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은 故 장덕준(27) 씨가 사망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기자회견을 위해 서울로 향하는 장 씨 어머니 박미숙 씨에게 지난 1년 간 소회를 물었다. 박 씨는 대규모 물류업체 쿠팡과 지난한 싸움을 하는 이유를 “쿠팡에는 덕준이의 동료들이 일하고 있다. 이들이 편하고 안전한 환경에게 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12일 오전 6시 장덕준 씨는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장 씨는 칠곡 쿠팡물류센터에서 전날 저녁 7시부터 사망 당일 새벽 4시까지 포장 보조원으로 야간 근무를 했다. 부검 결과 사인은 ‘원인 불명 내인성 급사’였고, 올해 2월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로 판정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장 씨가 하루 470kg 이상 중량물을 옮기고, 주6일 야간근무를 하는 등 만성적 과로에 시달렸다고 봤다. 사망 12주 전 장 씨의 평균 근무시간은 58시간 38분이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멈출 수 없는 이유
사측과 3번의 전화, 2번의 만남
“재발방지 대책은 묵묵부답”
박미숙(53) 씨는 지난 1년 동안 경험한 쿠팡 측의 대응에 분개했다. 박 씨는 “저희가 기자회견을 하는 등 언론에 쿠팡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 잠깐 반응한다”며 “저희가 줄곧 요구한 재발 방지 대책에 관해서는 묵묵부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씨가 지난 1년간 쿠팡 측과 전화 통화 3번, 직접 만난 것은 2번이었다. 지난 2월 산재 인정을 받은 날, 그리고 5월 전국순회투쟁 기자회견 후 칠곡과 양산 물류센터를 방문한 날 사측은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에 노트먼 조셉 네이든 쿠팡 풀필먼트서비스 대표가 나온 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의 중재로 처음 만났다. 이후 지난 5월 양산 물류센터 방문 뒤 대책위와 함께 만나기도 했다. 박 씨는 “쿠팡 측은 전화도, 만남도 언론과 국회의원들에게 등이 떠밀려 나왔다”며 “정작 사과도, 재발방지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장덕준 씨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쿠팡에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수차례 언론 앞에 섰다. 박 씨는 “어제 덕준이 납골당을 찾았고, 칠곡 쿠팡물류센터에도 가 추모제를 지냈다”며 “물류센터장이 전화가 와서 협의하고 싶은데 대책위가 문제라고 했다. 쿠팡이 재발방지 대책 의지가 없으면서 과로사 대책위 탓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에겐 정치인도 쿠팡과 다르지 않았다. 국회의원들마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했고, 그때마다 박 씨는 ‘계란으로 바위치는’ 심정을 느꼈다. 박 씨는 “국회의원들도 만났지만 ‘쿠팡 건드릴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더라”면서 “야간 노동에 대한 규제를 하지 않고, 오히려 국회에는 야간 노동을 합법화하는 법이 계류 중이라 한다.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지 않고 버티는 쿠팡 때문에 다른 회사들에게 야간 노동을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 아니냐”고 따졌다.
박 씨가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여전히 거기에 덕준이의 동료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덕준이는 쿠팡을 좋아했고, (쿠팡에서 일하는 것에) 그만큼 자부심도 컸다. 덕준이의 동료들이 편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했으면 좋겠다. 보상금 얼마의 문제가 아니다. 연속 야간 노동의 위험성을 알리고, 역행하는 노동 환경을 바꿔 제2, 제3의 덕준이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12일 오후 1시 국회 앞에서는 ‘故 장덕준 산재사고 1년 추모 및 법제도 개선안 마련 촉구 기자회견’도 열렸다. 장덕준 씨의 부모님을 비롯해 강은미(정의당) 국회의원과 박석운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 공동대표 등이 참석해 장 씨를 추모하고, 쿠팡과 국회의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장 씨의 유가족과 대책위는 쿠팡이 야간노동 최소화, 충분한 휴식 시간과 공간 보장, 일용직 중심 고용을 정규직으로 변화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또 정부에 이런 기업을 제재하는 법과 제도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장덕준 씨의 사망을 과로사로 인정하지 않던 쿠팡 측은 근로복지공단이 지난 2월 산업재해 판정을 내놓자 공식적인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이들은 “故 장덕준 님에 대해 다시 한번 애도와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며 “유가족의 산재 신청에 의해 진행된 근로복지공단의 조사에 충실히 임해 왔으며, 이번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장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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