꼬이게 된다.
홍철 위원(전 인천대 총장)은 “이 정부에 들어와서 권력형 비리가 일어났느냐 그 전이냐를 기준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고 그 기준에 따르면 최시중 위원장은 찬성이지만 천신일 회장은 반대였다. 홍 위원의 결정으로 오 부장이 기권하면 천 회장 사면은 찬성 의결이 어려워졌다. 오 부장은 천 회장에 대해서만 찬성 의견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중수부 폐지 문제와 관련해서 말씀드렸는데, 이 사건(천신일)은 중앙지검 특수1부에서 수사했던 사건이다. 저는 중수부 폐지가 논의되는 시점에 중수부에서 수사한 사건에 대해 사면 당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는 것이었는데, 천신일 씨 사건은 중앙지검에서 수사한 사건이고 하니 이건 그냥 적정 의견으로 처리해 주셔도 될 것 같다”
이 사례는 사면심사위원회의 전형적인 문제점을 보여준다. 사면심사위가 ‘국민 뜻’보다 ‘대통령 뜻’에 따르고, 법조계 중심으로 구성되어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는 문제점 말이다.
당시 위원회 구성을 보면 법무부·검찰 4명에 더해서 민간위원 중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김일수 위원까지 5명이 법조계 인사였다. 김 위원은 학계 인사로 분류되지만 사법시험을 합격했고,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형사정책에 대한 국가연구기관으로 엄밀하게 보면 준법조계 인사다.
역대 사면심사위원 면면을 살펴봐도 법조계 쏠림은 뚜렷하다. 역대 민간사면심사위원 25명(연임 포함 연인원 35명)을 영역별로 구분하면 학계 15명, 법조계 6명, 관계 2명, 의료계 1명, 시민사회계 1명이다. 학계가 15명(60%)으로 많아 보인다. 하지만 15명 중 9명은 로스쿨 교수 등 법학자다.
임기가 2년이지만 연임해서 4년 동안 수행한 이도 법학자 등 법조계 쏠림이 크다. 연임한 이는 10명인데 그중 2명이 판·검사 출신이고, 6명은 법학자다. 당연직으로 포함되는 법무부·검찰 위원을 포함하면 매번 절대다수가 (준)법조계로 구성되는 셈이다. 김 교수처럼 법과 관련 없는 영역에서 다른 의견을 전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다양성 부재는 영역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성별 구성도 25명 중 18명(72%)이 남성이고, 연령도 50대 이상이 절대다수다. 위원으로 선임된 해를 기준으로 위원들의 평균 연령은 59.2세다.
법조계 중심 사면심사위원회
다양한 의견 개진 되지 않고
‘대통령 뜻’ 따르는 ‘거수기’ 돼
그 때문인지 이들은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다룰 때도 많은 경우 ‘대통령 뜻’을 따르는 발언을 하며 ‘거수기’ 역할에 머문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등을 사면했던 2008년 광복절 특사 회의록을 보면 이런 대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역대 회의록 파일 받기=https://url.kr/tcwov5)
권영건 위원(전 안동대 총장)은 재벌 그룹 총수 사면에 대한 우려를 전한 뒤 “다만 대통령이 갖는 헌법상 고유권한인 사면권의 본질에 비추어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을 존중할 필요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사면에 찬성했다.
곽배희 위원(이화여대 법학과 겸임교수)도 “일부 대상자에 대해 사면심사위의 의견을 부기해달라”고 하면서도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통치권 차원의 결단인 점을 고려하여 법무부에서 마련한 원안에 찬성한다”고 전했다.
2009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단독 사면 때도 마찬가지다. 권영건 위원은 “좀 아쉽고 개운하지 않다”는 뒷말을 남기긴 했지만 “검찰, 법무부, 청와대까지 상당히 고민을 했을거고, 국민 정서가 불리하든 불리한 점이 없든 간에 충분히 다 살폈을 것으로 보고 재론하기 그렇다”며 찬성했다.
다른 위원들 중에서도 법무부 측 당연직 위원들은 흔쾌히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간위원 중에선 유창종 위원(전 서울중앙지검장)은 “삼성은 우리나라 축구선수 주전멤버와 마찬가지다. 빨리 주전선수로 뛸 수 있도록 풀어주는 것이 옳다”고 흔쾌히 찬성했고 다른 위원들은 ‘개운하지 않다’는 뒷말을 남겼지만 끝내는 반대하지 않았다. 대신 이건희 단독 사면이 ‘특혜’가 아니라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이라는 명분을 만드는데 골몰했다.
서청원 전 국회의원이나 노건평 씨,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등을 사면한 2010년 광복절 특사 때도 유사한 발언이 쏟아졌다. 권영건 위원은 “우리는 나무를 보는 것이고 통치를 하는 분은 숲을 보고 하는 것인데 나무를 보는 식견으로 거부했을 때 그게 바람직한 것이냐 하는 혼란도 있다”고 했고, 오영근 위원(한양대 로스쿨 교수)은 “사면권자께서 어느 정도 부담을 갖고 사면을 하시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찬성했다.
홍철 위원은 “사면이 국민화합 차원에서 대통령께서 하는 통치행위라면 우리 위원들이 의견을 내더라도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불특정 다수가 잠재적 대상으로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불만이 없도록 제도적 차원에서 개선, 발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위원회, 인문사회계에 개방해야”
“사면 후 통제 장치도 필요해”
“국민이 사면제도에 관심 가져야”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대통령 특별사면을 제어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사면심사위원회의 존립 이유가 무색해지는 발언들이다. 전문가들은 심사위의 다양성 확보와 더불어 사후적인 평가 구조, 국민적 감시를 통해 이를 교정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김혜순 교수는 “대통령의 사면권은 법질서에 융통성을 부여하는 것이고 국민의 일상 복리 증진과 사회질서 유지, 외교·안보 등 대통령의 권한에 부응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것이 과연 법질서만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위원회 구성도 마찬가지다. 법조계 중심에서 탈피해서 인문사회계에 보다 개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위원회는 어떤 계층의 어떤 범죄가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야 하느냐의 문제, 즉 동시대의 해외 사례, 역사 인식, 사회·정치·경제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는 곳”이라며 “제도 정비 후에도 특권층을 사면대상자로 추천한다면 사면심사위원들의 책임이고, 위원회가 거부한 대상을 대통령이 사면한다면 대통령의 책임이다. 위원회가 대통령의 책임을 덜어주거나 책임을 넘기는 역할에 끝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위원은 “사면위원회도 왜곡될 수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다시 한번 정도 규범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사면권 행사라는 통치행위는 인정하되 절차의 위반이 있을 때는 절차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후 통제 장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승 연구위원은 “사면위원이 제일 무서워하는 건 국민”이라며 “사면위원의 마음이 대통령에게 향하지 않고 일반 국민의 시선으로 향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국민이 사면제도에 관심을 가지는 거다. 사면위원이 대통령 의지에 천착을 할 것이냐,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냐는 사실 국민들의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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