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여고생 세진(이유미)은 늘 웃는다. 저녁에 따로 만나 놀던 친한 친구 은정(방은정)이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혀도 해맑게 웃는다. 학교 교사인 남자친구에게 배신당해도 배시시 웃는다. 웃음은 세진이 험한 세상에 맞서는 무기다. 언제나 웃기만 하는 세진이 유일하게 화를 내는 대상은 재필(이환)이다. 아마도 그를 믿어서일 것이다.
늦은 저녁, 세진은 세상 모든 짐을 떠안고 있는 얼굴로 자해한다. 그 모습을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생중계한다. 하지만 학교에선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이다. 친구들은 그런 그를 괴롭히고 비웃는다. 그래도 세진은 웃는다. 집에 돌아온 그는 밝은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다. 남자친구는 세진이 다니는 학교 교사다.
그는 일하는 남자친구에게 자신과 놀아달라고 칭얼댄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원하는 건 잠자리일 뿐이다. 세진은 남자친구에게 생리를 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그날 이후 남자친구는 전전긍긍한다. 답답한 세진은 성교육 수업 도중 교사에게 “임신했다”고 밝힌다. 교장실로 불려간 세진은 무거운 표정을 한 어른들과 마주한다. “너를 위해서야.” 어른들은 세진을 챙기는 척 굴지만,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라는 것을 세진은 다 안다. 그는 무책임한 어른들에게 말한다. “애 지울 건데요.”
그 후 세진은 친구 은정의 사고사를 직접 목격한다. 그러고선 동생 세정(신햇빛)과 둘이 살던 집을 나와 가출 4년차 주영(안희연)을 만난다. 주영은 세진의 유산 계획을 도와주기로 한다. 단짝이 된 둘은 마트에서 몰래 물건을 훔쳐 나와 낙태약 미프진을 거래하는 아저씨(용석주)를 만나는데, 이윽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때 우연히 재필과 신지(한성수)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한다. 그 뒤로부터 넷은 함께 거리를 방황한다. 세진의 낙태를 위해 모인 가출팸은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는데 끝내 갈등을 빚고 만다. 어른들과 다른 삶을 살아보려 하지만 어른들을 절대 이기지 못하고, 끝내 그 모습을 닮아가는 ‘애어른’이 돼간다.
<어른들은 몰라요>는 가정과 학교 울타리 밖에서 벌어지는 청소년 폭력과 소외 문제를 입체적으로 다뤄 호평은 받은 이환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감독 데뷔작인 <박화영(2018년)>과 마찬가지로 10대 청소년의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평가 받고 있다. 보기 좋게 꾸미지 않고 10대들의 말투와 행동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어른들이 제멋대로 판단하는 청소년의 감정을 솔직하고 재미있게 담았다. 다만 서사의 빈틈이 단점이다. 영화에는 주영이 세진에게 유대감을 느끼는 과정이 설명돼 있지 않다. 주영이 가출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모호하다. 약물에 취해 설명하는 장면이 있지만, 발음이 부정확해 잘 들리지 않는다.
영화는 걸그룹 EXID 하니(안희연)의 주연작으로 화제를 낳았다. 배우 안희연은 몸에 문신을 새기고 술과 약물에 취해 욕설을 마구 내뱉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표현해야 할 감정의 진폭이 큰데도 어색한 부분은 눈에 띄지 않는다. 마지막에 돌을 들고 악에 받친 눈빛으로 위협하거나 눈물을 쏟아내며 간절하게 비는 연기도 훌륭하다.
<어른들은 몰라요>는 사실 어른들이 달가워할 영화는 아니다. 수많은 사회 고발 영화 중에서도 유독 찝찝하고 불편하다. 이유는 이환 감독의 전작인 <박화영>과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나오는 못난 어른들이 현실과 닮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욕설, 폭력, 낙태, 성매매 등 자극적인 소재는 어른들과 접점이 깊고, 적나라한 표현도 어른들의 민낯과 다르지 않다. 이환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어른들은 위기 청소년들의 존재를 믿고 싶지 않아 한다. 관심까진 아니더라도 그들을 부정하지 않아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제목은 주제를 관통하기보다는 청소년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재단하는 어른들에게 ‘실제 10대는 이래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어른들은 세대차를 얘기하면서도 자란 환경과 생각이 다른, 자라나는 세대를 알려는 노력은 게을리해왔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생각과 행동을 그들의 잣대로 해석하고 처방을 제시했다. 그런데 아이들과 관련돼 있는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모두 어른들의 손에 달려 있다. 관람하기는 불편해도 10대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