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분해 보였다. 지난 1일 14개월간 수행한 대구시 경제부시장직을 내려놓은 홍의락 전 부시장 이야기다. 6일 오후 만난 그는 대구시 경제 정책과 행정을 직접 챙기며 느꼈던 소회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어려움도 있었고, 아쉬움도 남지만, 결과적으로 ‘성과는 있었다’고 홍 전 부시장은 말했다.
“자기 곁 내주지 않으려는 보수 정치 세력”
“작년 7월에 황당···심부름꾼 되겠다 싶어져”
“친소 관계로 부탁하는 문화 넘어서야”
지난해 6월 초 홍 전 부시장은 권영진 시장과 점심 도시락을 함께 먹다가 느닷없는 부시장직 제의를 받았다. 그 후 약 한 달간 고심 끝에 ‘독배를 든다’는 심정으로 부시장직을 수락했다. 대구 정가에선 파격적인 인선으로 평가됐다. 권 시장과 홍 전 부시장이 대학 선후배 사이라는 인연이 있다곤 해도 엄연히 다른 정당 소속인 데다 정파적 대결 구도가 첨예하게 날 선 시국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각 정당 내에서도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고, 국민의힘 내부에선 여전히 권 시장의 홍 전 부시장 기용을 못마땅하게 평가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추경호 국회의원(국민의힘, 달성군)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도 “애초에 부시장직을 맡지 말았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해 홍 전 부시장의 노여움을 샀다.
홍 전 부시장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먼저 추 의원 이야기를 꺼내면서 여전한 국민의힘 내부의 반발심을 꼬집었다. 그는 “상당한 지역 보수 우파 인사들이 민주당 사람을 왜 써야 하느냐고 이야길 한다”며 “자기 곁을 내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대구가 협업이나 대화나, 서로 나눠 일하는 것에 인색하다. 협의하고 경쟁하고 토론해서 생기는 이익을 경험해보지 못한 문화인 거다”라고 짚었다.
이어서 “자기 경험이 원칙이라고 믿는 사람이 대구에 많다. 자기 경험을 믿으니까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건 듣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기 경험이 좁고, 바닷가 모래알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걸 상상하는 걸 싫어한다”고 덧붙였다.
‘자기 경험’ 안에서만 생각하며 일하고 외부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문화는 대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는 게 홍 전 부시장의 평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화는 소위 ‘끼리끼리’ 문화, ‘우리가 남이가’ 정서와 일맥상통하기도 하다. 자기 경험 안에 있는 사람들과 일한다는 건데, 중앙 정부 인사철만 되면 대구·경북 출신이 얼마나 기용되는지를 따져보는 습성으로도 드러난다.
경제부시장직을 시작하면서 홍 전 부시장이 넘어야 했던 장애물도 그러한 문화였다. 임기 초 대구시 내부에서는 그를 중앙 정부와 친소 관계에 따른 ‘심부름꾼’으로 쓰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홍 전 부시장은 “작년 7월에는 참 황당했다. 내가 여당에 있었고 국회의원이었으니까, 중앙 정부와 이야기해야 할 것들에 대한 부탁이 들어오더라”며 “이러다간 심부름꾼 밖에 안 되겠다는 고민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중앙 정부를 오가는 걸 원했는데 내가 안 움직였다”며 “권영진 시장은 내가 하려는 다른 시도를 알고 있었지만 다른 파트에선 지금껏 운영된 시스템대로 하려던 거였다. 현안 있으면 누구 만나고, 친소 관계로 부탁하는 거 말이다. 대구 사회가 결과와 상관없이 만나서 사진 찍는 것에 만족하는 게 일반화된 사회인 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른 지역도 그런 곳이 있겠지만, 대구는 디테일을 챙기는 것에 약하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누가 뭘 했다고 하면 그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안 본다. 보도자료 하나 주면 박수치고 실어버린다. 그러니까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심부름꾼’ 넘어, 혁신 문화 심고 싶어
혁신 성장을 위한 거버넌스 확립 추진
가시적 실적 부담도···도심융합특구 지정 이끌어
홍 전 부시장은 ‘심부름꾼’ 역할이 아니라 대구에 새로운 혁신적 문화를 심고 싶었다. 지난해 부시장 임기 시작 전 <뉴스민>과 만난 인터뷰에서도 ‘하던 대로가 아닌 방법’을 고민한다고 말했다. 당장 실현 가능성이 없는 ‘미친 소리’로 보이지만 종국엔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가 된다는 뜻의 ‘룬샷(loon shot)’을 제목으로 한 책도 읽고 있었다. (관련기사=[인터뷰] 홍의락 신임 대구 경제부시장, 그의 ‘룬샷’은 성공할까(‘20.6.30))
홍 전 부시장은 부시장 임기를 시작하고 첫 여름휴가를 다녀오면서 직원들에게 같은 책을 선물했다. 그리곤 대구시의 혁신을 위한 몇 가지 시도를 시작했다. 그는 혁신 성장을 위한 거버넌스 확립을 화두로 해서 ▲정책 플랫폼 구축 ▲혁신 네트워크 구성 ▲기업 니즈 발굴 ▲대구에 대한 신뢰 확보 등 4가지 아젠다 실행에 나섰다.
그는 “이런 걸 시작하려고 하면 엉뚱한 거 하려고 한다고 할 수 있어서 그간 대구시가 생산한 서류를 찾았다. 2014년 권 시장이 하려고 했던 장기발전계획이나 2016년 내놓은 로드맵을 찾았고, 그걸 근거로 원래 대구시가 하려던 것에 연장선에서 이어가려고 한다고 하면서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일을 만들어가는 건 지난 8년 간 국회의원 생활을 하면서 몸에 익힌 노하우다. 그는 “의원 시절에도 내가 풀어낸 일들이 있었지만 나서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앞장서면 대구에선 일 진행이 잘 안 됐다”며 “나는 안 한 것처럼 뒤에서 진행되는 걸 지켜보고 막히는 게 있으면 풀어주는 역할을 하곤 했다. 그 뒤에 누가 와서 자기가 한 것처럼 굴면 언짢기도 했지만 다 대구가 잘 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장기 계획인 혁신 성장 거버넌스를 이끌어가기 위해선 단기적으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놔야 한다는 압박이 홍 전 부시장에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놓지 않고 혁신 거버넌스니 정책 플랫폼이니 한들 직원들이 수긍하고 따를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는 “실적이 있어야 나를 믿을테니까 성과도 있어야 했다”며 “마침 국토부에서 도심융합특구 지정을 준비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미리 TF를 꾸려 준비를 해 따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임기 중에 도심융합특구를 포함해 로봇테스트필드를 대구에 유치하고 엑스코선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 같은 다른 성과도 냈지만, 취수원 다변화의 물꼬를 튼 일을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그는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나 장세용 구미시장도 노력을 많이 했고, 우리 내부적으로도 상생의 의미가 있다는 이야길 하면서 해결 방안을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무산이 될까봐 지금도 걱정하고 있다”며 “권 시장도 이야길 했지만 이 부분에선 대구 시민들도 구미시에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면에서 보면 대구 정치권이 정치 논리로 공격해야 할 것도 있겠지만 상생을 위해 풀어야 할 일도 있는데 그 구분이 안 되는 것 같아 아쉽다”고 우려도 남겼다.
“권영진, 인색한 평가 받을 정도 아니야”
“홍의락을 부시장 초빙한 것만도 대단한 발상”
끝으로 홍 전 부시장은 14개월 만에 부시장에 물러난 이유와 함께 권영진 시장에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또 대구 발전을 위한 조언을 후임 부시장에게 건네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그는 “처음 들어올 때부터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1년쯤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더 오래 있으면 궁색하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8월 20일에 내년도 예산 실링(ceiling)이 닫히고 9월부턴 국회 몫으로 넘어간다. 로봇테스트필드도 남아서 8월까지 했고, 8월 말이면 민주당 경선이 끝날 때여서 편안한 마음으로 그만두면 되겠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느닷없이 미뤄지는 걸 보면 참 인력으로는 다 되지 않는구나 싶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는 권 시장에 대해선 인색한 평가를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평하면서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는 “권 시장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본인이 가진 성과나 시정 방향이 이 정도로 인색한 평가를 받을 정도는 아니고 나름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홍의락을 경제부시장으로 초빙한 것도 권 시장의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성과는 분명히 남았다”고 강조했다.
후임 경제부시장에겐 ▲데이터 ▲현장 ▲협업 3가지를 당부했다. 그는 “의사 결정을 할 때 데이터에 기반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누굴 설득하려면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며 “또 현장이 중요하다. 공무원들이 어떤 정책을 하려고 하면 현장에 꼭 가봐야 한다. 시청에 온 소수의 이야기만 듣고 추진하면 보편적인 정책이 안될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더 중요한 건 협업”이라며 “과거엔 혼자 잘하는 걸 해도 살아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4차 산업 혁명과 포스트 코로나, 기후위기의 시대다. 사업을 하거나 비즈니스를 하려면 통신, 기계, 소프트웨어, 바이오 등 각 전문가들이 함께 협업을 해야 한다. 이들이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누군가 행정에서 이들의 언어를 통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산업이 미래로 갈 수 있다”고 전했다.
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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