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 영풍제련소를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마음은 양갈래다. 지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삶의 터전이면서, 동시에 터전을 근본에서부터 잠식하는 골치덩어리이기도 하다. 지난 8일 영풍제련소는 경상북도 조업정치 처분에 따라 열흘 간 공장의 불을 껐다.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과 그 가족은 불안을 드러냈고,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폐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8일 0시부터 열흘 간 조업 정지를 시작한 영풍제련소. 조업 정지와 함께 정화시설 등 일부 비생산 설비를 제외한 생산 공정이 모두 멈췄다. 아연 이온을 포집하는 전해공정 등 일부 공정은 잔류 생산물 제거를 위해 며칠 전부터 이미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조업 정지를 앞둔 7일 밤 10시 40분께, 3교대 근무 마지막 조가 안전 점검을 마친 뒤 영풍제련소 제1공장 정문으로 걸어 나왔다. 앞서 근무를 마친 노동자와 지역민들은 촛불을 들고 마지막 근무자들을 맞았다. 이들 500여 명은 1공장 정문에서 2공장 주차장까지 낙동강 둘레를 따라 촛불을 들고 걸었다.
오후 11시, 영풍제련소 전 공장에서 전등을 끄는 소등식이 시작되자 현장에 있던 지역민 일부는 탄성을 냈다. 소등식에 참여한 지역민은 영풍제련소 직원 가족 중심으로 진행되어서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렸다. 이들은 촛불을 손에 쥐고 ‘아침이슬’을 함께 불렀다.
권봉주(53) 씨는 용해공정에서 일하는 17년 차 노동자다. 권 씨는 이날 오후 용해공정에서 사용되는 용해액을 갈무리하고 배관 등 유출 방지 작업을 마치고 공장을 나왔다. 공장 바깥에서 소등하는 모습을 보자 권 씨는 만감이 교차했다. 오래 일한 지역민으로서 영풍제련소에 대한 자부심. 일자리·상권·자녀 교육 등 회사와 밀착된 지역민의 삶에 대한 걱정. 혹시나 있을지 모를 2차 조업정지 우려까지.
권 씨는 정책 추진 당국이나 정치인들이 지역과 깊게 얽힌 영풍제련소 사정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는 “회사도, 직원도 노력하고 있다. 이 지역은 좁은 동네다 보니 제련소 직원과 지역민이 한 가족처럼 지내는 곳이다. 지역에 어떤 영향을 줄지, 정부 당국이나 정치권도 한 번 어떻게 돼 있는지 와서 보고, 우리 사는 모습을 보고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조 공장에서 일하는 최병호(43) 씨도 지역민의 삶을 먼저 살펴달라고 호소한다. 최 씨는 경북 영주 출신으로,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 후 석포에 정착한 지 13년째다. 영풍제련소에는 석포면뿐만 아니라 최 씨처럼 영주, 강릉, 태백 등 경북 북부부터 강원 출신 지역민이 주로 일하고 있다.
최 씨는 “영풍제련소 없는 지역은 상상할 수 없다. 이번 일로 제련소를 폐쇄하라고 하면, 강줄기에 있는 우사 같은 것도 다 폐쇄해야 하는 거 아닌가. 무조건 ‘폐쇄’ 보다는 개선을 하도록 정치권에서도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중장비를 운전하는 협력업체 노동자 A 씨는 생활상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하면서, 제대로 된 상황 파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영풍제련소가 조업 정지 기간에도 조업을 제외한 설비 보수 작업 등을 진행하지만, 그래도 조업에 따르는 각종 수당까지 받을 순 없기 때문이다. 그는 여당 대선 후보가 제련소 문을 닫게 할거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뜬소문에도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조업이 정지되면 공정에 연계된 지역난방 일부도 안 된다. 특히 수입이 제일 문제다. 공장을 오래 세우면 그나마 있던 젊은 사람은 이곳을 다 떠날거다. 60일 조업정지는 절대 안 된다. 이재명이 되면 문 닫게 한다던데,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A 씨가 말하는 이재명 후보의 발언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진 않는다. 이 후보는 지난 9월 <안동MBC>와 인터뷰를 하며 “석포제련소를 포함해 낙동강 줄기에 있는 환경오염원들은 주민의 생계수단이기도 하면서 하류에 사는 주민 안전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며 “하류 지역 주민의 식수 문제도 해결하면서 충분한 대화, 합리적 대안을 만들어가며 사회적 타협을 해내야겠다”고 말한 적 있다.
조업 정지 동안에도 정비 위해 분주한 영풍제련소
“10월 제련소 또다시 오염수 유출” 주장도
조업이 정지된 8일 오전 8시, 영풍제련소 공장으로 향하는 길목 곳곳에 지역민이 붙인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꼈다.
“석포제련소의 도약을 위한 잠시 멈춤”
“조업정지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주민생존권을 무시한 결정”
“환경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먹고사는 게 더 중요하다”
이날 제련소는 조업 정지 중인 설비 일부를 취재진에 공개했다. 아연괴 생산 최종 단계인 주조공장. 공기 정화를 위한 백필터는 가동되고 있지만, 전해공정을 거친 아연을 옮기는 컨베이어벨트는 멈춘 상태였다. 다른 생산 라인도 정지한 상태에서, 노동자들은 설비 보수 등 작업으로 분주했다.
취재진을 맞은 박영민 영풍제련소 소장은 조업정지 처분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도, 혁신을 통해 우려 불식에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박영민 소장은 “조업 정지 10일 처분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번 일을 계기로 환경 개선과 혁신을 철저히 할 것”이라며 “무방류시스템 뿐만 아니라 수질 강화를 통해 들어오는 물과 나가는 물의 상태를 완전히 같아지도록 할 것이고, 조업정지로 인한 직원 피해도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풍제련소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른 지역민의 우려도 남는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영풍석포제련소 주변 환경오염 및 주민 건강피해 공동대책위’는 제련소 앞에서 지난 10월 제련소에서 또다시 낙동강에 유입되는 방류수가 목격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방류수를 채취해 경상북도에 수질검사를 의뢰한 결과, 카드뮴(Cd) 1.787mg/L, 납(Pb) 1.85mg/L 등 중금속이 검출됐다.
물환경보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카드뮴 배출허용기준은 청정지역 기준 0.02mg/L, 특례지역 제외 완화된 기준으로도 0.1mg/L 이하다. 납은 청정지역 0.1mg/L, 완화된 기준 0.5mg/L이하다.
공동대책위는 “무방류시스템이 도입됐는데도 방류수가 목격됐고, 경찰도 직접 장면을 촬영했다. 무방류시스템이 아니라 무단 방류 시스템”이라며 “채수한 물을 분석한 결과 경악스럽다. 석포제련소를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주민 송성일(59) 씨는 “주민으로서 복잡한 생각이 교차한다. 기업체와 얽혀서 사는 입장에서는 씁쓸하기도 하지만, 무단 방류를 통해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영풍이 살길을 찾으려면 낙동강을 떠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낙동강 수질은 영풍제련소보다 과거에 운영됐던 광산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며 제련소를 옹호하는 입장도 있다. 주민 권정자(63) 씨는 “공해 때문에 아프거나 하는 사람이 없다. 따지면 폐광산에서 더 많은 오염물질이 나온다”며 “주민은 영풍 없이 살 수가 없다. 환경 문제도 개선을 계속하고 있으니 이제 주민이 불안하지 않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라고 말했다.
공동대책위 주장을 두고 박영민 소장은 “무방류시스템이 5월부터 가동돼 현재 안정화된 상태며, 조업정지 준비를 위해 비점오염수(빗물로 인한 오염)를 포집하는 라인 공사를 하는 당시에 비가 와서 그 빗물이 일부 방류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금은 라인 공사가 완료돼 빗물도 완벽히 처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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