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19일 새벽 1시, 이라크 남부 나시리아에서 미군 스트라이크 장갑차 18대와 다목적 차량(험비), 각종 중장비 차량이 어둠을 뚫고 북쪽으로 내달린다. AH-64 아파치 헬기 2대는 공중에서 정찰과 엄호하고 있다. 2003년 이라크에 파병된 제마·서희부대(대대급) 주둔지에서 자이툰 사단의 선발대가 주둔지인 아르빌까지 720km를 이동하는 일명 ‘신천지 작전’이다. 월남전 이래 전장에서 이동하는 최초의 한미연합작전이다. 향후 사단 본대가 쿠웨이트에서 아르빌까지 1115km를 이동한 ‘파발마 작전’의 디딤돌이 되었다.
필자는 자이툰 사단의 공보정훈장교로서 신천지 작전에 참가했다. 당시 이라크는 연일 차량폭탄 테러가 발생하고, 급조폭발물로만 하루에도 4∼5명의 장병 사상자가 발생했다. 03년 이라크전 종전선언 이래 상황이 가장 악화하여 신천지 작전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작전도 몇 번이고 연기되곤 했다. 더욱이 신천지 작전을 1개월 앞둔 6월 하순, 반군은 우리 교포 김선일 씨를 무참하게 피살하면서 “한국군이 이라크에서 활동하면 테러를 계속 감행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었다. 통과해야 할 바그다드, 바쿠카, 키르쿠크에는 날마다 차량 폭탄 테러가 발생하고 있었다.
내 생애 이토록 긴장해 본 적은 없었다. 바그다드를 통과할 땐 파괴된 건물과 차량에서 화약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도로 맞은편에서 오는 현지 차량을 볼 때마다 폭탄을 싣고 우리 쪽으로 뛰어들 것만 같았다. 키르쿠크 지역을 막 통과한 직후, 차량 폭탄 테러가 발생하여 현장에서 십여 명이 사망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한 장병들은 지휘관(박성우 대령)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작전에 성공했다. 2박 3일 만에 주둔지인 아르빌에 무사히 도착했을 때, 한미 장병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모두 서로 얼싸안고 뜨거운 감동으로 온몸의 땀을 씻어 내렸다.
장병들은 위험한 순간에 처했을 때 옆에 있는 전우를 믿었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두려움을 극복했다고 한다. 필자는 이러한 체험을 계기로 ‘전장에서 군인이 목숨 걸고 싸우는 이유’를 연구했다. 작전에 참가한 76명의 장병들을 조사한 결과, 전우를 지키고 가족과 부대의 명예를 지키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운다는 것을 확인했다. 미군의 연구 결과도 이와 유사하게 나타났다.
03년 미국 육군대학은 ‘무엇이 장병들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게 하는가’ 연구에서 ‘전우애, 가족애, 애국심, 애대심’이 핵심요인이라고 밝혔다. 특이한 점은 2차 세계대전 때 나타나지 않았던 애국심이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것이다. 미군은 장병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 것이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04년 자이툰 사단의 선발대가 이라크로 향하는 날, 주둔지 정문 앞에서 시민단체가 파병 반대 시위를 했다. 우리는 헬기로 성남공항까지 이동했다. 그때 우리 장병들은 그 누구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군인으로서 침묵 외엔 할 수 있는 표현이 없었다.
군인은 국가와 전우 그리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임무를 수행한다. 아니, 수행해야만 한다. 적개심은 임무를 수행하다 전우가 희생되었을 때 나타나는 것이다. 대부분 장병들의 품속엔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이 있다. 머리맡 관물대에도 어김없이 가족사진이 붙어있다. 장병들에겐 가족이 곧 국민이다. 국민(가족)을 있게 하는 것은 국가이다. 자신을 지켜주는 전우와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국민)을 위해 화약 냄새나는 현장을 뚫고 지나간 것이다.
벌써 겨울이 왔다. 전후방 각지와 해외 파병지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우리 장병을 생각하니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어려운 시기에 장병들을 생각하며 가족과 이웃에게 더 관심을 쏟았으면 한다. 우리 장병들을 뜨겁게 성원하면서.
전병규 kyu9664@naver.com
육군에서 33년 복무하고 2021년 예편했다. 소말리아, 이라크에서도 근무했다. 전역 직전에는 대구, 경북을 지키는 강철사단의 부사단장을 역임했다. 대구과학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