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교협 시사 칼럼] 골 때리는 정치를 넘어 뼈 때리는 현실을 보라 / 육주원

20:41

* 주의:본 글에는 영화 <돈룩업>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배우들이 다 한 영화에 나온다고? 초호화 캐스팅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던 영화 <돈룩업 Don’t Look up>이 연말연시 넷플릭스를 흔들어놓았다. <바이스>, <빅쇼트> 등을 통해 미국 정치·경제의 이면과 사회 부조리를 짚어왔던 감독 아담 매케이가 이번에는 우리 눈앞에 닥친 생태위기가 현실 속에서 어떻게 부인되고 왜곡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을 가지고 왔다.

실제 아카데미 시상식서 트럼프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던 메릴 스트립이 트럼프를 연상시키는 미국 대통령 역할을 맡고, 제니퍼 로렌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곧 지구와 충돌할 거대 혜성을 발견한 박사 수료생과 그 지도교수의 역할을 맡았다. 이 둘은 온 인류의 목숨이 걸린 명징한 과학적 사실 앞에서도 사람들의 합리적 대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하며 권력에 영합하기도 하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도 하면서 좌충우돌한다.

영화는 결국 지구가 파멸에 이르는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희극으로 보여주면서 멸망에 공모하고 있는 자들의 얼굴을 드러낸다. 정치와 자본의 결탁, 아니 자본의 하수인으로서의 정치와 그 비루한 생존 방식. ‘상업화된’이라는 수식어가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정도의 선정적 언론. 만인의 만인에 대한 ‘관심 투쟁’이 이루어지는 인터넷 세상 속 파도에 몸을 맡긴 사람들.

미국 사회를 그렸다고는 하지만 한국 사회와도 꽤 그럴싸하게 닮아 있다. 특히 최근 대선 정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 행태는 블랙코미디의 소재로 손색이 없다. 상호비방의 정치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확실히 이제는 선거가 원래 한국 사회의 미래 방향성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의 진부한 얘기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굳건한 양당 구조 속에 ‘진보 대 보수’라는 실제와 명명이 다른 진영론이 한국 사회를 갈라치기 하는 동안, 정작 중요한 우리 삶의 문제는 제대로 된 논의 테이블에 올라오기조차 어렵다.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고군분투하는 정치인들은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고, 정치를 위한 정치, 정치계에서의 수명 연장과 영달을 위한 목표가 전부인 정치인들이 한국 사회를 흔들어댄다.

▲미국 사회를 그렸다고는 하지만 한국 사회와도 꽤 그럴싸하게 닮아 있다. 특히 최근 대선 정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 행태는 블랙코미디의 소재로 손색이 없다.

얼마 전 녹색 페미니스트로 알려져 있던 한 젊은 정치인이 어떻게 뜯어봐도 녹색이나 페미니즘에 맞는 행보를 한 적이 없었던 당에 합류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최근 정치권과 미디어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주조해놓은 젠더 갈등 프레임 속에서 이대남, 이대녀의 마음을 모두 얻겠다며 지리멸렬한 ‘스타’ 영입 전법을 도입해봤지만, 그들 안의 반페미니즘은 생각보다 공고했다. 애초에 얼토당토않은 바람이었겠지만 2030 여성들의 마음을 얻기도 전에 사달이 났다.

특정 남초 커뮤니티의 불같은 반응과 그걸 정치 기반으로 삼고 있는 남성 정치인들에게 페미니스트 전과는 아무래도 용서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아무리 많은 페미니스트의 연말을 처참히 망치고, 풀뿌리에서부터 기후정의를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에게 허탈함을 안긴 인물이더라도 말이다. 젠더 의제 관련 상반되는 의견에 대해 정책적 입장을 내는 것도 아니고, 무분별한 페미니즘 혐오를 경계해야 할 정치인들이 일부 2030 남성들에게 제멋대로 ‘청년’의 대표성을 부여하고 그들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나서서는 잠깐의 실수로 페미니스트를 기용했으나 금방 반성하고 잘랐다며 ‘공정과 상식의 나라’를 말한다. 확실히 이들이 원하는 사회는 모두가 지금보다 더 공정하게 괴로워지는, 즉 혐오가 상식이 되는 세상인가보다.

영화 <돈룩업>은 당장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기 위해 불안과 혐오를 이용하고 분열을 책동하는 정치가 자리 잡은 사회에서는 제대로 된 소통이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보여준다. 영화에 대한 과학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비해 이 영화가 기후위기를 알레고리로 쓰는 방식이 너무 뻔하다는 평단의 반응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대한 건 떠올리지도 못한 채 영화에 대해 놀랍도록 창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한국 정치인들이 이대남 민심 지표로 삼고 있는 펨코에 올라온 한 글에는 이 영화를 인구절벽을 맞은 한국 사회에 대입해서 보면 딱 들어맞는데 그걸 해결한답시고 정치인들이 페미니즘이니 뭐니 장려하는 상황과 똑같아서 너무 답답했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반페미 정치가 시민들의 문해력과 현실 파악 능력을 얼마나 떨어뜨리는지 걱정해야 할 정도이다.

<돈룩업>이 짚고 있는 기후위기에서 한국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생태문제에 대한 대중적 논의는 기후위기 부정론이 득세했던 트럼프 집권기 미국에 비해 오히려 전무한 형국이다. 지구 온난화를 대놓고 부정하는 세력이 있지는 않지만,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측은 “탄소중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지만 경제와 일자리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정도의 입장을 내놓으며 현재의 기후위기를 열심히 일하다보면 저절로 나을 손가락의 생채기 정도로 취급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측은 “박정희 시대 산업화 고속도로, 김대중 시대 정보화 고속도로처럼 에너지 대전환 탈탄소 시대에 걸맞은 에너지 고속도로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을 새로운 기업의 성장 전략, 국가의 경제발전 계획으로 사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많은 시민들에게 기후위기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체감이 되긴 하나 여전히 우리로서는 어쩔 수는 없는, 미국이나 소위 다른 선진국들에서 하는 고민 정도로, 개미들에게는 주식시장의 새로운 테마 정도로 인식되고 있지는 않은가?

안 그래도 경제가 어려운데, 아무리 생태위기라도 당연히 경제와 환경이 같이 가야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돈룩업>에서 지구로 다가오는 혜성을 폭파하려 했던 애초의 계획이 중단, 수정되는 것도 바로 그 혜성의 경제적 가치를 본 기업인 때문이었다. 철저히 자본의 이해에 따라 설계된 이 위험천만한 도박은 저성장 시대 서민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나라의 경제를 살리는 일로 포장된다.

영화 속 정부 광고에는 “혜성이 창출할 일자리들이 애들의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될 것”으로 믿지만 한편으로 혜성이 위험할까봐 걱정이 된다는 엄마에게 과학자가 무료 심리 상담 핫라인 번호를 알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실소가 나오는 이 장면은 ‘성장’에 대한 약속 앞에서는 모든 것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속절없이 자신의 미래를 저당 잡히는지를 보여준다.

기후변화와 생태위기는 우리의 삶을 건 정치적인 이슈이다. 그냥 몇몇 정치인에게 맡겨두거나 세계 경제가 저성장 돌파 전략으로 재생에너지 개발과 친환경 산업에 투자하니 우리도 기업들과 잘 협의해 가면서 그 방향을 따라가면 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이미 많은 과학자들은 무한한 ‘성장’에 대한 근대적 믿음을 밀어붙이는 것으로는 지구에서의 생존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수없이 이야기해왔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방식에 대한 총체적인 되돌아봄을 요구하는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데, 미디어에서는 누가 더 이상한가를 겨루는 정치인들의 얘기뿐이다. 그들이 아무리 보지 말라고 해도, 괜찮다고 알아서 하겠다고 해도, 우리는 봐야 한다. 정말로 더 늦기 전에.

육주원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