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장애인시설 인권침해 문제가 또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한 장애인시설의 강제노역 문제가 드러난 지 석 달 만이다. 인권침해 문제가 불거진 사회복지법인?청암재단은 소위 ‘민주이사’가 구성된 재단이다. 지난 2005년 인권침해로 문제가 돼 당시 이사진 퇴진 후 시민사회단체가 추천한 ‘민주이사회’가 출범했다. 이 때문에 장애인단체는 대구시에 “시설 위주 정책이 아닌 탈시설 지원 정책으로 전환”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5일 오전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암재단 산하 청구재활원과 천혜요양원에서 일어난 장애인 인권침해 문제를 지적하며 대구시에 ‘장애인 시설’에 대한 근본적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국가인권위가 지난 1월 25일 발표한 진정조사 결정문에 따르면 청암재단 산하 시설에서는 2007년부터 29명의 시설 거주 장애인이 목숨을 잃었고, 5건의 사망·상해 사건에서 인권침해 문제가 지적됐다.
청구재활원에 입소한 피해자 A씨(지적장애 2급, 2000년 입소)는 2007년 10월 다른 거주인과 다툼 중에 사망했지만, 진상조사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다. 당시 순찰교사였던 직원에게는 1개월 징계조치가 이뤄졌으나, 2008년 4월 청구재활원장이 화해조서를 작성함으로써 징계가 철회됐다.
또 다른 피해자 B씨는(지적장애 1급, 2002년 입소)는 떡으로 보이는 음식물이 묻은 채로 의식 없이 누워 있었고, 심폐소생술 이후 응급실로 후송했지만 질식사했다. B씨가 평소 음식물을 몰래 꺼내 먹는 특성이 있어 주의를 요했지만, 야간 근무자는 전날 지급된 간식을 별도의 뒀고, B씨는 사망까지 이르게 됐다. 이 직원은 2015년 징계위원회에서 해임됐지만, 이의신청을 통해 정직 3개월로 감경됐다.
이외에도 시설 거주 장애인에 대한 자의적인 정신의료기관 입원 문제도 드러났다. 2010년부터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한 장애인은 모두 13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신과 입원 필요성을 확인할만한 기록, 촉탁의 소견, 전문의 상담 내용 등이 전혀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았다.
이에 국가인권위는 진정조사 이후 ▲업무상 과실치사 및 치상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 의뢰 ▲동구청장에게 시설 지도감독 ▲청암재단 이사장과 시설장에게 관련자 징계를 포함한 조치 등을 권고했다.
지난해 12월 대구시의 다른 장애인시설 인권침해 문제가 알려진 이후 불과 석 달 만에 또 시설 인권침해 문제가 불거지자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대구장차연)는 “시설 폐쇄와 거주인 전원 탈시설 지원 실시”를 대구시에 요구하고 나섰다.
대구장차연은 “청암재단은 지난 2005년 시설 내 장애인에 대한 강제노역, 폭행 등의 인권침해와 공금횡령 등이 폭로되면서 시민사회가 구성한 민주이사진을 운영한 곳이었다”며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국가와 지자체의 장애인복지에 대한 책임전가와 쉽게 변하지 않는 시설의 구조를 다시 목격하면서 ‘탈시설’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청암재단은 지난해 4월 21일 스스로 선언했던 법인의 공공화와 탈시설화를 위한 정신에 근거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구장차연은 대구시에 ▲법인설립허가 취소 ▲시설 폐쇄, 탈시설 지원 계획 수립 ▲특별감사 실시 ▲사건 관련자 해임과 법적 처벌 ▲장애인 수용시설에 대한 근절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대구장차연의 요구에 대해 박주국 장애인복지과장은 “대구시도 사망사건이 너무 많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검찰에 수사 의뢰된 상황이라 대구시가 지금 당장 특별감독을 할 수는 없지만, 동구청과 협의를 해서 시설에 직접 나가 자료를 수집하겠다”고 말했다.
시설 폐쇄와 탈시설 요구와 관련해 박주국 과장은 “당장 시설을 폐쇄할 방법은 없다”며 “대구시도 현실적인 대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암재단 이사장 C씨는 <뉴스민>과 통화에서 “책임을 통감한다. 민주시설이라고 한 곳인데 인권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문제를 받아들이겠다”며 “탈시설에 대해서도 동의하는 부분이므로 지역 시민사회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1957년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청암재단은 지난 2005년 인권침해, 공금횡령 문제가 내부 고발자에 의해 폭로됐다. 직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해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재단의 비리 이사진 퇴진 운동을 벌였고, 2007년 민주이사진을 구성했다. 이후 2015년에는 시설 재산 일부 기부채납 등을 통해 전국 최초로 거주 장애인의 ‘탈시설’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