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구에서 길고양이에게 본드를 뿌리는 학대 행위가 발생한 후 길고양이를 돌보던 시민들이 길고양이 ‘공공급식소’ 설치를 위해 서명 운동에 나섰다.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길고양이 학대로까지 이어지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길고양이 공공급식소가 없는 기초지자체는 수성구 뿐이다.
박명희(56) 씨는 지난달 16일 평소 돌보던 길고양이 얼굴 등에 누군가 본드를 뿌린 것을 발견했다. 길고양이는 화학물질로 인한 화상을 입게 됐다. 박 씨는 경찰에 동물학대로 신고했고, 경찰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수성구청에도 해당 사건을 알려서, 구청은 사건이 벌어진 인근에 동물 학대 행위를 경고하는 플랜카드를 설치했다.
박 씨와 함께 길고양이를 돌보는 이들은 단순히 경찰이나 구청 신고만으로 고양이 학대를 막을 수 없다고 보고 공공급식소 설치를 추진하기로 했다. 인식 차이 때문에 길고양이를 돌보는 이들과 인근 주민들 간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고, 그로인해 고양이에 대한 학대로까지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명운동을 통해 현재까지 시민 400여 명의 서명을 받았고, 500명을 채우면 수성구청장에게 면담을 요청할 예정이다.
‘공공 길고양이 급식소’ 북구 6개, 수성구 0개
하나도 없는 곳은 수성구 유일
길고양이 공공급식소는 경기도가 도청을 포함해 66개(2020년 9월 기준), 전북 전주시는 연말까지 40개로 확대하는 등 지자체가 최근 주목하는 길고양이 돌봄 정책이다. 주로 지자체가 일정한 형태의 고양이 급식소를 제작해서 협의된 장소에 설치하면 이후부턴 자원봉사자들이 관리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대구의 경우 8개 구·군 중 수성구를 제외한 7곳에서 지자체가 설치한 공공급식소가 운영되고 있다. 2019년 대구시와 기초지자체가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설치를 시작했고, 현재는 북구 6개, 달서구·중구 5개, 남구 4개, 동구·서구·달성군에는 1개가 설치되어 있다. 달서구는 5개를 추가 설치할 예정이고, 남구도 추가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수성구도 2019년에 1개소가 설치됐지만 관리할 자원봉사자가 없어 사라졌다. 수성구 녹색환경과 관계자는 “어린이회관에 민간에서 관리하는 길고양이 급식소는 있는 것으로 안다”며 “최근 구청 차원에서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해달라는 민원을 접했으나, 아직 내부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 구체적인 현황 파악을 해보려고 하지만, 반대 민원이 있을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길고양이 공공급식소를 운영 중인 7개 구·군에 따르면 급식소 설치 후에는 별도 관리 비용을 구·군청이 부담하진 않고 있다. 중구청 일자리경제과 관계자는 “장소 선정과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 외에 구청은 크게 관여하지는 않는 편”이라며 “추가 예산도 안 들어간다. 다만 급식소가 파손되면 재설치나 수리 등에 도움을 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길고양이 공공급식소 설치를 통해 TNR(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의 효과도 높여서 안정적인 개체수 조절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돌봄 활동이 동물 학대 대신 생명 존중 문화 확산으로 공동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장은 “공공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로 밥주는 자원봉사자들이 편하게 활동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현재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TNR 사업도 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정권(더불어민주당, 범어1,4·황금1,2동) 수성구의원은 “우리 구에 동물보호조례가 있고, 여기엔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가 가능하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며 “급식소 설치로 타인을 배려하고, 동물과 공존하는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