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돋보기로 보는 도시]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사람을 만날, 파리

14:52

파리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였습니다. 아니, 지금도 사랑하는 도시입니다. 몇 번을 다녀왔지만, 또 가겠느냐고 하면 바로 짐보따리를 쌀 겁니다. 어릴 적 뉴스에서 혹은 영화에서 보던 파리는 백인의 나라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소피 마르소가 주연했던 영화 <라붐>에서도 프랑스의 하얀 피부 금발머리 혹은 갈색머리 청소년들이 등장하며 마음을 설레게 했고, 트렌치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엄기영 앵커가 전하던 뉴스에 등장하던 파리 사람들 역시 그랬죠.

10여 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도착한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에서 제일 먼저 저를 맞아준 프랑스인은 아프리카계가 명확해 보이는 공항 직원이었습니다. 유심칩을 판매하던 직원은 히잡을 쓴 여성이었습니다. 버스 기사는 복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중국계 동양인 아저씨였습니다. 사실 백인과 흑인 동양인을 피부색으로 구분하는 일이 참 부질없는 것임에도 저도 나고 자란 곳이 ‘단일 민족’을 자랑하는 곳이라 그런 모습이 신기해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뉴스나 영화에서 보여지던 프랑스의 백인들도 고대 로마인, 골족, 게르만족, 바이킹족 등등 다 다른 종족이었을 겁니다. 중세 이후에도 용병으로 스코틀랜드나 스위스에서 들어온 사람들, 프랑스와 이탈리아 예술인들, 대혁명 이후 신교도와 유태인이 유입되고, 정치 경제적 이유로 수많은 사람이 프랑스로 들어오고 파리에 주로 정착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 더해 21세기 시리아 등 중동에서 들어온 난민까지. 수없이 다양한 곳으로부터 유입된 사람들의 도시가 바로 파리입니다. 현재 프랑스 국민 중 약 4분의 1은 조부모 중 한 명은 다른 종족도 아니고 정확히 외국인이라는 통계도 있다고 합니다.

파리에서 머무는 동안, 이런 다양한 사람을 수도 없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 비슷한 국제기구 직원, 우리를 안내해 준 NGO 단체 활동가는 튀니지계 이민자 2세, 이슬람계가 명백해 보이는 렌트카 업체 주인, 2차 대전 당시 조부모님이 나치의 학살의 대상이었던 유대인이었음을 명백히 밝히는 아침을 먹던 카페 주인, 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알제리에서 온 청년, 거기에 더해 도착 첫날 겨우 구한 민박집 주인의 부인은 북한에서 오신 분이었습니다. 지구는 둥그니 자꾸 걸어나가다 보면 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파리에 머무는 2주 동안 온 지구인을 다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는 프랑스 파리,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함께 하는 모습. (사진=박민경)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프랑스가 그럼 굉장히 다양성을 존중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프랑스는 강력한 속지주의 원칙과 중앙집권체제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국가입니다. 즉, 단일성이라는 것을 굉장히 강조하는 나라입니다. 1974년에는 이민을 공식 중단하기도 하고, 곳곳에서 이민자에 의한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이민자에 대한 혐오와 인종주의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합니다.

프랑스 극우파인 국민전선은 아예 ‘프랑스를 프랑스인에게(La France aux Français)’를 구호로 걸고, 파리가 모스크(이슬람 사원)로 덮힌 포스터를 배포하기도 했으니까요. 현실 역시 이민자들에게 녹록지는 않습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만난 대부분의 (이민자로 추정되는)유색인종의 직업은 주로 카페 서버, 청소노동자 등 고용이 불안정한 영역에서였고, 더 심각하게는 노숙 상태로 거리에 방치되는 경우도 자주 목격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런 갈등과 차별이 극으로 치닫던 1980년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반인종주의 운동이 시작됩니다. 그들이 사용한 구호는 ‘내 친구에게 손대지마’(Touche pas à mon pote)였다고 합니다. 이 청년들의 움직임은 미테랑 대통령 시기 공공기관의 모든 인종 차별적 행위와 언사를 처벌하는 법을 통과시키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사회도 늘 까만 머리에 까만 눈동자를 가진 동양인, 혹은 한민족이라고 규정된 사람들만 머무르지는 않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와 피부가 다른 이민자가 한국을 대표해 올림픽에도 출전하고, 이주여성의 아이들이 우리나라를 지키는 국군으로 입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동화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통합해서 살아가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 거죠.

물론 다른 문화와 인종, 종교까지 통합되려면 수많은 갈등과 사회문제는 예견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그것이 두렵다는 이유로 혐오와 차별이라는 무기를 들이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 사상가 에른스트 르낭(Ernest Renan)은 국가를 이렇게 규정했습니다. “함께 살고자 하는 의지의 소산”이라구요. 즉 나의 의지가 있으면 언제든 한 국가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 의지가 아닌 당사자의 종교나 민족, 언어 같은 것은 필수적 조건이 아닌, 부가적인 요소에 불과하겠죠. 통합의 제1조건은 바로 그 국가의 국민이 되겠다는 의지니까요.

박민경 비정기 뉴스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