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복지라고 이야기하면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표현을 많이 쓰면서, 왜 정치, 행정에서는 요람에만 신경을 쓰고 무덤에 관한 정책은 그동안 왜 없었을까?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단순하게 말씀드리면, 표가 없기 때문이다”
배지숙 대구시의원(국민의힘, 본리·송현·본동)은 적나라한 표현으로 쓸쓸한 죽음에 대한 국가 및 행정적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는 이유를 꼬집었다. 배 의원은 내년 2월 대구시 차원 공영장례 제도 도입을 위한 조례 제정을 준비하면서, (사)자원봉사능력개발원, 반빈곤네트워크와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22일 낮 대구시의회에서 열린 ‘존엄한 애도, 대구지역 공영장례 제도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박진옥 (사)나눔과나눔 상임이사가 전국적인 공영장례 제도 현황 및 한계 분석을 통해 배 의원이 준비 중인 대구시 공영장례 제도에 대한 제언을 발제했다.
이어서 이기봉 영남장애인협회중앙회장, 장민철 대구쪽방상담소장, 조민제 장애인지역공동체 사무국장 등이 현장의 현실을 전하고, 이선애 대구시 어르신복지과장이 제도 도입에 대한 대구시 입장을 밝혔다.
전국적으로 공영장례를 조례화해서 운영하는 지자체는 많지 않다. 12월 22일 현재 기준으로 광역지자체 9곳을 포함해 모두 66곳만 운영 중이다. 전국 광역·기초지자체 245곳 중 26.9%에 불과한 수준이다. 박진옥 상임이사에 따르면 2007년 전남 신안군이 가장 먼저 조례를 제정한 후 2017년까지 단 10곳이 제정하는 수준에 그쳤다. 최근 4년 사이에 50여 곳이 더 늘어난 것이다.
대구의 경우 2017년 대구 동구가 ‘무연고 사망자 장례지원에 관한 조례’를 가장 먼저 제정했고, 올해북구, 수성구, 달서구, 달성군이 잇따라 무연고자나 저소득층 장례 지원 조례 또는 공영장례(수성구) 조례를 제정했다.
박 이사는 조례 제정 지자체가 늘어나는 상황을 두고 “존엄한 삶의 마무리가 이제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로 인정되는 사회적 분위기로 볼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공영장례조례’가 제정되곤 있지만, 기존 무연고사망자 ‘처리’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실효적이지 못한 제도적 한계를 지적했다.
박 이사는 현행 조례의 한계를 크게 세 가지로 짚었다. 첫 번째는 지원대상의 협소함이다. 박 이사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짚었다.
두 번째는 장례를 치르기엔 부족한 지원 내용이다. 박 이사는 “최근 제정된 조례의 경우 장제급여의 200% 범위 내에서 지원하는 추세”라며 “현금 160만 원을 지원받게 되는데, 고인을 애도하기 위한 빈소를 차리기에는 현실적으로 부족한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세 번째는 공영장례지원을 신청하는 사람이 실질적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조건이 안된다는 점이다. 조례상 신청자를 연고자나 이웃사람으로 규정한다. 이렇게 되면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연고자는 인수를 거부했으니 장례를 치를 수 없고, 이웃사람은 연고자가 아니어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한다. 완벽하게 ‘고립’되어야 지자체가 ‘알아서’ 장례를 ‘처리’ 해준다는 의미다.
실제로도 제도는 무용지물이었다. 조민제 사무국장은 지난해 숨진 한 탈시설 자립 장애인의 장례를 치렀던 경험을 통해 제도의 허점을 짚었다. 지난해 8월 숨진 최현창(당시 64세) 씨는 시설에 거주하다가 탈시설하여 홀로 살았다. 그가 숨진 후 조 국장을 비롯한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이 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가족이 아니여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지 못했고, 화장터와 장례식장을 마련하는 일도 이들의 ‘책임’이 담보되어야 했다. 최 씨가 ‘무연고자’인지 확인하는 과정 때문에 장례가 지연되었으며, 최 씨가 평소 모아두었던 자산을 장례에 사용할 수 없었다. 최 씨는 대구에서 가장 먼저 무연고 장례 지원 조례가 제정된 동구 거주자였는데도 그랬다.
조 국장은 “고인의 장례를 치르며 우리는 ‘탈시설’,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무연고’의 고인의 마지막 길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현행 제도와 법률, 행정시스템의 한계를 되짚어볼 수 있었다”며 “지역사회에서 자유로운 삶을 갈망했던 최현창 님을 기억하며 탈시설 장애인의 마지막 길이 조금이라도 가벼울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