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시내서 보자!” 이렇게 약속한 대구 시민은 보통 오후 7시 대구시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모인다.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광장’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은 ‘동성로 야외무대’다. 다양한 공연·놀이가 열리며, 때로는 시민들이 정치적 요구를 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중구청은 최근 이 무대 사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심의위원회를 만들었다. “상권 보호, 공정하고 바른 사용”을 할 수 있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자유를 위축하고 광장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거 이 광장은 어떤 곳이었을까? 그리고 무대 심의 절차를 통한 사실상 ‘허가제’ 운영은 불가피할까?
18세기 말 이 광장은 동문시장(신장新場이라고도 불림)이었다. 정조 15년(1791년) 남문 밖 시장을 이곳에 한데 모아 옮기며 상권이 형성됐고, 규모는 서문시장 절반 정도가 됐다.
1919년(추정) 달성군청이 이 광장으로 옮겨 들어섰다. 1919년은 대구에서도 3·1운동으로 달아올랐다. 3월 8일 3·1운동에 나선 민중은 서문시장에서 출발해 대구경찰서→종로→동성로에 들어와 동문시장으로 모였고, 여기서 헌병과 군인들에게 진압당했다. (참고기사:일제강점기 달성군청은 어디 있었을까)
1919년 말, 동문시장 자리에 달성군청이 들어왔다.(달성군청 이전 시기는 논란이 있다. 3월 8일 3·1운동 당시 이미 이전돼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때부터 민중은 군청 앞을 ‘광장’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이후 일제강점기가 지나고 1969년 대구백화점이 지금 위치로 이전한다. 교동 입구에 있던 대구백화점은 이전하며 당시 대구에서 가장 높은 10층 건물로 신축했다. 조금 앞선 1966년 한일극장이 영화상영관으로 재개관했다. 지역 상권은 한일극장~대구백화점~공평동~중앙파출소로 뻗쳐나갔고, 대구 최고 상권이 된 이곳은 지속적으로 번영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광장에서 큰 규모의 집회가 열리기 시작한다. 특히, 87년 6월항쟁 당시 쏟아져 나온 민중은 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1970년대 말까지는 대구역 앞 광장이 있었으나, 80년대 들어 이 공간이 축소되며 6월항쟁 당시에는 대구백화점 앞 광장이 주요 집회장이 됐다고 김찬수 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상임이사는 말한다.
“6월항쟁의 중심지는 서울로 치면 명동성당입니다. 광주는 5.18의 장소로 도청 앞 광장을 꼽습니다. 대구의 중심지는 이곳 대백 앞 광장입니다. 이때부터 ‘민주광장’이 되지요. 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이곳에 공원이 조성됐습니다. 시위 공간을 없애기 위해서일 겁니다. 96년도에는 노동법 개악 총파업도 있었고, 이후로 집회가 많이 열렸던 때라 이곳에 모이기 어렵게 가로수고 벚나무 등을 심었지요. 분수대도 만들었어요. 시민들이 항의하자 중구청은 이곳에 ‘민주광장’이라는 표석을 세웠습니다. 이후 동성로 정비사업을 하며 개천도 설치되고 무대도 만들어져 지금의 모양대로 됐지요” (김찬수)
2007년 중구청(청장 윤순영)은 이 광장을 포함해 동성로 일대를 정비하는 ‘동성로 공공디자인 개선사업’을 시작한다. 문체부에 따르면 약 62억 원을 썼다. 2010년 말까지 동성로 일대 노점상 160개소가 철거됐고, 이 사업으로 지금의 ‘야외무대’도 생겼다.
야외무대가 생기며, 무대 운영을 맡은 중구청은 지역상인·무대를 이용하려는 시민의 민원과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까지 맡게 됐다. 이때부터 야외무대 사용을 둔 논쟁이 시작됐다.
2009년, 중구청은 야외무대를 ‘문화·예술 공연시설’로 규정하는 훈령을 입법예고 한다. 7월 제정한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 야외무대 관리·운영 규정’에는 야외무대가 “문화·예술 공연 등 공익시설로서 기능을 유지하도록 관리·운영하여야 한다”고 나와 있다. 또한, 영리행위 등 공익 목적에 위배될 때나 공공질서 유지와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 대해 구청장이 무대 사용을 제한할 수 있게 돼 있다.
당시에도 인권운동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는 “예술 무대로 사용용도를 제한하고 집회, 결사의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방침은 광장의 기능을 폐쇄하는 발상이고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정신에도 위배 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이 훈령은 유지됐다. 야외무대가 들어서며 각종 집회나 행사가 열렸고, 무대 운영권이 있는 중구청에 인근 상인의 민원도 증가했다. 그러면서 훈령을 두고 “시민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지적도 받기 시작했다.
갈등은 2015년 대구퀴어문화축제에 이르러 정점에 달했다. 매년 1회 열리는 이 축제는 2014년부터 기독교 단체와 충돌이 생겼고, 2015년 기독교 단체는 대구시장, 중구청장 등에 장소 대여 불허를 요구했다. 지역 상인회도 중구청에 장소 대여 불허를 요청했다. 2015년 6월 중구청은 “메르스가 유행하는 시점에서 상인 불만 감당이 어렵다”며 무대 사용을 불허했다. 중구청은 2014년 기독교 단체에 퀴어축제 반대 집회에는 무대 사용을 허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관련기사:대구중구청장, ‘퀴어축제’ 공간대여 불허, 작년 ‘반대예배’엔 허가)
이후 중구청은 훈령을 개정해 장소 대여 여부를 심의하는 ‘야외무대운영심의위원회’를 만들었다. 2015년 12월 시행된 훈령 ‘대구광역시중구동성로 야외무대 관리운영 규정 전부개정안’에 따르면, 동성로 야외무대 포함 김광석 길 야외콘서트홀 등 중구 야외무대는 사용신청이 들어오면 심의위원회가 사용 가능 여부를 심의한다.
현재 심의위원은 7명이다. 중구청 문화진흥과장이 당연직, 그 외 중구의회(1), 시민단체(1), 상인회(2), 문화예술단체(1), 학계(1)가 위촉돼 활동 중이다. 심의위원회 구성 이후 현재까지 회의가 개최된 적은 없다.
심의위원인 한상훈 대구민예총 사무처장은 “광장과 무대 사용이 선진화될수록 규정도 있는 편이다. 장소의 의미에 따라 ‘심의’가 문제가 될 수도, 좋을 수도 있다”라며 “만약 ‘명물거리’의 의미만 놓고 보면 상인과 문화 행사를 위해 중구청이 조정할 필요도 있지만, 이전부터 ‘광장’으로 사용된 맥락을 보면 시민의 자유를 규제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인권운동연대 등 시민단체는 심의위원회 구성을 비판했고, 중구청과 면담을 요청할 계획이다.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활동가는 “집회 시위의 자유는 민주사회에서 시민의 가장 기본적 권리다. 심의위라는 이름으로 심의한다는 것 자체가 기본적 권리 보장이라기보다 중구청의 잣대로 통제하는 것”이라며 “집회는 기본 원칙이 신고제인데 실질적으로 허가제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구청으로서는 상인들의 입장도 조율해야겠지만, 심의위원회는 중구청의 책임을 회피하는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 구성 자체를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중구청은 심의위원회가 “무대를 사용하는 행사가 공익·사익 구분이 어려운 경우 객관적 판단을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박종탁 중구청 문화진흥과장은 “이전까지 구청만 무대 사용여부를 판단했는데 공정성 문제가 있었다. 순수 문화예술공연은 신청하면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동성로 야외무대 인근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보행자 전용도로라 보행자가 최우선으로?돼야 한다. 시민 안전이 가장 중요한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조정·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