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장날인 거죠?”
“그렇지. 오늘 장날이지.”
“그러면 다른 날보다 사람이 좀 많은 거겠네요?”
“없는 거야. 이 사람들 때문에 그렇지, 이 사람들 아니면. 코로나가 예천에 자꾸 발생이 되어서 사람이 더 없는 거예요.”
경북 예천상설시장에서 참기름을 판매하는 강순자(가명, 70대) 씨는 별로 특별한 일도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말했다. 강 씨는 이른 아침 뉴스를 통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예천상설시장에 온다는 이야길 접했다. 그는 “그냥, 못 보던 사람이 온다니까. 예천에 온다니까 환영은 해줘야지”라며 이 후보 지지 인파에 합류한 이유를 설명했다.
12일 오전 9시 55분께 이재명 후보의 매타버스(매주 타는 민생버스)가 예천상설시장에 멈춰섰다. 지난 10일부터 대구·경북 일정을 소화 중인 이 후보는 12일 오전 영주에서 일정을 시작해 예천, 문경, 상주, 김천 순으로 방문할 계획이다. 경북 예천군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 15만이 넘는 도시였지만 경북 북부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쇠퇴해온 도시다. 지난 2016년 경북도청이 안동과 예천에 걸쳐 조성된 신도시로 옮겨오면서 반전의 기회는 잡았지만 여전히 인구는 5만여명 수준을 겨우 유지 중이다.
이 후보가 찾은 예천상설시장에서도 중·장년층이 주로 눈에 띄었다. 이 후보 지지자와 유튜버, 취재진이 한데 엉켜 200여 명의 인파를 이뤘다. 지지자 중에서는 서울에서부터 이 후보 일정을 따라다니는 이도 있었다. 신현읍(75) 씨도 부산에서 예천을 찾았다. 집안 어른들이 이 후보 고향인 안동 예안에서 대대로 살아왔고 신 씨도 예안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오래된 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혔다.
신 씨는 “민주당이 우리나라 개혁을 완수했지 않나. 모든 잘못을 고쳐왔다”며 “돈 버는 데는 좀 바보다. 이제는 물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신 중요하지 않나. 안동이 정신문명의 본고장인데. 지도자들이 올바르게 안 가르친다”고 말했다.
그는 이 후보가 대구·경북 일정 중 박정희, 전두환에게서도 공과가 있다고 평가한 것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이재명 후보는 실사구시니까 좋은 건 좋다고 하고, 나쁜 건 나쁘다고 하는 게 기존 정치인과 다르다”며 “박정희는 산업화를 일으킨 건 잘한 것이고, 일평생 나쁜 것만 있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예천에서도 이 후보나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는 있다. 김욱한(59) 씨가 그랬다. 김 씨는 예천에서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민주당을 지지해왔다고 밝혔다. 김 씨는 “여기에선 민주당 지지한다고 하면 다 빨갱이 취급을 한다”면서도 “민주당은 서민의 당이라고 생각해서 지지한다. 이번에 코로나 자금 푸는 것도 이제껏 대한민국 역사상 이런 일이 없지 않았냐”고 말했다.
김 씨는 “보수 쪽에서 이쪽 경상북도 북부 지방에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요. 여기에서 대통령을 만들다시피 했잖아요. 예천 군민들이 무지한 것”이라며 “온갖 악행을 많이 했는데도. 그쪽으로 자꾸 지지를 하니까.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아요”라고 덧붙였다.
‘빨갱이’ 취급은 예천에서 민주당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박순임(가명, 50대 중반) 씨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민주당을 지지하기 시작했지만 주변에 이를 알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날 이 후보를 보기 위해 상설시장을 찾았지만 지인들에게 알려질까 꺼리는 눈치를 보였다.
그는 “젊은 세대는 조금 그래도 생각이 바뀌는데, 연세 있는 분들은 언론에서 야당(국민의힘) 편을 드니까 그 생각만 하는 분들이 많다”며 “언론이 가장 큰 문제다. 거기에서 다 왜곡을 하니까. 저도 아버지 영향을 받아서 그게 옳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중·장년층은 이들처럼 과거의 잣대로 정당을 지지하고, ‘빨갱이’로 규정한다거나 ‘정권교체’를 주장하지만 20대는 그런 것에서 거리를 두고 대선을 지켜보고 있다. 지지 인파와도 거리를 두고 이 후보를 지켜보던 김인성(가명, 28세) 씨는 “부모님 세대는 당을 보고 뽑잖아요? 저희는 당 보고 뽑진 않거든요. 좌파니, 우파니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죠”라고 말했다.
그는 예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위해 예천을 떠났다가 취업 준비를 하러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무엇보다 경제를 부흥시킬 능력이 있는지를 보고 지지 후보를 선택할 계획이고, 현재로선 가장 능력 있는 후보를 이 후보로 봤다.
마침 연설을 시작한 이 후보도 ‘능력’을 강조했다. 이 후보는 약 40분 동안 시장 100여 미터를 걸으며 시장 상인이나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었고, 일정을 마무리하기 전에 짧은 연설 시간을 가졌다. 이 후보는 “나라 경영 맡겨 주시면 누구보다 확실히 경제 살려서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고통받게 하지 않겠다. 가장 능력 있는, 경제를 회복시켜서 성장하게 할 유능한 대통령 후보가 누구이냐”고 강조했다.
이 후보의 발언을 지켜보던 김 씨는 “우리나라는 삼권분립이고 대통령은 결국 행정적이다. 이 후보는 행정직에서 성공을 하지 않았나?”며 “저도 대학 때 주위에 경기도 친구, 후배들 이야길 들어보면 다 좋다고 이야길 하더라. 저희 세대는 뉴스는 잘 안 본다. 이 후보가 과거에 나쁜 행동을 했다거나 이런 이야길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대통령 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힘에 대해선 “홍준표가 떨어지고 주변에서도 다 관심이 없어졌다”며 “주변에 홍준표 지지하는 사람이 많았다. 솔직해서. 그런데 윤석열은 놀리기 바쁘다. 정권교체 이야길 하잖아요. 그런데 홍준표가 정권교대라고 했잖아요? 그게 맞는 게, 교체는 새로운 인물로 하는 건데,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 때 국회의원 하던 사람들 다시 불러서 그대로 가잖아요. 그게 무슨 교체예요”라고 지적했다.
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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