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d by Amazon Polly

103.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현재까지 이뤄진 대통령 특별사면 횟수다. 74년 동안 103회, 한 해에 1.4회꼴로 아무런 견제 없이 대통령의 ‘결단’만으로 형사처벌 받은 범죄자들이 그 책임을 벗었다. <뉴스민>은 견제 없는 대통령 사면권 행사가 우리 사회를 더 민주적 사회로 가느냐 아니냐의 ‘갈림길’ 위에 서게 한다고 판단했다. 갈림길 위에서, 더 나은 사면권, 더 민주적인 사회로 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사면, 갈림길] ① “대통령 사면권한이요? 글쎄요···어렵네요”
[사면, 갈림길] ② 74년 동안 103회, 특사의 역사
[사면, 갈림길] ③ 김우중은 세 번 했지만 이건희는 두 번만
[사면, 갈림길] ④ 기준 없이 ‘관행’ 따르는 특사? 사면회의록 분석해보니···.
[사면, 갈림길] ⑤ 법조계 중심 사면심사위원회 다양성 확보 관건
[사면, 갈림길] ⑥ 더 나은 특별사면 가능할까?

581. 노태우 정부 이후 특별사면된 정치·경제·사회 주요 인물 수(중복 포함 연인원)다. 특별사면 대상자 면면은 그때, 그때 공개 기준이 다르다. 과거에는 사면 대상자 전원의 이름이 신문지상에 공개되기도 했지만 최근으로 올수록 비공개가 기본이 되고 있다. 개인 사생활 보호 인식이 높아진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논쟁적인 인물을 숨기고자 하는 이유도 없지 않다. 때문에 공익적으로 가치 있는 인물의 사면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일은 언론이 작심하고 축적하지 않으면 관리되지 않는다.

다행히 때마다 개별 언론이 그간의 주요 특사 인물을 정리해왔다. 특히 지난 2016년 SBS는 특별사면 기획 보도를 하면서 형 확정일과 사면일을 특정할 수 있는 주요 인물 556명을 데이터화 해서 공개했다. <뉴스민>은 SBS 보도에 더해서 2016년 이후 이뤄진 특사 주요 인물과 이전의 인물 중 SBS 자료에서 누락된 인물 등 25명의 정보를 더해 정리했다. 특별사면 제도가 현행대로 유지된다면 후일 또 다른 언론이 누적된 데이터와 새로운 정보를 취합해 더 나은 보도로 나아가길 바란다. (공유 파일 받기=https://url.kr/tcwov5)

주요 인물 581명 면면 보면
정치인 237명, 경제인 204명
이명박 정부 시절 가장 많아
노무현, 불법 대선 자금 사면 후
사면권 개혁 논의 불 지펴

581명은 영역별로 정치인 237명(40.8%), 경제인 204명(35.1%), 고위공직자 128명(22%), 대통령 친인척 12명(2.1%) 순이다. 정부별로는 노태우 정부 21명(3.6%), 김영삼 정부 82명(14.1%), 김대중 정부 63명(10.8%), 노무현 정부 133명(22.9%), 이명박 정부 260명(44.8%), 박근혜 정부 4명(0.7%), 문재인 정부 18명(3.1%)이다.

정부별 인원 차이는 실제로 해당 정부에서 주요 인물 특별사면을 많이 했을 가능성을 시사하지만 다른 정부에서 명단 공개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개 기준이 매번 달랐기 때문이다. 경제인 공개 기준이 특히 들쑥날쑥해서 재벌·대기업 관계자만 공개하기도 하고, 중견·중소기업 관계자를 포함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260명 중 100명(38.5%)은 경제인이었다. 역대 주요 경제인 사면 204명 중 약 절반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경제인 사면은 2009년 연말에 이뤄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단독 사면이다.

당시 사면심사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이 전 회장 사면 이유는 평창 올림픽 유치라는 ‘국가적 중대사’ 때문이다. 최교일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은 “정부 들어 네 번째 사면이고 사면권이 남용되어선 안 된다는 여론이 많은 편”이라면서도 “국익 차원에서 명목과 실리, 실용을 중시하는 현 정부에서 여러 사정상 이건희 회장이 자격을 잃으면 우리나라 IOC 위원이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 국장을 포함한 법무부 측 당연직 위원들은 ‘국익’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사면이 적절하다고 판단했고, 민간위원 4명 중에도 적극적인 반대론자는 없었다. 그 결과 사회적 논란과 별개로 위원회는 큰 논란 없이 50분 만에 이건희 단독 사면을 적정 의견으로 의결했다.

2008년 광복절 특사를 통해선 경제인 74명을 특별사면했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 경제회생 등을 명분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을 사면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언론사주나 경영진도 이때 사면됐다.

▲’비지니스 프렌들리’ 정부로 불렸던 이명박 정부 시절 사면된 경제인이 가장 많다. 사진은 2010년 1월 투자 및 고용확대를 위한 30대그룹 간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경제인들. (사진=e영상역사관)

다음으로 주요 인물 특사가 많았던 노무현 정부 시절엔 경제인이 62명(46.6%)으로 비중이 가장 컸다. 다음은 정치인 40명(30.1%), 고위공직자 27명(20.3%), 대통령 친인척 4명(3%) 순이다. 경제인 사면 비중이 컸던 이유는 2002년 대선 불법 자금 문제에 연루되었던 경제인 다수가 이때 사면됐기 때문이다.

2005년 5월 15일 노무현 정부는 노 대통령의 ‘영원한 후원회장’으로 불리는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포함해 이른바 ‘차떼기’ 정치 자금 논란을 불렀던 불법정치 자금 연루 경제인 12명을 사면했다. 이를 계기로 대통령 사면권에 대한 전반적인 개혁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실제로 국회 의안 정보를 살펴보면 사면법 개정안은 민주화 이후 현재까지 46차례 발의됐는데, 노무현 정부 이전 발의는 2건에 그쳤다. 노무현 정부에서 10건이 발의됐는데 이 중 9건이 2005년 5월 특사 이후에 발의됐다. 이때부터 시작된 논의가 2007년 11월 사면심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64명은 2회 이상 특사, 김우중 등 9명은 3회
김우중·최원석, 3차례 모두 다른 범죄사면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은 형 확정 후 5일 만에
100일 안 사면자 54명 중 30명은 경제인

주요 특사 대상자 중 64명은 2회 이상 사면을 받는 ‘행운’을 누렸다. 64명 중 권노갑 전 국회의원, 권영해 전 안기부장, 권해옥 전 대한주택공사 사장, 김용채 전 건설교통부 장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 씨, 서청원 전 국회의원, 이학부 전 민정수석,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등 9명은 3차례 사면을 받았다.

▲1999년 08월 청와대에서 열린 정·재계 간담회 현장에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제일 왼쪽)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제일 오른쪽). 김 전 회장은 역대 정부에서 3차례 사면을 받았다. (사진=e영상역사관)

3회 사면을 받은 9명 중 7명은 동일 범죄에 대해 감형, 잔형면제, 복권 등 순차적인 혜택을 누렸지만, 김우중 전 회장과 최원석 전 회장은 서로 다른 3건의 범죄 혐의에 대해 죄업을 탕감받았다. 김 전 회장과 최 전 회장은 특사를 받은 시기도 3회 중 2회가 동일하고, 처벌받은 범죄도 동일하다.

김 전 회장은 1995년 광복절 특사, 1997년 개천절 특사, 2008년 신년 특사를 받았다. 최 전 회장은 95, 97년엔 김 전 회장과 동일하게, 08년엔 김 전 회장보다 조금 늦은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이들은 함께 95년 원전 뇌물 비리 사건에 대한 형사처벌을 면죄 받았고, 97년에는 노태우 비자금 사건에 대한 형사처벌을 면죄 받았다. 08년에는 각각 기업 분식회계에 연루된 처벌을 면죄 받았다.

형 확정 후 사면까지 걸린 기간도 살펴보면 10명은 형 확정 후 열흘 내에 ‘초고속’ 사면을 받았다. 말 그대로 ‘판결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사면을 받은 셈이다. 가장 빠르게 사면 된 이는 신건,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다. 이들이 형 확정 후 사면에 이르게 된 기간은 단 5일이다.

이들은 2002년 대선 중 불거진 국정원 도청사건으로 2007년 12월 20일 항소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동일하게 27일 상고를 했는데, 다시 같은 날 상고를 취하해 형이 확정됐다. 닷새 뒤 2008년 1월 1일 신년 특사에 포함됐다. 10일 안에 사면된 10명 중 5명이 이들 둘 처럼 고위공직자였다. 경제인도 4명 있는데, 이들 중 1명은 김우중 전 회장이다. 그는 3차례 사면 중 첫 사면을 형 확정 후 7일 만에 받았다.

이들 10명을 포함해 100일 내에 사면받은 이는 54명인데, 사면까지 이른 평균 기간은 51.4일이다. 54명 중 경제인이 30명(55.6%)으로 가장 많고, 고위공직자 15명, 정치인 9명, 대통령 친인척 1명 순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만 25명이 100일 안에 사면됐는데, 이들 중 19명이 경제인이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