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성서산단서 퇴직금 요구한 이주노동자 폭행 의혹

이주노동자, "사장이 폭행하고 불법체류 신고"
사업주, "폭행이나 억압 절대 없어···퇴직금 합의하고 일 시작"

16:54

퇴직금을 요구하는 이주노동자를 사업주가 폭행해 퇴직금 포기를 강요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구 성서산단에서 일하던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A 씨는 사업주 등 3명을 공동폭행 혐의 등으로 고소했고, 사업주는 폭행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스리랑카에서 고용허가제를 통해 2014년 국내에 입국한 A(33) 씨는 대구 성서산업단지 한 제조업체에서 7년 간 일했다. A 씨는 지난 16일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연행됐다가 출국명령서를 받고 풀려났다. 일하던 공장의 사업주 B(41) 씨가 미등록 상태의 A 씨를 신고했기 때문이다.

당일 B 씨가 A 씨를 찾아와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과정은 서로 설명이 대체로 일치하지만, 폭행 여부에서는 주장이 엇갈린다. A 씨는 16일 오전, 퇴근 후 달서구 호산동의 거처에 갔는데 B 씨 등 3명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당시 폭행과 퇴직금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합의서 작성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한다.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A 씨가 일하던 성서산업단지 한 제조업 공장

A 씨에 따르면, B 씨는 당시 호산동 A 씨 거처에 들어온 다음 휴대전화를 빼앗고, 목덜미를 밀어 무릎을 꿇렸다. B 씨가 종이를 내밀며 사인을 요구하자 A 씨는 거부했으나 B 씨 일행이 억지로 지장을 찍게 했다. 또한, 허벅지를 발로 차는 등 폭행을 가했다. 이후 거처에서 성서산단 공장으로 이동했고, B 씨는 공장 내 사무실에서 A 씨의 얼굴을 때리고 몽둥이로 엉덩이도 때렸다. 그런 다음 B 씨가 경찰에 신고했다.

반면 B 씨는 공장 사정이 어려워 노동청 신고 철회를 부탁하려 A 씨를 찾아갔지만, A 씨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공장 사정이 어려워 퇴직금을 일부만 주기로 사전에 A 씨와 협의 했는데도 A 씨가 퇴직 후 노동청에 체불임금 발생을 신고하자, 이를 취하해달라고 요구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지인과 동행한 이유는 본인의 체구가 왜소해 걱정됐기 때문이고, 인주가 없어 공장에서 합의서 도장을 찍기 위해 함께 이동했을 뿐 폭행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B 씨는 합의서 작성 후 A 씨가 오히려 자신을 위협해서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19일 오전 10시 30분 A 씨는 이주노동자인권노동권실현을위한대구경북지역연대회의와 함께 성서경찰서 앞에서 B 씨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후 이들은 성서경찰서에 B 씨 등 3명을 공동폭행, 공동주거침입, 공동협박, 공동강요, 공동감금, 공동상해 등 혐의로 고소했다. 또한, 오후 3시에는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서부지청에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고발장도 제출했다.

▲ A 씨는 이주노동자인권노동권실현을위한대구경북지역연대회의와 함께 성서경찰서 앞에서 B 씨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A 씨는 “일요일 아침에 야간 끝나고 8시 35분 집에 왔는데 사장님이 집에 들어왔다. ‘목 잡아. XXX야 문 열어’라고 했다. ‘XX야 앉아. 왜 노동부 갔어’라고 말했다”며 “사인하라고 해서 안 된다고 했는데 손잡아서 강제로 했다. 사장님 회사 사무실 방에 가서, 빗자루 나무 잘라서 가져왔고 바지 내리라고 했다. 나는 계속 스리랑카에 보내달라고만 했다. 너희 나라 가서도 죽는다고 했고, 무서워서 잠도 안 오고 밥도 못 먹겠다. 이대로 두면 다른 외국 사람 문제 계속 생긴다. 폭행한 사람들 감옥에 보내 달라”라고 말했다.

이에 B 씨는 “2~3명 같이 일하는 영세자영업자다. 일 시작할 때부터 퇴직금을 줄 수 없다고 해서 이해하고 시작했다. 지금은 부가세나 업체 대금도 지급하지 못해 빚이 3,000만 원을 넘겼고 공장도 팔아넘긴 상황”이라며 “그런 상황이지만 퇴직금 조금이라도 지급하려 노력했다. 전부 지급하지 못한 건 문제지만, 정말 돈이 없어서 1,000만 원 넘는 퇴직금을 지급할 수 없었고, 사정을 하려고 A 씨를 찾아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제조업 하는 사장이 외국인에게 칼에 찔린 적이 있어서, 혼자 가기 무서웠고 친구들과 같이 갔다. 친구들도 공장 다니는 사람들인데, 무슨 위해를 가하나”라며 “합의서를 쓰려고 공장에 왔는데, (A 씨가) 오히려 위협적으로 얘기했고 그 이야기를 듣고 경찰 신고를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김헌주 경북북부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이주노동자는 미등록이 되면 단속반에 단속되어 추방될 위기가 있다. 월급이 밀려도, 부당한 대우가 있어도 대처하지 못한다. 사장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한다”며 “피해자의 집에서 공장 사무실로 데리고 간 다음에 미등록 노동자 신분을 악용해 공권력에 신고했다. 공권력이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A 씨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