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사회를 위한 대구경북 민주시민상 선정위원회가 2021년 제6회 민주시민상 수상자로 ‘10월항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10월항쟁유족회)’를 선정했다. 선정위원회는 10월항쟁유족회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빨갱이’ 가족으로 탄압을 받았음에도 조례 제정,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진상규명, 위령탑 건립 등의 활동을 벌여온 점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대구경북 민주시민상 선정위원회는 20일 대구 남구 대명동에 위치한 우리복지시민연합에서 10월항쟁유족회에 상패와 상금 1,000만 원을 전달했다. 선정위는 “평화와 자주, 민생을 향해 나아감에 있어 10월 항쟁의 가치는 세계사적으로 재인식되어야 하며, 이 길을 우리 대구경북이 선도하기를 바란다”며 선정이유를 밝혔다.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은 “오늘 수상을 계기로 10월항쟁이 많이 알려져서 그 시절 가장 용기있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달라”며 “10월항쟁을 기억하고 선정해주어서 고맙다. 자랑스러운 10월, 대구의 역사를 바로 세웠으면 좋겠다. 10월항쟁이 폭력, 사건이 아닌 항쟁으로서 역사에 바로 정립될 수 있도록 미미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16년 제정한 대구경북 민주시민상은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1회), 우리복지시민연합(2회), 대구환경운동연합(3회), 박문진·송영숙 영남대의료원 해고자(4회), 성서이주노동자 무료진료소(5회)가 수상한 바 있다.
10월항쟁은?
10월항쟁은 대구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퍼져나간 해방 이후 최초의 민중항쟁이다. 1946년 9월 24일 대구에서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의 총파업에 동참한 노동자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9월 30일 미군정의 식량 정책에 항의하는 시민 400여 명이 쌀을 요구하는 시위도 벌어졌다. 10월 1일 경찰 발포로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미군정의 식량 정책과 친일 경찰 중용 문제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에 나왔다.
2일부터는 시민 2만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면서 경찰과 충돌이 일어났다. 미군정은 계엄령 선포로 맞섰다. 130여 명이 목숨을 잃고, 260여 명이 다쳤다. 수천 명이 ‘폭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검거됐다. 대구의 봉기는 이후 경북 지역을 시작으로 남한 전역으로 번져 그해 12월까지 시위가 지속됐다.
한국전쟁 전후 10월항쟁 참가를 이유로 희생이 이어졌다. 1950년 7월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던 10월항쟁 참가자들은 다른 재소자들과 함께 가창골, 경산 코발트 광산 등지에서 적법절차 없이 처형됐다. 경찰의 집단 처형 인원은 1,438명으로 추산된다. 좌익에 있다가 전향한 사람을 가입시켜 정부가 만든 국민보도연맹원을 적법절차 없이 처형한 사건도 벌어졌다. 확인된 희생자 숫자만 4,934명, 대구는 99명이다. 학자들에 따라 의견이 다르지만, 최소한 10만여 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폭동에서 항쟁으로 60년
대구시 조례 제정과 위령탑 건립까지
10월항쟁은 그동안 ‘좌익폭동’으로 규정돼 60여 년 동안 묻혀있었다. 1960년 4.19혁명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유족이 함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경북·대구유족회’를 결성하고, 진상규명과 조사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1년 후 일어난 5.16 군사반란으로 유족들이 구속되면서 유족회는 강제해산됐다. 1987년 민주화와 함께 10월항쟁을 폭동이 아닌 항쟁으로 조명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왔고,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제정으로 진실규명의 물꼬가 트였다.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가 10월 대구사건과 대구보도연맹 관련 사건이 공권력에 의한 희생이었다는 진상규명 결과를 결정했고, 10월항쟁유족회가 결성됐다. 때마침 2010년 3월 ‘진실화해위원회’가 국가 책임을 인정한 뒤 정부 쪽에 사과와 위령 사업 지원을 권고하면서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다.
대구시의회도 2016년 7월 26일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대구시도 예산 8억5천 원을 들여 2018년부터 위령탑 건립 사업을 시작했다.
위령탑에는 유족이 확인된 희생자 명단 57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명단에는 독립운동가 채충식 선생의 자녀이자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의 아버지 채병기 선생,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으로 1946년 당시 경북 선산군 인민위원회 활동을 했던 독립운동가 박상희 선생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위령탑 옆 건립취지문에는 “한국전쟁 전후 정치·사회적 혼란속에 많은 민간인이 무고하게 희생되었고, 그중에서도 가창 골짜기는 1946년 대구 10월항쟁 직후부터 1950년 한국전쟁시기까지 많은 민간인이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억울하게 희생된 곳입니다…(중략)…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추모의 장이 되고 나아가 국민의 인권이 존중되는 참다운 역사 발전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대구시장과 10월항쟁유족회 명의로 기록됐다.
여종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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