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가운데,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정부에 ‘실효성 있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촉구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는 2일 오전 11시 30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을 상징하는 파란색 스카프를 매고서 “복지 절벽으로 내몰린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의 절규에 이제 청와대가 응답하라”고 외쳤다.
2018년 4월, 부모연대 소속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은 청와대 앞에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며 삭발식과 두 달간의 노숙 농성, 3천여 명의 삼보일배 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 같은 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을 초청하여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임기 내에 더 크게 종합대책을 확대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이 종합대책은 ‘대통령이 직접 응답했다’는 점에서 환영을 받으면서도, 기존에 있던 제도들을 ‘재포장한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문 대통령의 약속과 달리 이후에 발달장애인에 대한 복지 지원은 크게 확대되지도, 발전되지도 않았다.
특히 종합대책의 핵심인 주간활동서비스는 여전히 하루 8시간의 지원이 보장되지 않으며, 최대 이용시간인 월 132시간(하루 6시간)을 이용할 경우 활동지원서비스 이용시간이 월 72시간 삭감되는 문제도 해소되지 않았다.
또한, 문 대통령은 종합대책 이행을 위한 민관협의체 구성도 약속했지만 이 역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최용걸 부모연대 정책국장은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2018년 9월 이후 장애인서비스과 과장만 두 번 바뀌면서 민관협의체는 단 한 번도 진행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문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1년 남짓 남았다. 코로나19로 복지관 등이 문을 닫아 돌봄 부담이 더욱 가중된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절박한 심정으로 문 대통령에게 다시 한번 책임을 촉구했다.
윤진철 부모연대 사무처장은 “문 대통령이 2018년에 약속했음에도 이후에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은 무참히 죽어갔다”면서 “올해 연말이 문 대통령이 의지를 가지고 예산을 수립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며 ‘골든타임’을 선언했다.
윤종술 부모연대 회장은 “성인 발달장애인이 15만 명인데 이 중 올해 9000명(6%)만 주간활동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조차도 하루 평균 4시간짜리다. 24시간 중 20시간은 부모가 돌봐야 한다”면서 “2018년 9월, 문 대통령이 ‘낮시간 개인 활동서비스를 보편화하겠다’고 했는데 3년이 지난 지금, 전체의 10%도 안 되는 인원이 하루 4시간 받는 게 전부”라고 자조했다.
윤 회장은 “언젠가는 확대되겠지만 너무 힘들다. 발달장애인은 마스크 착용이 힘드니 외출도 할 수 없다”면서 “문 대통령 임기가 끝나더라도 그다음 정권이 이어나갈 수 있도록 남은 임기 내에 세부계획을 만들고 기본적인 예산을 확보해달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국회에서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발달장애인 지원체계의 문제, 연이어 발생한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의 심각성을 인지해 올해 발달장애인 실태조사 사전연구 차원으로 3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그러나 부모연대 측은 이 정도의 예산으로는 제대로 된 실태조사를 할 수 없다며 내년에 전수조사를 위한 예산 50억 원을 요구 중이다.
최용걸 정책국장은 “발달장애인은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정책이 엉망일 수밖에 없다”면서 “올해 설문지를 개발하고 사전조사 형식으로 진행한 후, 내년에 예산을 확실하게 편성해서 전국 발달장애인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달장애인법 제6조에서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실태조사를 3년마다 실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2014년 법 제정 이후 현재까지 실태조사는 단 한 번도 진행되지 않았다. 2019년 말 기준 발달장애인 수는 약 24만 2000명으로 전체 등록장애인의 9.2%를 차지한다.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 시에 4만 5000명의 표본조사에 약 1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된 점을 고려하면 이보다 5~6배의 예산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부모연대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고 전수조사를 한 후,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욕구에 맞춘 종합대책을 민관이 함께 수립해 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이날 부모연대는 성명에서 “발달장애 조기발견, 장애진단, 가족지원, 상담, 복지서비스 지원체계가 촘촘히 설계되어야 하고, 학교 현장에서 완전한 통합교육을 위한 교육지원체계도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면서 “학교 졸업 후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하루 24시간 복지를 지원하고, 주거지원, 노동지원, 소득지원 등 종합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가 차원에서 최소한 이러한 계획이 수립되어야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 후, 부모연대 대표단은 청와대에 정책요구안을 전달했다.
기사제휴=강혜민 비마이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