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는 고등학교 중퇴 후 대구 비산동 염색공장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를 당해 죽는다. 일 하느라 떠나지 못한 여행을 죽어서야 간다. 연인 학선은 희수의 흔적을 쫓으며 뒤늦게 강원도 여행을 한다. 희수는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교감을 통해 고단했던 삶에 위로를 받는다. 영화는 그 위로를 관객들에게도 전한다.
영화 <희수>는 5일 제10회 대구여성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 후 관객과 대화(GV)도 이뤄졌다. 변영주 감독이 진행자로 나섰고, 연출을 맡은 감정원 감독과 ‘희수’를 연기한 공민정 배우도 함께 했다. 영화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 작품으로 선정되고, 제21회 전북독립영화제 대상도 수상했다. 감 감독은 대구가 고향인 90년생 여성이다.
변 감독은 “영화 초반에 구축된 정서 때문인지, 희수가 거의 웃지 않고 학선 등 등장인물들과 가끔 웃는데 그때마다 위로가 되더라. (희수가 가끔 웃을 때) ‘다행이다, 웃어줘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영화 소감을 전했다. 공민정 배우도 “희수를 연기하면서 마음이 아프고 힘들기도 했지만, 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치유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공감했다.
이어 변 감독은 “희수가 초반부와 중반까지 어느 공간에 들어갈 때마다 발부터 나오는데, 한참 지나서야 희수가 어떤 상태인지 보인다. 이게 어떤 의도인가”라고 물었다.
감 감독은 “희수가 산 인물이 아니라 공장에서 죽음을 당하는 인물”이라며 “인물이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고, 어느 공간에 놓여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 발과 열리는 문 사이로 비치는 빛을 장치로 활용했다”고 답했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산업재해를 보여주거나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입부에 펼쳐지는 염색공단의 뿌연 연기나 노동자를 잡아먹을 듯한 기계 등을 통해 노동 현장을 떠올리게 한다. 관객에게 제2, 3의 희수들이 여전히 일을 하고, 반복되고 있다고 알려주듯이. 변 감독은 영화의 시선을 따라가다 결국 ‘노동하는 희수’를 떠올리게 됐다고 덧붙였다.
저는 처음엔 학선이가 죽어서 홀로 휴가를 받아 여행을 떠나게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학선이가 등장한 걸 보고 알았어요. 아, 희수가 죽은 거구나. 그 순간 공간에 들어갈 때마다 발부터 보여지는 게 다른 의미로 다가 왔어요. 희수는 죽어서도 노동의 분류에 벗어나지 못하고 유령으로 떠돌고, 노동을 하며 떠돌고 있다는 느낌 같기도 했어요.
실제로 감 감독은 학선이 죽은 건지, 희수가 죽은 건지 명확하게 의도하지 않았다고 했다. 감 감독은 “그날 희수가 흰 천 앞에 서 있지 않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가 사고를 당했을 것”이라며 “노동을 하며 죽음이 도처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설명했다.
공민정 배우는 감 감독이 처음 만난 순간 ‘희수가 앞에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역과 이미지가 잘 맞았다. 인상적인 장면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공 씨는 “길거리에서 이제 끝이구나, 나 이 세상이랑 안녕하는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연기하는 장면이 있었다”며 “락카페 가기 전에 길거리에서 돌아보고, 미련도 있고 스스로도 달래는 듯한 장면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고 답했다.
영화에는 ‘사형집행단’이라는 대구와 경북에서 활동하는 인디밴드도 출연한다. 감 감독은 “희수가 한 번도 안 가봤을 법한 공간과 경험을 의도했다”며 “찾던 중에 음악을 알게 됐고 마침 대구에서 활동하고 이름도 하필 ‘사형집행단’이라 놀랐다. 촬영은 대구 인디 공간 클럽 헤비에서 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제10회 대구여성영화제는 7일까지 3일간 대구 롯데시네마 프리미엄 만경관에서 열린다. 모든 영화는 무료이며, 상영 30분 전부터 1인 1매 현장 선착순 발권한다. 영화제는 ‘큰 소리로 같이’라는 슬로건 아래 12회 상영을 한다. 장편 8편, 단편 9편, 주민영상제작교실 작품 6편 등 총 23편의 작품이 관객과 만난다. 폐막작으로는 여성창작자와 여성서사발굴을 위해 진행한 단편영화공모전의 당선작 3편(<거리두기>,<가양7단지>,<4단지에 사는 인자>)을 상영한다.
장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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