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가 전두환의 군부 독재와 닮았다고 입을 모은다. 미얀마 민중을 향한 군부의 살인 진압은 80년 ‘광주 항쟁’으로, 미얀마 군부의 막후 권력자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미얀마의 전두환’으로 묘사된다. 과거 폭압적인 군부 독재의 시절을 지나온 한국 사회로써는 미얀마의 민주화 투쟁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이는 범시민사회와 정치권까지 미얀마 민주화 투쟁을 지지하고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얀마 독재 군부에 막강한 경제적 힘을 쥐여준 것 역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었다. 한국의 군부 독재 시절부터 이어진 미얀마 군부와의 경제적 파트너십은 그 후로도 20여 년간 미얀마의 군부 독재를, 그리고 현재의 군부 쿠데타를 가능케 했다. 그리고 한국 기업과 정부에 ‘투자 중단’을 요구하는 미얀마 국민의 목소리 역시 30여 년 전과 다르지 않다.
“집권 세력은 경제 발전이 이룩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는 아니다. 외국인 투자로 중산층이 형성되기는커녕 갈수록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줄고 있다. 과거 중산층이라 할 만한 공무원, 전문직 종사자, 교사 등이 ‘하층민’으로 전락했다. 이는 그릇된 정부가 소수만을 위한 경제정책을 시행하기 때문이다.”
1996년 8월, 6년여 만에 가택 연금에서 풀려난 아웅산 수치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외국 기업의 투자가 늘면 일자리가 늘고 경제가 성장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와 함께 아웅산 수치는 전 세계 민주주의 지도자들을 향해 “자국 기업인들에게 ‘현재의 투자는 미얀마 국민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설득해 달라”고 호소했다.1
당시 미얀마 국민은 한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 미얀마에 대한 원조와 민간 기업의 투자를 중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경제 원조 및 투자가 군부 독재의 경제적 바탕이 될뿐더러, 불평등을 악화시킨다는 이유였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현재, 미얀마 국민과 한국의 시민사회 등은 또 한 번 한국 기업과 정부에 미얀마 군부와 관련된 경제 협력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전두환과 미얀마 군부, ‘독재 정권’이 손잡은 경제협력
한국과 미얀마의 경제협력은 전두환 군사 독재 시절부터 본격화됐다. 1982년 양국은 외상 회담을 열고 경제협력 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 외무장관은 당시 대통령인 전두환 씨의 기본 외교방침을 설명하면서 “세계 모든 나라와 관계 증진을 위해 이념과 체제에 관계없이 우호 관계를 갖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미얀마는 1962년 3월 네윈 군 총사령관이 일으킨 군사 쿠데타로 20년째 군부 독재의 그늘 아래 있었다. 한국 역시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5.17 군사 쿠데타로 독재 정권의 시절을 겪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전두환의 쿠데타와 군부 독재가 미얀마의 ‘네윈 식’ 모델을 참고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정권을 장악한 한국과 미얀마 군부 세력은 1987년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경제 협력 확대에 합의했다. 당시 양국은 83년 발생한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으로 반북 정서를 공유하고 있었다. 한국의 전두환, 미얀마의 우산유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으로 초래된 불행을 양국이 지혜롭게 극복해 상호 우호 협력관계 증진의 계기로 삼게 된 것에 만족을 표명’하며 양국의 경제 통상을 확대, 심화하기로 했다. 교역을 비롯해 한국 기업의 합작 투자 및 기술협력을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버마사회주의 계획당 및 우산유 대통령의 탁월한 영도 아래 이룩한 국가발전을 높이 찬양’하기도 했다.2
양국 회담을 전후로 국내 대기업들의 미얀마 진출은 크게 증가했다. 대우는 1984년 철도차량 수출을 시작으로 미얀마에 공장을 건설하고 가전, 생산설비, 기술 등으로 수출 품목을 확대했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선경그룹(현 SK), 럭키금성(현 LG), 삼성, 현대 등의 대기업들도 앞다퉈 미얀마에 진출했다. 이들은 미얀마 유전 개발과 댐 건설 공사를 수주하고, 미얀마에 현지 법인을 설립해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90년대 초반에는 포항제철(현 포스코)도 미얀마와 합작해 봉강 공장을 건설하며 적극적인 투자에 나섰다.
사실 이들은 전두환 정권 당시 수백억 원의 뇌물을 헌납하며 군사 독재에 복무한 기업들이었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전두환에게 150억 원의 뇌물을 줬다. 이후 전 씨의 아들은 90년대에 ㈜대우 섬유수출부와 대우증권에서 각각 근무하기도 했다. 비슷한 기간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각각 220억 원을, 선경그룹(현 SK) 최종현 회장은 150억 원을, 럭키금성그룹(현 LG) 구자경 회장은 100억 원을 전두환에게 건넸다. 당시 굴지의 대기업들이 전두환에게 헌납한 뇌물은 5천억 원에 달했다. 한때 전두환과 사돈 관계를 맺었던 박태준 포항제철(현 포스코) 회장 역시 다른 재벌 총수들과 함께 전두환 씨가 설립한 일해재단에 45억 원을 헌납했다.
1990년, 미얀마 군부 기업과 손잡은 한국 기업들
한국 기업들이 미얀마에 더욱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1990년에 들어서다. 미얀마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군부 기업인 MEHL(미얀마경제지주회사)과 MEC(미얀마경제공사)을 설립한 시기다. 1988년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외국인 투자 활성화 조치를 시행하고, 89년 MEC를, 그리고 90년에 MEHL을 설립했다.
MEHL은 현역 및 퇴역군인과, 군부대, 지역사령부 등이 지분을 소유한 군부 기업이다. 지난해 국제엠네스티가 발표한 보고서3에 따르면, MEHL은 미얀마 군부의 주요한 자금줄 역할을 해 왔다. 해외 기업과 합작 설립한 회사의 지분을 소유하며 사업을 확장했고, 설립 30년 만에 50개 이상의 자회사를 보유한 미얀마 최대 대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이들이 벌어들인 돈은 군부 세력의 경제적 기반이 됐다.
1990년 설립 후 2011년까지 주주들이 받은 배당금은 약 180억 달러(20조3310억 원)이며, 이중 약 160억 달러(18조720억 원)가 군대로 흘러 들어갔다. MEHL의 회장은 현재 미얀마 군부의 최고 권력자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다. 그는 MEHL의 주식 5천 주를 보유한 최대 주주로, 연간 250만 달러(2억8500만 원)의 배당금을 받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이들 군부 기업과 합작회사를 설립하며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대우의 계열사인 세계물산은 1990년에 국내 제조업 최초로 MEHL과 합작 투자한 봉제 공장을 세웠다. 이듬해인 91년에는 대우가 MEHL과 합작해 봉제 회사인 ‘대우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회사 지분을 대우와 MEHL이 각각 55%와 45%로 나눠 갖는 구조였다. 1997년에는 포항제철이 자본금 224만 달러를 출자해 MEHL과 합작으로 아연도금강판 생산회사인 ‘포스코스틸’을 설립했다. 포항제철 70%, MEHL 30%의 지분으로 이뤄진 회사였다.
미얀마로 간 한국기업, 인권침해에 무기 밀수출까지
미얀마 군부 기업과 손을 잡은 국내 대기업들은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1997년 미얀마 정부의 제안으로 대우인터내셔널은 ‘쉐(SHWE, 황금)’라는 이름의 가스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대우인터내셔널과 한국가스공사가 약 60%와 10%의 지분을 갖고 참여한 이 사업은 생산에 들어가면 연간 수천억 원의 수익을 낼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권 침해와 환경 파괴, 군부 독재와의 협력 등 갖가지 논란이 일었다. 군부가 대우 시추선의 안전을 이유로 해상을 지키며 실수로 그 구역에 진입한 어부들을 납치, 고문하거나 배를 압수한다는 것이었다. 근처에 대우 건물을 짓기 위해 강제 노역이 이뤄지고 있다는 현지인들의 비판도 잇따랐다.4 무엇보다 이 사업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수익은 결국 군부로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어 현지인들은 한국의 투자 철수를 요구하고 나섰다.
심지어 대우인터내셔널은 미얀마에 무기 시설을 불법으로 수출하며 군부를 지원했다. 대우인터내셔널과 두산인프라코어 등 7개 업체는 지난 2006년 포탄 생산설비와 기계 일체, 그리고 군사기밀인 부품도면 등의 핵심기술을 미얀마에 밀수출하다가 적발됐다. 이들은 2001년 미얀마 군사 정권과 손을 잡고 2006년까지 일반 산업기계 수출인 것처럼 위장 계약서를 꾸며 불법적으로 무기 시설 수출 및 기술 이전을 이어왔다. 또한 미얀마 정부로부터 1,600억 원을 받기로 하고 현지에 포탄 공장을 건설하기도 했다.
군부의 기여한 한국 기업들, 미얀마에서 ‘황금’을 얻다
재계 서열 4위였던 대우그룹은 2000년 부도 사태로 공중분해 됐다. 그룹은 해체됐지만, 그들이 벌인 사업은 또 다른 기업의 손에서 소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2010년 포스코는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해 ‘포스코인터내셔널’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대우인터내셔널이 추진했던 미얀마 가스개발 사업도 넘겨받았다. 그리고 2014년, 하루 목표치였던 약 5억입방피트(ft³) 생산에 성공하며 사업을 본격화했다. 생산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회사는 이후 20년간 연간 3천~4천억 원 규모의 이익을 낼 수 있게 됐다. 실제로 2014년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영업이익은 3,761억 원으로 전년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2015년에는 미얀마 가스전 영업이익이 전체 영업이익의 96%를 차지했다. 언론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미얀마 가스전으로 포스코에 엄청난 ‘유산’을 남겨줬다며 연일 극찬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이 가스전 사업의 지분 51%를 소유한 운영권자다. 그리고 15%의 지분은 미얀마 국영 가스회사(MOGE)가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는 포스코의 가스전 사업이 미얀마 군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독재 국가에 투자했을 뿐, 군부에 돈줄을 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5 하지만 시민사회의 설명은 이와 다르다. MOGE 자체가 군부의 경제적 기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은 “MOGE는 오랜 기간 군부의 돈줄이었다. 경영진은 군부의 영향력 아래 있고, MOGE가 군부를 지원하는 비밀 계좌를 갖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라며 “이 때문에 가스개발 사업의 이익이 군부에 돌아간다는 주장이 예전부터 있었다. 특히 이번 쿠데타가 성공할 경우 가스전 사업 이익은 당연히 군정에 대한 지원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가스개발 사업 과정에서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주민들에게 토지를 헐값에 넘기도록 강요한 사실도 드러났다. 현재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해저 가스 터미널 사업(슈에컨소시엄)과 중국까지 이어지는 파이프라인 사업(SEAGP)에서 각각 51%, 25%의 지분을 갖고 있다.6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그해 4월 가스 파이프라인 공사 현장 인근 주민 400여 명이 제대로 된 토지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미얀마 당국은 10명의 주민을 구금하고 이들에게 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당시 해당 지역 주민들은 가스 터미널 공사 과정에서 진흙과 폐기물이 농경지를 침범하고 악취 등의 피해가 이어지는 데도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 됐음에도, 보상 액수는 2년 치 수입 규모에 불과했다. 농경지 이외의 다른 수입원에 대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공사 전에 도로 건설과 병원, 학교 설립 등을 약속했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7 결국 쩍퓨 지역 주민들은 2016년 한국 법원에 포스코인터내셔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국제사회도 주시하는 한국기업-미얀마 군부의 경제 협력
포스코인터내셔널이 군부에 막대한 토지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는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앞서 포스코인터내셔널은 2012년에 외국 민간기업 최초로 미얀마 양곤에 호텔 부지 사용권을 확보했다. 포스코건설이 시공을, 호텔롯데가 운영을 맡은 이 호텔은 2017년 양곤에 문을 열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롯데호텔의 지분 63.75%를 보유한 대주주이며, 호텔롯데도 21.2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호텔이 군부 소유 토지에 건립돼, 막대한 임대료가 군부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단법인 아디의 김기남 변호사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미얀마 국방부 산하의 일종의 조달청 성격을 가진 곳과 BOT 방식으로 직접 계약을 맺었다”라며 “최장 70년(50년+연장 20년)까지 군부 소유의 토지를 임대해 호텔을 운영할 수 있어 토지 임대료가 군부로 직접 들어가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국제사회는 군부의 ‘돈 줄’이 된 한국 기업들을 주시하고 있다. 2019년 유엔 미얀마 국제진상조사단은 미얀마 군부와 합작 투자를 벌이고 있는 14개 기업 중 6곳이 한국 기업이라고 밝혔다. 국제엠네스티 역시 지난해 9월, ‘글로벌 기업-미얀마군 범죄’ 보고서를 발표하고 MEHL과 합작 사업을 벌이며 군부의 인권침해에 기여한 한국 기업들을 공개했다. 이 보고서에 언급된 기업은 포스코와 이노그룹, 그리고 태평양물산 등이다.
포스코는 포스코제철소와 포스코C&C 등 두 곳을 MEHL과 합작 법인 형태로 운영 중이다. 포스코제철소는 2016년에 MEHL과 합작 투자해 컬러 코팅 시트 공장을 건설했다. 포스코가 70%, MEHL이 3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2013년에는 포스코강판이 미얀마에 컬러강판 생산업체인 포스코C&C를 설립했다. 포스코가 70%의 지분을, 그리고 MEHL이 3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후 포스코강판은 2019년 ‘포스코스틸’의 지분 또한 인수했다. 97년 설립된 포스코스틸 역시 30%의 지분을 MEHL이 소유하고 있었다. 포스코C&C는 군부 소유의 경제특구 부지 내에 공장을 세웠다. 따로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는 대신, MEHL에 30%의 지분을 현물로 출자하는 조건이었다.
포스코인터내셔널부터 포스코제철소, 포스코C&C까지, 포스코 계열사들이 미얀마 군부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국내외적인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시민사회 등은 포스코 등의 기업들이 국제 기준에 따라 군부 관련 기업과 관계 청산 등의 후속 조처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포스코 측 관계자는 “계열사의 사업은 포스코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언급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포스코인터내셔널 관계자는 “미얀마 가스전 사업은 20년간 미얀마 정부와 이어져 온 계약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사업으로, 정권 교체에 따라 급변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라면서 “사업 수익금 또한 미얀마 정부에서 관리하는 국책은행으로 직접 입금되기 때문에 군부와 연관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포스코C&C 관계자는 “2017년 실적 이후로 MEHL에 배당한 적이 없다. 지난해 인권침해 이슈가 발생했을 때 이 문제가 해소될 때까지 배당을 중단하기로 MEHL과 합의를 했다. MEHL의 주총 회의록에도 명시했다”라며 “이후 MEHL과의 관계 종료를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이노그룹 역시 MEHL와 이노국제그룹, 이노라인컴퍼니, 한타웨디 골프·컨트리클럽 등의 합작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MEHL은 이들 회사의 지분 44.5%, 39%, 63%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태평양물산은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의 봉제 사업을 인수하며 미얀마에 진출했다. 1991년 10월 대우인터내셔널이 미얀마에 설립한 봉제공장 역시 MEHL이 지분 45%를 소유하고 있었다. 지난해까지 태평양물산은 MEHL이 45%의 지분을 소유한 합작 회사를 운영했으며, 3년간 매년 평균 7만5천 달러를 배당금으로 지급해 왔다. 다만 2019년 유엔 미얀마 국제진상조사단이 군부의 수익 창출에 기여하는 기업 리스트를 발표하면서, 태평양물산은 지난해 MEHL의 지분을 인수하는 등 관계 종료에 나섰다. 태평양물산 관계자는 “MEHL이 소유하고 있던 일부 지분을 인수해 현재 지분 관계나 토지 임대 관계가 남아있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미얀마 민주화’ 외치는 한국 정부,
‘한국 기업’의 행보에는 침묵
지난 3월 17일 부산에서 열린 ‘미얀마 민주항쟁연대 부산네트워크 발족 기자회견’에서 한 미얀마 유학생은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서 미얀마 군부와 연관된 한국 기업들이 군부를 돕지 않고 미얀마의 민주주의 건설에 협력할 수 있도록 설득해 달라”고 호소했다. 미얀마인을 비롯하 한국의 시민사회 역시 한국 정부가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인권 침해 실태를 파악해 국제 기준에 따라 조치를 하고, 향후 기업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저해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역대 정권들은 미얀마에 민주주의를 촉구하는 발언을 이어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10월, 청와대를 방문한 미얀마 외무장관에게 민주주의와 인권존중을 위한 미얀마 정부의 노력을 촉구했다. 1994년에는 당시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태지역 민주화 지도자 회의를 서울에서 주최해 ‘미얀마 민주화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1999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얀마 총리에게 정상회담을 긴급 제안한 뒤 미얀마 민주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지난 3월 12일 미얀마 유혈사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 조치를 발표했다. 미얀마와 국방 및 치안 분야 신규 교류 및 군용물자 수출을 중단하고, 개발 협력 사업을 재검토하겠다는 것이었다. 국회 또한 2월 26일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및 민주주의 회복과 구금자 석방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지금껏 군부의 수익 창출에 기여하며 인권을 침해해 온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어떠한 조치나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 시민사회단체모임’은 3월 16일 발표한 논평에서 “정부가 발표한 이번 조치에는 미얀마에 투자하고 있는 한국 기업에 대한 조치가 결여돼 있다”라고 비판했다. 심지어 포스코의 대주주가 지분 11.75%를 소유한 국민연금인데도, 포스코의 반인권적이고 반노동적인 행보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기업의 인권침해에 개입하거나 조처를 할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나현필 사무국장은 “정부가 기업을 상대로 인권위험에 대한 평가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이를 제출하지 않는 기업은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제한을 두는 등의 다양한 법적 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또한 민간기업 차원에서 인권위험으로 철수를 계획할 때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지원할 수 있는 제도 등도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김기남 변호사는 “우선 ‘UN 기업과 인원이행 원칙’이나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등의 기본 원칙에 따라 인권 침해의 여지가 있으면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인권 실사가 성실하게 이뤄져야 한다”라며 “그것이 인권에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이 있으면 정부가 필요한 조처를 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기사제휴=윤지연 참세상 기자
- ‘미얀마 민주화 기수 아웅산 수지 인터뷰’, 〈동아일보〉, 1996.8.15
- ‘한, 버마 경협 확대 합의 정상회담’, 〈경향신문〉, 1987.6.9
- ‘글로벌 기업-미얀마군 범죄’ 보고서, 국제엠네스티, 2020.9
- ‘한국기업의 버마 가스 개발, 무엇이 문제인가’, 〈인권하루소식〉, 2005.4.27.
- ‘[특파원 리포트] 포스코가 미얀마에 무슨 투자를 했길래?’, KBS, 2021.3.11
- 미얀마 가스 프로젝트인 ‘슈에가스개발사업’은 광구에서 추출한 가스를 쩍퓨(Kyauk Phyu)의 지상 가스 터미널로 보낸 뒤, 파이트라인을 따라 중국 원난성까지 보내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는 두 가지 사업으로 나뉘는데, ‘슈에컨소시엄’은 해저 가스광구에서 가스 터미널로 보내는 사업으로 포스코인터가 51%의 지분을 갖고 있다. ‘SEAGP’는 육상 가스 터미널에서 중국 원난성까지 이어지는 파이프라인 사업으로, 중국석유공사(CNPC)가 51%, 포스코인터가 25%의 지분을 갖고 있다.
- 〈해외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실태조사 및 법령제도 개선방안 연구〉, 국가인권위원회, 2013