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과 오빠들…착하거나 나쁘거나, ‘오빠’는 필요없다

[오늘을 읽는 역사] 환향녀를 만든 1638년 조선과 2016년

19:37

오빠는 힘들다. 부르는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힘든 이들은 수많은 ‘오빠’에게 기댈 것을 강요당하는 여성이다. 사회는 여성에게 나쁜 오빠가 아닌 착한 오빠를 찾으라고 말한다. 또, 착한지 나쁜지 ‘오빠’를 감별할 능력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오빠찾기를 강요당하는 여성의 발언권은 사라진다. 더불어 타인의 인권을 짓밟는 폭력이 일어나는 이유를 은폐한다. ‘그러니까 착한 오빠 만나랬잖아’라며.

나쁘거나 착하거나 첫 번째

▲영화 의 한 장면. 병자호란과 청에 끌려가는 포로들의 모습을 다루었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 한 장면. 병자호란과 청에 끌려가는 포로들의 모습을 다루었다.

1637년 병자호란으로 수많은 백성들이 끌려갔다. 포로로 끌려가 천신만고 끝에 조선으로 돌아온 이들 중 여성은 남성보다 더 심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들을 지칭하는 ‘환향녀’는 “오랑캐에게 실절한 여자”라는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

이런 가운데 인조16년인 1638년 3월 조정에 환향녀의 이혼 문제와 관련된 호소문이 올라왔다. 신풍부원군 장유의 호소문은 이렇다.

“외아들 장선징(張善?)이 있는데 강도(江都)의 변에 그의 처가 잡혀 갔다가 속환(贖還)되어 와 지금은 친정 부모집에 가 있다. 그대로 배필로 삼아 함께 선조의 제사를 받들 수 없으니, 이혼하고 새로 장가들도록 허락해 달라.” -인조실록 36권 가운데 장유의 호소 내용

외아들과 속환되어 돌아온 며느리가 이혼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이야기다. 나쁜 오빠다.

장유의 호소문과 상황이 다른 상소를 올린 이도 있다. 전 승지 한이겸은 사위가 속환되어 돌아온 자신의 딸을 버리고 새장가를 들려고 해서 원통하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 좌의정 최명길은 “부모나 남편으로 돈이 부족해 속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장차 차례로 가서 속환할 것입니다. 만약 이혼해도 된다는 명이 있게 되면 반드시 속환을 원하는 사람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허다한 부녀자들을 영원히 이역의 귀신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소원을 이루고 백 집에서 원망을 품는다면 어찌 화기를 상하게 하기에 충분치 않겠습니까. 신이 반복해서 생각해 보고 물정으로 참작해 보아도 끝내 이혼하는 것이 옳은 줄을 모르겠습니다”(인조실록 36권 가운데)라고 하였다.

최명길의 주장을 요약하면 돌아온 부녀자들 모두가 정조를 잃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청으로 끌려간 여성 가운데 회유와 협박에도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결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한이겸과 최명길은 착한 오빠다.

그렇지만 조정 관료들이 나쁘거나 착하거나 돌아온 ‘환향녀’의 의견은 중요치 않다. 기록에도 없다. 그리고 나쁘거나 착하거나 기준은 환향녀가 ‘순결’을 잃었느냐 그렇지 않으냐이다.

나쁘거나 착하거나 두 번째

1940년대 일제강점기. 영화 <귀향>에서 여성들은 수많은 일본군에게 성폭력을 당한다. 종전이 다가오면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독립군으로 보이는 이들의 구출에 한 명의 소녀가 살아남는다.

▲영화 의 한 장면.
▲영화 <귀향>의 한 장면.

영화는 끝까지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 여성을 ‘소녀’의 이미지로 재현한다. 또, 성폭력으로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어 무속인이 된 은경도 ‘소녀’다. 영화는 끝까지 성폭력 피해자를 순결한 소녀로 재현한다.

차마 조선인 여성을 쏘지 못해 죽임을 당하는 일본군 다나카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무의식중에 드러낸다. 일본군 ‘위안소’에서 정민을 만난 다나카는 “호기심에 들어와봤는데…그냥 쉬어요. 내 여동생 같아서”라며 성폭력 가해자가 되길 거부한다. 여동생을 지켜주고 싶다는 다나카의 ‘오빠되기’는 강력하다. 다수 일본군이 그러하듯 광기어린 전쟁 통에 성폭력을 인권침해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을 뛰어넘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그러면서 착한 오빠(독립군)이 없어 성폭력을 당했다는 점을 강조라도 하듯이, 영화 말미에 소녀를 구출하는 이들은 모두 남자다.

나쁘거나 착하거나 세 번째

2016년 2월 대구남부경찰서는 20명의 남성 경찰과 일반 여성 20명을 모아 미팅 행사를 진행했다. “행복한 만남을 다짐하고 폭력을 발견하면 112신고를 약속하는 데이트폭력 근절 이벤트”라고 설명했다. 데이트폭력 근절과 미팅의 관계는 무엇일까. 경찰은 데이트폭력 근절에 앞장서려는 착한 오빠(남성경찰관)를 만나길 권유한다.

▲지난 2월 15~16일 페이스북 페이지 '대구경찰'에 올라온 게시물. 이 게시물은 논란이 일자 삭제됐다. [출처=대구경찰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지난 2월 15~16일 페이스북 페이지 ‘대구경찰’에 올라온 게시물. 이 게시물은 논란이 일자 삭제됐다. [출처=대구경찰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여자 페친분들 주목~~!!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해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20대 초반에서~30초반 사이의 전도유망한 젊은 경찰관들과의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잇남들과의 치맥파티. 얼른 신청하세요. 오빠가 지켜줄께!!!” -대구경찰 페이스북 페이지 가운데

이와 관련해 여성단체가 “데이트폭력이 젊은 연인들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님에도 여성을 모집해 젊은 남성 경찰과 소개팅을 주선한다는 발상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찰은 여러 해명을 내놓았다.

“데이트폭력을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여성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신고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마련한 취지”라고도 했고, 왜 유독 남성 경찰관과 미팅을 주선했느냐고 묻자 “결혼하지 않은 여성 경찰관이 많이 없었다”고 했다.

여성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것 말고 가해 행위가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맞지 않으냐는 물음에 경찰 관계자는 “가해자에 대해서는 신고가 들어오면 신경 써서 철저하게 수사를 한다”며 “이는 범죄라는 인식을 위한 예방 캠페인 차원”이라고 답했다.

엉뚱한 답 같지만 맞는 말이다. 이 행사를 기획하고 주최한 경찰관은 ‘착한 오빠’가 되고 싶었고, 그러면 데이트폭력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 본 것이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앞장서서 권력 없는 이들에 대한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다.

1638년과 1940년, 그리고 2016년. 폭력과 인권침해는 권리와 목소리가 없을 때 방치된다. 김영하의 단편소설 <오빠가 돌아왔다>의 폭력을 행사하는 오빠와 아빠의 이야기를 풀던 주인공은 마지막에 ‘야옹아, 하루만 기다려라. 언니가 간다’며 이야기를 마친다.

착하거나 나쁘거나 오빠는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